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7일 금요일 오후 4시,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열렸던 병역거부자 조익진씨의 재판에서 조익진씨가 읽었던 최후진술문입니다.

선고공판은 1월 22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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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진술

 

한 해를 정리하며 많은 이들이 안도감과 설렘으로 시간을 보내는 연말입니다. 불금인 오늘 저녁, 아마도 직장인들은 송년회에서 괴로웠던 일 즐거웠던 일 모두 소주잔에 쏟아 부을 겁니다. 연인들은 크리스마스의 여운에 못 이겨 거리로 나설 테지요.

기분 좋은 흥분을 즐겨야 할 시간입니다. 서슬 퍼런 법정에 서서 감옥 행을 앞두고 있지만, 저 역시 어느 정도는 현재를 만끽하며 즐거움에 가슴 부풀어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끔 휘날리는 눈송이에 마음이 들썩임에도, 제 온 정신은 서릿발 같은 분노로 형형합니다. 군대를 비롯, 소수 지배계급을 위한 무장 권력 집단인 이 나라 국가기구로 인해 평범한 우리 모두의 삶과 평화가 위협받고,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와 삶

 

민중의 지팡이를 자처하는 대한민국 경찰은 역사상 최초로 이 나라 노동자 운동의 대표 조직인 민주노총 건물을 침탈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건물로 진입한 경찰은 백 수십 여명을 강제로 연행하고, 밀집해 있는 시민과 조합원들의 얼굴에 최루액을 난사했습니다. 저항으로 진입이 여의치 않자, 많은 사람들이 접해 있던 유리문을 해머로 깨뜨려 유리 파편이 마구 흩날리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민주노총이 위치한 경향신문 사옥은 1층부터 옥상인 16층까지 온통 초토화되었습니다. 사진 속 황폐한 풍광은 대한민국 자본주의 국가기구가, 필요하다면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의 자주적 결사권, 단체행동권과 언론 독립성조차 순식간에 위협할 수 있는 깡패 집단임을 밝히 보여줍니다.

황당한 것은 이 모든 일이 이미 피신해서 건물 안에 있지도 않은 철도노조 파업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강경 우파 정권이 주도하는 이 나라 국가기구는 공공재인 철도까지 자본에 팔아 넘기려 합니다. 경제위기의 고통을 노동자, 서민에게 전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맞선 파업을 가라앉히기 위해 온 행정부와 언론이 동원돼 비난을 쏟아냈지만, “안녕”치 못한 사람들은 거짓말에 속지 않고 파업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파업 태세도 단단합니다.

여론전과 동시에 직접 탄압도 쏟아졌습니다. 하루 만에 참가자 전원 직위해제 통보가 떨어졌고, 대규모 고소, 고발과 체포영장으로 분위기는 더 경색되었습니다. 비난이 통하지 않자 국가는 한층 더 폭력을 강화해 불법 침탈에까지 나섰습니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가는 노동자 상대로 말보다 주먹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이 국가를, 진정 ‘사회 계약의 산물’이나 ‘국민 전체를 위한 기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한민국 군대

 

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군대 역시 장병들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하며 철도 파업 탄압에 동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정권 당선을 위한 여론 조작에 앞장섰다는 사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군부에게 있어, 비정치적 기구여야 한다는 자유민주주의 질서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것은 바로 1%의 이익을 위해 무엇이 유리한지를 따지는 계급 지배 논리였습니다.

87년 항쟁과 노동자 운동의 등장으로 인해 군부는 표면상 정치 뒤 선으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박정희의 유신과 5월 광주의 끔찍한 학살을 잊을 수 없습니다. 5월을 노래한 어느 가삿말처럼 그 때만 생각하면 “가슴 [속] 에 붉은 피”가 솟구칩니다.

실상, 군부는 여전히 정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기반 중 하나가 군대입니다. 내각의 핵심 요직인 국정원장, 국방부장관, 국가안보실장이 육사출신이고, 정부 조직 수장 60명중 6명이 육사 등 사관학교 출신입니다. ‘육법당’이라는 케케묵은 표현이 부활할 정도입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 당시에는 군대가 직접 시위 진압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군대 역시 노동자 억압과 계급 지배를 위한 수단이자 지배 세력 그 자체입니다. 이런 군대에 입대하라는 것은 내 양심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강요하는 일입니다.

 

평화 위협

이 나라 군대로 인한 재앙이 단지 한반도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은 또 다른 비극입니다. 한국 군대는 동북아 긴장과 군비 경쟁 강화로 지역 평화를 위협하는 주범입니다.

한미일 동맹은 미국의 제국주의 세계 전략에 따라 대중국 포위망 형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선언하며 군국주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중국은 이에 반발하며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습니다.

대결은 점차 위험천만해지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 모두 유사시 “긴급 방어 조처”나 “격추를 포함한 강제 조처” 운운하며 서로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방공구역 선포에 화답이라도 하듯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습니다.

한국 군대도 이런 긴장 강화에 공조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8조원을 들여 전투기와 이지스함을 보강할 계획입니다. 남수단 파병 부대는 일본 자위대로부터 실탄을 받아쓰며 집단적 자위권 정당화에 협조했습니다.

집단적 자위권이 확대될 경우 유사시 일본 군대가 한반도로 진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 군비 증강을 위해 쏟아 부어진 돈은 이 나라 민중들의 피땀입니다. 공공철도 유지를 위한 착한 적자는 비난하는 지배자들이 국방비는 물쓰듯 뿌려대는 꼴입니다.

한편 주민들의 반대까지 거스르며 건설을 강행한 제주 해군기지는 중국 방공구역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위험해진 세계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한국 군대가 제국주의 세계 질서에 부역해 받아 먹으려는 콩고물은 결코 평범한 우리들의 몫이 아닙니다.

 

마무리

저는 이처럼 불의한 군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가치를 ‘국방의 의무’라고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이는 한국 지배계급의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와 계급 지배 질서 유지를 위한 ‘희생과 고통 전담의 의무’입니다. 저는 이런 의무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에도 보장된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제 받지 않을 권리인 ‘부작위에 의한 양심실현의 자유’는 기본권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물론 ‘양심의 자유를 비롯한 헌법적 기본권은 헌법과 국가의 법질서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장해야 할 상대적 자유’이므로 제한될 수 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제 신념이 그토록 신격화된 ‘국방의 의무’에 위배될 뿐 아니라, 자본주의 기성 체제와 이 나라 지배계급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미연방최고법원 판례처럼 자유민주주의의 낮은 기준에서조차 “다를 수 있는 자유는 기존 질서의 심장을 건드리는 사안에 대하여 다를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 여부로 검증되는 것”입니다. 제가 만약 실형을 받는다면, 이는 저의 범죄성이 아니라 이 나라 국가기구와 체제가 군대를 거부하는 신념조차 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하다는 것을 입증해줄 뿐인 것입니다.

철도노조는 역사상 최장기 파업을 이어가며 영웅적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정권과 경찰의 선전포고에 화답해 민주노총도 28일 하루 총파업과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지배계급의 고통전가와 반민주적 탄압에 맞선 노동자 투쟁은 더 확대될 것입니다.

따라서 설사 국가가 나를 감옥에 가둔다 하더라도 내가 지지하는 노동자 계급의 대의는 가둘 수 없습니다. 나는 신념을 꺾지 않고 석방 이후 체제에 맞선 대중 투쟁으로 다시 복귀할 것입니다. 내 신념에 대한 억압은 이를 더 굳게 만들어줄 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무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