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잣대>
영등포 구치소의 이모동지에게서, 여주 교도소이 강모 동지에게서 서신이 왔다. 징역살이 오로지 기다려지는 것은 애인의 편지, 가족의 편지, 동지들의 편지, 몇 안되는 친구들의 편지 뿐일는지, 한번에 두 통이나 두툼한 답신들을 받아드니 마음이 달갑다. 며칠 전에는 구하기 어렵고 비싼 책도 법무부 할인(부가세 제외의)을 받고 구매해서, 이 책의 이야기를 답신에서 자랑 할 생각에도 기뻤다.
32℃의 후덥지근한 방에 돌아와서, 오늘의 조간신문을 해 질 무렵에 펼쳐본다. 찬찬히 정독하고 있는데 옆에서 다른 신문을 보던 임형이 ‘엇’하며 기사를 하나 보여준다. 어제 있었던 병역법 관련 위헌제청의 헌재 결정 소식이다. 예상치도 못하게 갑자기 나온 결정인데, 최소한 불일치는 나오지 않을까 (불길한) 기대 하던 것이 여지 없이 깨어졌다. 7:2의 의견으로 합헌. 수 년 전의 판결보다 더 물러선 결정이라 신기하다. 내용에는 관심도 없다. 어차피 같은 이야기의 재확인인 것이다.
그보다는 1면에서부터 헤드라인으로 다루어진 같은 날의 또 다른 헌재 결정에 눈이 간다. 마침 사회 면에서 이 두 개의 헌재 결정은 위아래 나란히 차지하고 있다. 일본군 군대 위안부, 원폭 피문제 등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온 정부에 대해 위헌을 결정했다.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 (2011.8.31. 한겨레) 결정문 전문을 볼 수는 없는 상태이지만 요는 위와 같다 한다. 정부에게 자국민의 기본권(배상 청구권)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1965년의 한일 협정이 특별히 이번 위헌 제청의 주요 내용이었다. 그간 정부가 협정 내용을 근거로 – 이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의 바겐은 누구의 작품이었던가 하는 것은, 법적으로 논할 이야기는 아니다 – 전혀 움직이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서 헌재는, “정부가 소모적 법적 논쟁으로의 발전 가능성‘이나 ’외교관계의 불편‘이라는 추상적 이유를 들어 시급한 피해자 구제를 외면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기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유야무야 덮어둔 협정으로 정부(국가)가 자국민 기본권 보호에 관한 법적 의무를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본 제국이 패전하고 동아시아의 피식민국가들에 광복이 왔을 때, 이 땅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처음부터 대한민국과 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개별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여러 계열의 반제투쟁을 하던 조직들이 있었다. 그 중 소비에트에 선을 댄 김일성과 미합중국에 선을 댄 이승만이 개별 국가를 ‘건국’한다. 그들은 각기 ‘진영’에서의 정통성을 표방하며 ‘이적’들을 모두 처다한다. 남북 정부 모두에서 지워진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이적들은 대체로 저 양자의 왜곡된 대립노선에 비판적이었던 이들이었다.
분단된 양측 이승만김일성 정부는 끝내 전쟁을 불러온다. 20세기 최악의 전쟁이 김일성의 남진 지휘와 함께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국가 안보’라는, 헌재가 설명하는 현 병역법 유지의 요인인 ‘중대한 공익’의 연원이다.
헌재는 이번 한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결정을 할 때, ‘헌법전문’과 관련 조항은 물론, 한일 협정 내용에 비춰봐도 한국정부가 이들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을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여기서 헌재가 헌법 전문을 검토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위헌제청하게 되는 법조항이, ‘헌법전문’이 규정하는 공화국 인민의 <헌법적> 기본권에 위배되지 않는가를 따지는 것이 헌재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66조 3항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으무를 지우고 있다. 입헌국가에서 헌법이 의무를 지우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이미 강제가 된다지만(그래서 나는 감옥에 와 있다) 굳이 해설하자면 그렇다. 대한민국 정부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양측의 군사적 대치 상황는 헌법의 여타 수많은 조항들이 강력히 보장하고 있는 수많은 헌법적 기본권들을 침해하는 중대한 위해요소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예로, 우리에게는 직업선택, 거주이동, ‘신체’의 자유 등이 있지만 국가안보라는 중대한 공익-특히 분단에서 유래한-을 위해, 병역 의무자들은 이 모든 기본권들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중대한 공익과 그보다 경한 권익의 차등적인 순번을 매기는 상황은 차치하고, 대통령은 –정부에는 – 상기의 이유로 평화적 통일을 위해 성실히 임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결국 대통령이 헌법이 법제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다 하지 못함으로써 분단 상황은 지속되고 있고, 그로 인한 국가안보의 중대한 공익유지를 위한 사회적 비용이 계속 들고 있다.
정부는 휴전협정이라던가,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숱한 회담과 몇 개의 협정들과 그것에의 불성실한 북한 정부의 태도 등을 변명거리로 들려 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소모적 법적 논쟁으로의 발전 가능성’이나 ‘외교관계으 불편’이라는 추상적 이유를 들어 시급한 피해자 구제를 외면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기 힘들다. ”좁게는 병역거부자의 감옥행에서부터, 군에 가는 것을 자의로 원하지 않음에도 군에 가야만 하는 것을 강제받는 병역의무자들, 넓게는 천문학적인 ‘국방비용’을 세금을 납부하고 있는 납세자들 등의, 모든 분단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감내해야만 하는 이 땅의 양국민 모두가 바로 그 시급한 피해자들이다.
군사적 대치의 미해결로 치러야 하는 양국민들의 사회적 비용, 특히 기본권 침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것을 양측 정부는 어쩔 수 없는 안보상황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적 관점에서 보면 이 같은 태도는, 이들 정부가 자국 인민들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해야 할 분단상황 타계라는 ‘의무’에 대한 명백한 직무유기라고밖에 볼 수 없다. 특히 대한민국 헌법에는 66조 3항 같은 조항도 버젓이 있다. 정부의 평화통일 미해결은 위헌인 것이다. 그로 인한 시급한 피해자의 구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 또한 위헌인 것이다. 그리고 ‘국가 안보’라는 말은 또 얼마나 ‘추상적’인가 헌재해석적으로 볼 때, 정부에게는 국가 안보를 위해 현 수준의 강제징병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추상적이지 않게, 상세히 설명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헌재는 한일간의 문제에 대한 해결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을 이야기 하면서 남북간의 문제에 대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은 정부에게는 무어라 하지 않았다.
헌재가 지적했듯이 이런 ‘상황’들 속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헌재의 판단대로 ‘국가 안보’는 중대한 공익이다. 그것이 모든 기본권들을 지켜주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전제 하였을 때, 진정한 의미로 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해 헌법적 의무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국가 안보를 통한 모든 인민의 기본권 확보를 위해 그 성실한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국가 안보의 위협 요소의 영구 제거의 길, 평화의 길 말이다. 헌재는 무엇을 위한 헌법인지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인민의 ‘기본권’을 위한 헌법인지, 국가 안보를 위한 헌법인지. 아무리 봐도 내 생각엔 국가 안보가 헌법적 ‘기본권’을 위해 존재하는 하위 개념인 것 같지만……. 그보다 이 ‘국가보안’이라는 추상을 헌법적으로 설명해줘야 하지 않을까.
헌재가 이중 잣대로 ‘병역’의 영역만은 신성시하여 모든 헌법적 권리와 의무들의 최상위에 그것을 영영 모셔둘 생각이라면, 차라리 헌법을 바꾸는 편이 옳을 것이다.
2011. 8.31. 11:53p.m.
영등포교도소에서
안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