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열며… 망월의 희망과 소명을 생각하며”
밖엔 보리가 익어가고, 지천으로 산딸기며 복분자가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아카시아향을 맡으며 초저녁 들판을 거닐면 개구리의 합창이 달빛 가득 묻어들곤하던 담양의 메타세콰이어길,
봄날, 푸른빛 바다로 노란 유채꽃이 양 옆을 장식한 산방산 욱배길,
봄날밤 아릿한 그리움에 멍든 가슴을 보듬고 찾아간 광주의 망월묘지.
요즘은 그저 불쑥불쑥 찾아드는 세상의 아픔들을 갈무리하다보면 눈물이 너무 잦다.
전쟁없는세상, 눈 내리는 겨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주 버스파업 연대활동이 조금 정리되려는 순간에 강정 문제가 대두되고, 그동안 별로 관심을 갖지 못했던 부분이라서 현지에 내려가봐야 알겠거니 하고 내려간 첫날, 제주 여행을 연행차에 실려 제주 동부경찰서 조사실까지 가면서 몇 십년만에 이색적인 풍경에 설레기도 했답니다.
평소 농사와 글쓰는 일이 생활의 모범이라는 생각에 그거말고는 아무런 욕심이 없는 사람에게
제주, 그것도 한 겨울 골목에 노란 민들레가 피어있는 풍경은 너무도 풍요롭고 환상적이며 이국적인 풍경이었습니다. 거기에 깃들어있는 평화와 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나름의 생명을 바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아름다움. 구럼비의 노래와 춤추는 바다. 어느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증명하는 삶은, 이미 세상에 가득하게 넘치고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과 신뢰가 쌓여 죽음의 두려움마저 뛰어넘는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여유를 갖게 합니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전쟁없는세상”, 늘 기억하고 함께가는 벗으로 소중한 만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머무는 방은 7번방, 아이들과 함께 지내지만, 어른들에게 실망한 아이들은 가끔 건방지기도 합니다. 그것이 가끔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한 없는 시대의 아픔으로 다가오면 눈물이 어른거려서 참 거시기합니다.
마음을 비워내는 작업은 조금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느슨해져도 사정없이 파고드는 이기적이고 비겁한 타협주의와 자기합리와의 극단적인 절망감들이 급습합니다. 여기에 휩쓸리면 어지간한 인내심이나 내공이 쌓여있다해도 김지하나 서정주 식의 변절이 뻔뻔한 얼굴을 내밉니다.
그래서, 이름도, 사랑도 명예도 없이 늘 마음으로 함께하시는 벗들이 고맙고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 벗으로 늘 함께하는 삶 속에서 만나기를 소망하면서 5.18의 하루를 마감합니다.
2013년 5월 18일
제주교도소 2동 하 7번방에서
푸른바람 이종화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