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 선언문
1. 가장 개인적으로 가장 정치적인 병역거부를 하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
독일녹색당의 페트라 켈리가 68혁명 때 언급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명제로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페미니즘 진영의 격언과도 같은 이 문장을 나는 이제 병역거부 운동에까지 확산시키기로 한다.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양심적 병역거부’에서의 ‘양심’은 가장 개인적인 ‘양심’이다. 나의 경우에 그것은 ‘평화주의적 병역거부’나 ‘반군사주의적 병역거부’, 혹은 ‘비폭력주의적 병역거부’로 도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국가폭력에 대한 시민불복종적 병역거부’라 부를 수도 있겠다.
무어라 일컫든 나는 지금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부터, 정확히는 병역거부를 결심했던 7년 전부터 이미 여러 사람에게 선언하였다. 군대를 반대한다고 하면 그때마다 돌아오는 말은 “꿈 깨”였다. 물론이다. 나도 꿈에서 깨고 싶다. 내가 꾸는 꿈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병역을 거부한다는 이유만으로 모조리 징역을 보내는 나라
해방 이후 누적 병역거부 수감자가 17000여 명으로 압도적 1위를 기록하는 나라
2013년 현재 전 세계에 수감된 병역거부자의 92%가 속한 나라
유엔의 권고를 무시하는 나라
그러나 반기문을 존경하는 나라
저것들은 꿈이므로 기울여 쓴다. 선 채로 자는 사람은 없으므로 모든 꿈은 얼마간 기울어져 있다. 이제 여러분은 나에게 “꿈 깨”라고 말할 차례이다. 그 말에 나는 꿈에서 깬다. 눈을 뜨니 꿈에서 본 풍경이다. 장자의 호접몽까지 갈 생각은 없다. 나는 현실을 직시하기로 한다. 이제부터 내가 말할 것은 ‘기울어진’ 현실이다.
2. 전쟁보다 소요 진압에 더 자주 쓰이는 군대
군대의 수단이자 목적은 전쟁이다. 군인은 군복을 완전히 벗기 전까지 살인기계의 설계도면에 자신의 초상화를 열심히 그려 넣는다. 그러나 빨간색으로만 그려지는 군인의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전쟁터에서만 꽃피우기가 아쉽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 위로, 붉은 먹을 갈아 굵은 획을 긋고자 했던 몇몇 이들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47년 3월 1일, 제주의 한 어린이가 기마경관의 말발굽에 치었다. 성난 군중들이 말을 쫓았다. 경찰이 발포하였고 이로 인해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로부터 54년 9월 21일까지 7년 7개월 동안 이승만 정권은 끊임없이 육지에서 군대를 파병하여 도민들을 학살하였다. 사망자만 14000여 명, 사상자는 30000여 명이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집계된 수치이다. 이 학살을 ‘제주4.3사건’이라 일컫지만 일부 교과서에는 왜곡이 돼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f Jurists)는 인혁당 판결이 난 74년 4월 8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 선포했다. 초헌법적 긴급조치가 1호부터 9호까지 남발되던 시대였다. 이를 유지, 관리하기 위해 유신정권은 이 땅에 거대한 병영국가를 이룩하였다. 군대의 폭력이 학살이라 말할 만큼 집약적으로 표출된 상황은 없었으나, 그것은 국가의 시스템과 시민의 생활 전반에 걸쳐 구축한 군사주의의 치밀한 억압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캠퍼스에서 군인들이 총을 메고 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80년 5월 17일, 계엄령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광주에 공수부대가 투입되었다. 이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군대에 의한 유혈진압이 진행된다. 곤봉과 대검으로 난자된 생과 총에 관통된 삶들이 건물 안과 거리 곳곳에 누워 있었다. 사상자는 200에서 600명이라는 추측이 있지만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여러분은 군대의 민간투입이 자행되던 시대는 암울한 군부독재 시절이 아니었느냐고 강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대 정권 중 가장 ‘민주적’이라고 평가받는 참여정부조차 평택의 대추리를 군화발로 짓밟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방부는 주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도록 철책을 세우고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검문소를 설치해 출입을 통제하였다. 06년 5월 4일,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 시작되었다. 시위대 1000여 명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공권력은 경찰 110개 중대 13000여 명, 용역업체 직원(소위 깡패) 1200여 명, 군인 2000여 명이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으나 200에서 3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3.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병역의 성스러움, 나아가 군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정의로운 전쟁은 있다”이다. 그들이 정의하는 ‘정의로운 전쟁’이란 대개 침략 가능성을 억제하기 위한 침략전쟁이나, 침략에 대한 정당방위로서의 방어전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근대 이전의 전쟁에 대해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여러분이 ‘야만’이라는 단어 하나로 논점을 회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시민사회가 성립되고 민주주의가 확립되었다고 ‘믿는’ 현대의 전쟁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실은 ‘야만’에 대한 이야기이다.
침략 가능성을 억제하기 위한 침략전쟁의 대표적인 사례는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략전쟁이다. 걸프전 이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이라크의 군비확장과 01년 발생한 9.11테러에 자극을 받은 미국은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 규정하였다. 이어 02년 8월, 조지 부시는 유엔 연설에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폐기를 요구하며 정권교체를 언급했다. 이에 이라크가 무기사찰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 침공 승인을 요구한다. 그리고 03년 3월 20일, 유엔 안보리의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라크를 침공하였다.
미국의 입장에서 이라크 침략은 정당한 것이었다. 지속적인 군비확장을 하는 이라크의 정권은 반미세력이었고 9.11테러에서 볼 수 있듯 이라크는 하나의 국가이기 보다는 거대한 테러집단이었다. 언제라도 다시 ‘제 3의 후세인’이 비행기를 탄 채로 빌딩을 향해 돌진할 수 있었다. 게다가 비인도적 무기(인도적인 무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인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의혹’이 있었다. 물론 미국은 언제나 정의로우므로 자국이 가진 대량살상무기는 괜찮았다.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이라크를 샅샅이 뒤졌으나 대량살상무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미국이 입수했다고 하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의 신빙성이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그 논란이 죽은 사람을 살리거나 무너진 건물을 세워주지는 못했다. 군수업자들은 돈을 벌었고 미국은 석유를 얻었고 이라크에는 친미정권이 들어섰다. 그리고 곧 내전이 시작되었다. 사실 뻔한 수순이었다.
테러에 대한 대항마로 전쟁을 선택하는 것은 테러에 대해 더 큰 테러로 보복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국은 최첨단 무기의 ‘정밀성’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몇 마일 밖의 바늘귀도 뚫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했다. 그러나 폭탄은 자주 민가에 떨어졌고 이라크 측 사망자 57000여 명 중 50000여 명은 민간인이었다. 이것이 침략 가능성을 억제하기 위한 침략전쟁이 보여주는 ‘야만’이다.
이제 여러분이 고대하던 침략에 대한 정당방위로서의 방어전쟁을 보기로 하자. 나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6.25전쟁을 일례로 들고 싶다. 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침을 개시하였다. 4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북한은 다시 3개월 만에 대구, 부산 등 경상도 일부를 제외한 전 지역을 장악하였다. 미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이 9월 15일에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였고 28일에는 서울을 탈환했다. 그리고 유엔군과 한국군은 역으로 북침을 시작한다.
엎치락뒤치락하다 결국 38선이 그대로 휴전선으로 굳어진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바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남침에 대항하여 방어전쟁을 하였고, 전세가 호전됨에 따라 남한이 북침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명분은 충분하였다. ‘조국통일’이 그것이다. 북한은 물론이고 남한의 이승만 또한 “아침은 개성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했었다. 다시 말해 북한으로부터의 침략에 대한 정당방위로서의 방어전쟁의 실상은 파도 한 번에 무너져버리는 모래성처럼 허약한 명분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남한의 군비가 북한보다 우세였다면 입장은 바뀌었을 것이고 어떤 상황에서든 북침은 정당하였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전쟁이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모든 침략전쟁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정당하고 모든 방어전쟁 또한 당사자의 입장에서 정당하다.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모든 전쟁이 정당하므로 모든 전쟁은 정당하지 않다. 전쟁이 어떤 상황에서든 최악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폭력은 언제나 폭력으로 치환된다. 폭력의 본질은 순환성이다. 그리고 폭력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전쟁이다. 누군가 주먹질을 하였을 때 똑같이 주먹을 날리고 곧 뒤엉켜 싸운다면 그것은 쌍방과실일 뿐이다. 우리는 누군가 주먹을 날리기 전에 말을 걸 수 있다. 주먹이 날아오더라도 똑같이 주먹을 내뻗지 않을 수 있다. 폭력에 대한 대안이 폭력밖에 없다면 그것이 ‘야만’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4. 민족이라는 허상, 국익이라는 야만
민족주의는 곧 국익주의이다. 나는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인간의 선택들이 낳은 참혹한 결과물들을 숱하게 안다. 근대 이후의 거의 모든 전쟁과 인간에 대한 억압은 민족주의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팔레스타인 침략을 가능케 한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은 종교의 탈을 쓴 민족주의이다. 인종주의는 민족주의의 사생아이다. 나찌의 홀로코스트는 민족주의의 자화상이다.
RO(Revolutionary Organization)로 유명해진 이석기와 그의 노선인 NL(National Liberation)은 철저히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다. 그들이 살고 있는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이기 때문에 한민족의 강한 의지로 해방을 원하는 것이다. 민족주의가 낳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인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 이들이 골방에서 엄숙하게 ‘딱총모의’를 하는 모습이 상상되기 때문이고 이내 측은한 마음이 들면서 정말로 슬퍼지기 때문이다. 삐에로는 자신의 입가에 스마일을 그려 넣지만 동시에 눈물 자국을 길게 그린다.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기억한다. 일본에 의한 학살과 모진 탄압에 대해 분노한다. 그러나 베트남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베트콩의 잘린 머리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활짝 웃으며 찍은 한국군의 사진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다. 전 국민이 이라크에서 인질로 잡혀 죽은 김선일을 추모하지만, 이라크에 파병된 3000여 명의 자이툰부대가 그곳에서 몇 명을 죽였으며 그들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단일한 민족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역사상 전쟁을 겪지 않은 나라가 없고 전쟁이 나면 필연적으로 피가 섞인다. 민족이란 개념은 처음부터 허상인 것이다. 어디에도 없는 민족을 사랑하는 대신에 저 멀리 이국땅의 까만 피부를 사랑할 수는 없는가. 벽안의 금발을 사랑할 수는 없는가 말이다. 사람은 모두 지어미가 아홉 달 배 아파 낳은 새끼이고 물고 빨며 키운 자식이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고 존엄하지 않은 인간이 없다. 이미 세상의 빛과 소금인 누군가의 생을 앗기 위해 군대는 존재한다. 민족주의는 국가로부터 살인면허를 내리며 살인연습을 하는 군대에 입영하라고 권한다. 살인과 살인연습이 싫다면 남는 선택은 감옥행 뿐이라 말하고 있다.
5. 평화라는 길 위에서 변주곡을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레온하르트의 쳄발로로 듣는다. 사라방드 풍의 아리아와 서른 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곡이다. 악보에 적힌 도돌이표를 쓰지 않고 전곡을 연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개 50분 내외이다. 카이저 링크 백작의 불면증 치료를 위해 작곡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워낙 수학적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작품의 건축적 구조 때문에 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음악을 배우지 않았기에 그런 것은 잘 모르겠고, 그저 듣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이 곡에 빠져있다.
바흐(Bach)는 독일어로 ‘강’을 뜻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강보다는 좀 더 작은 샛강에 가깝다. 이름이 사람과 일치하는 경우는 원래 드물지만 초상화 속의 바흐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샛강’이라는 이름이 참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의 이름이라면 바다 중에서도 대양, 하다못해 흑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골트베르크의 아리아를 듣고 있으면 사라진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 위로 햇살이 빛나고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바람이 살랑 불면 나뭇잎 하나가 떨어져 뗏목이 되고. 그러니까 바흐는 영락없는 샛강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마음이 든다.
평화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치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지만 최소한 평화라는 가치는 절실하게 공유하고 있다. 덧붙여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또한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행동이 달라지고 의견이 갈리게 되는 지점에 평화라는 말이 가지는 무게를 재는 저울이 놓여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말하자면 우리는 변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악기도 없고 악보도 없다. 객석과 무대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지휘자와 연주자가 따로 없다. ‘평화로 가는 길’을 찾는 것을 포기하면 ‘평화가 바로 길’임을 알게 된다. 나는 이제 여러분도 거기에 서지 말고 평화 위에 서자고 말한다. 이곳에서 함께 서로의 서툰 변주를 들어주자고, 가끔 불협화음을 내거든 씨익 웃어주자고. 평화 위에서, 평화라는 길 위에서.
2013년 9월 24일
시리아와 강정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며, 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