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8월 27일 병역법 76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재판관 9인 중 헌법불합치 5명, 단순위헌 2명, 기각 2명)을 내렸다. 이에 따라 현행 법조항은 2028년 2월 29일까지만 효력을 가지고 국회는 그 전에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
병역의무 불이행자에 대한 취업제한과 해고를 다룬 병역법 76조는 1962년 군사쿠데타 직후 처음 만들어졌다. 병역기피자 근절이 입법 취지였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2004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언론 취재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이 법에 따라 병무청이 각 기관 및 기업에 해직 요구 공문을 보낸 사례만 총 329건에 달하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겉으로는 헌법불합치 판단을 통해 해당 조항의 문제점을 인정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병역거부자에 대한 생계 수단 박탈이라는 핵심적인 인권 침해 구조를 외면한 채 이를 법적으로 정당화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감스럽다.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의 요지는 ‘병역의무 미이행자에 대한 광범위하고 일률적인 해고 조항이 당사자의 정당한 사유를 소명할 절차적 기회를 보장하지 않았다’는 점에 맞춰져 있다. 즉, 해고 조치 자체가 가진 위헌성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소명 절차가 빠졌다’는 이유로 불합치 판단을 내린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논리에 따르면, 입법부가 향후 형식적인 소명 절차나 통보 체계만 신설하는 법개정을 할 경우 병역거부자에 대한 해직 처분은 얼마든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계속될 수 있게 된다. 문제의 핵심인 ‘생존권 박탈’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절차적 정당성을 갖춘 해고’의 길을 열어준 셈이다.
유엔 인권기구들은 병역거부자에게 부과되는 조치가 징벌적 성격을 띠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거듭 확인해 왔다. 그러나 우리 병역법 제76조는 형사처벌에 더해 그 위에 공직은 물론 모든 민간 영역의 취업까지 봉쇄하는 추가적 제재를 부과한다. 유럽인권재판소 역시 병역거부자가 반복되는 기소와 유죄판결의 누적 속에서 평생 처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는 것을 두고 일종의 ‘사회적 사망(civil death)’이라 지적한 바 있다. 형사처벌로 전과의 낙인을 지는 사람에게 생계 수단마저 빼앗는 것은, 그러한 ‘사회적 사망’을 국가가 법으로 완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헌법재판소가 이 같은 ‘사회적 사망’의 구조적 위헌성을 비껴간 채 소명 절차라는 형식적 정당성만 부여하려 한 것은 국제인권기준의 흐름에도 역행하는 후퇴다.
병역 의무 불이행에 대한 형사적·법적 책임은 사법 절차를 통해 엄격히 물으면 될 일이고 이미 그렇게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 영역에서까지 취업 기회를 제한하고 생계 수단을 박탈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부정하는 것으로 부당하고 과도한 법집행법치주의의 본질을 전도하는 행위다. 단순위헌 의견을 낸 두 명의 헌법재판관(김복형, 마은혁) 또한 이 지점을 지적하고 있다.
올해 병역거부를 선언한 평화활동가 두부는 병무청이 자신의 직장인 한베평화재단에 해직 요구 공문을 보낸 것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병무청의 해직 요구가 저 개인의 생존권뿐 아니라 양심의 자유와 노동의 권리, 그리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침해한 행위임을 분명히 확인해 주십시오. 또한 국가기관이 시민사회단체의 인사에 개입하고, 양심에 따른 선택을 이유로 생계를 압박하는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필요한 권고와 제도 개선에 나서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이야기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병역법 76조로 인해 실제 고초를 겪고 있는 당사자의 요구에 전혀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과도한 기본권 침해의 본질을 외면한 아쉬운 결정을 남긴 만큼,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국회는 2028년 2월이라는 시한에 등 떠밀려 형식적인 소명 절차만 신설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병역법 제76조가 규정하는 병역 미이행자 취업제한과 해고 자체를 뿌리 뽑는 근본적인 법 개정에 즉각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6.8.28.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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