소라 (퀴어페미니스트 활동가)

 

“무슨 일 하세요?” 처음 만난 사람으로부터 이 질문을 들으면 일단 얼굴이 붉어진다. 내 직업이 부끄러운 건 아니다. 그저 이 직업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할지 탁 막히거나,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말을 함으로써 막연하게 포장될 내 이미지가 순식간에 예상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

내 직업은 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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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나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활동가란 무엇인가? 좋은 일 하는 사람? 세상을 바꾸는 활동을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으로 정의를 좁혀보겠다. 그런데 이 점잖은 정의는 활동가라는 직업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직업으로서의 활동가, 특히 ‘청년활동가’가 어떤 것을 경험하게 되는지 좀더 현실적으로 말씀드려보겠다.

첫째, 월급이 적다.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의 연구(2025)에 따르면, 현재 국내 공익활동가 평균 월급은 세전 237만원이다. 잠깐, 신입 활동가 월급이 아니다. 연차와 관계 없이 평균을 낸 월급이 그렇다. 참고로 같은 시점 서울시 생활임금은 253만원이다.

어느 모임에서 누군가 말했다. “나도 활동가 하고 싶다!” 내가 농담조로 답했다. “나이 마흔 될 때까지 기본급 250이어도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웃음바다가 된 기억이 난다. 최근 출판사 민음사의 편집자 김민경 씨가 출판사 입사 초기에 애인과 서로 월급을 공개한 후, 액수의 간극에 충격을 받아 길거리에서 절규를 했다는 썰이 담긴 쇼츠가 인기를 얻고 있다. 그 마음… 모르지 않는다.

물론 활동가를 직업으로 선택하며 큰 돈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돈보다 가치있는 일을 하기 위해 활동에 뛰어드는 사람들이니까. 그렇지만 좋아서 하는 일에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뛰어든 일에도 ‘안전망’은 필요하다.

직업으로서의 활동가가 경험하는 것 두 번째는, ‘올라운더’가 되는 것이다. 좋게 말하자면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된다는 뜻이고, 보다 냉혹하게 표현하자면 전문가가 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속해있는 단체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청년활동가들이 겪는 딜레마는 직무에 있어 전문성이 결여된다는 느낌이다. 행사, 홍보, 회계 등 다양한 업무에서 소프트 스킬을 익히며 ‘올라운더’가 되지만, 그것이 ‘커리어’가 될 수 있는지 생각을 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것이다.

이놈의 전문성은 내가 지난 10년간 이런저런 활동을 전전하면서 켕기는 부분이었다. 내가 발붙이고 있던 곳은 어린 여성을 전면에 세우고 마이크를 잡게 하는 감수성은 있었지만, 그래서 나를 어떻게 ‘키워낼지’에 관한 비전은 부족했다. 지금은 원망보다는 이해가 앞선다. 시시각각 예고 없이 닥쳐오는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고 조직을 불리는 것이 급급한 상황에서 활동가를 기른다는 것은 작은 규모의 단체에서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장을 하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활동을 오래 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했다. 셀프로 배워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스스로 한참 부족하다고 느끼는 채로 연차가 쌓이는 것에 관한 불안감,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비어있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마음이 나를 나가 떨어지게 했다. 그렇게 나는 잠시 활동과 거리를 두기를 선택했다.

2년간 다른 일경험을 하다가,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은 역시 활동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시민단체로 복귀했다. 운이 좋게도 비교적 체계가 있는 조직을 만났고, 활동과 거리를 두는 동안 내가 쌓아야할 역량의 분야가 어떤 것인지 터득하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비교적 일과 삶의 균형 안에서 나만의 활동 언어를 만들어나가는 중이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활동 그리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나의 ‘집’이라고 느낀 몇 가지 경험 덕에 나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떻게 활동가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건 다름아닌 네트워크, 한국어로 풀어보자면 ‘관계적 안전망’ 덕분이었다.

 

2016년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 투쟁 문화제에서 동네 아저씨들과 노래까지 불렀던 나

2016년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 투쟁 문화제에서 동네 아저씨들과 노래까지 불렀던 나

 

20대 초반, 나는 지역활동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용산 미군기지 내부의 지하 기름통이 터져 지하수가 오염된 것을 고발하는 활동을 하고, 4월이 되면 지역 곳곳에 세월호를 기억하는 행사를 열었다. 아직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이름 붙이기 전이었지만, 밥 먹고 하는 일이라고는 활동 밖에 없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활동을 하며 경제적으로 궁핍하던 때에 지역 ‘언니’ 활동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하며 활동가로서의 진로를 고민하는 나에게 웹자보 만드는 것에라도 도움이 되라며 무료로 디자인 툴을 가르쳐준 선배가 있었고, 지역 공동육아 공동체에서 보조강사라도 해보라며 일거리를 쥐어준 선배들이 있었다.

10년이 흐르고 주위를 둘러보며 나의 경험이 몹시 특수했다는 것을 절감한다.

서로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부담스러운 약속까지는 아니어도(바라지 않는다), 활동을 하는 생애 안에서 무사히 적응을 하고 생존을 할 수 있도록 돌봄을 주고 받는 ‘관계적 안전망’을 경험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이 활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중요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2025년, 작년 한 해 아름다운재단과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이 청년활동가에게 경제적 안전망과 관계적 안전망을 지원하는 ‘청년활동가안전망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았다. 소규모 단체 저연차 청년활동가들과 교류하며 지속가능한 활동에 관해 여러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3월 26일 목요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청년문화공간 JU’에서 청년활동가안전망 지원사업 연구 공유회가 열린다. 이곳에서 나는 청년활동가로서 지속가능한 활동이 가능하기 위한 기반은 무엇인지에 관해 토론을 나눌 예정이다. 저연차 활동가들이 많이 찾아와주셨으면 좋겠다. 각 단체의 대표님들은 청년활동가들이 연차를 쓰고 이곳에 오지 않아도 되게끔, 주도적으로 이 행사에 활동가들을 보내주시기 바란다. ‘동행’에서 공문도 발송해줄 수 있다고 하니, 청년활동가들은 부디 주목해주시길.

90년대 이후 출생의 활동가들은 더 이상 학생운동의 경험이 없다. 이름만 말하면 누군지 알고,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구에게 연락을 하면 되는지 아는 그런 세대를 부러워만 하지 말자. 느슨하게나마 연결되고, 서로 기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보자. 하다못해 부모님 집에서 나와 함께 살 룸메이트라도 찾아보자.(활동가 월급으로 1인가구로 살기는 어렵지 않은가.)

청년활동가에게는 더 많은 관계 자본이, 장기적인 활동을 위해 필요한 역량을 함께 학습할 일터 밖 동료들이 필요하다. ‘우리가 돈이 없지 사람이 없냐’고 의기양양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활동가라는 직업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한다. 그 길에 함께할 동료를 찾는다.
*이 글은 2026년 3월 26일(목) 오후 2시, 아름다운재단과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이 주관하는 청년활동가안전망 지원사업 연구 공유회를 앞두고 토론문을 겸하여 작성하였다. 3월 26일, 현장에서 듣는연구소 협동조합의 ‘청년활동가안전망 지원사업 3개년 연구’ 보고서가 공개된다. 청년활동가들이 이곳에서 그 고민이 당신만의 고민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고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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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활동가 안전망 지원사업 연구 공유회 웹자보

 

대표 이미지: 2025 청년활동가안전망 지원사업 ‘마음짓기학교’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