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친구들에게

지정학적 긴장과 전쟁 위협으로 점점 더 ‘위험해지는 세계’가 되고있는 요즘입니다. 아베는 집단적 자위권 추진을 공식적으로 선포했고 중국과 러시아는 한미일 동맹에 맞선 지역 블록 형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중러 해상훈련 와중 중국 전투기와 일본 정보기가 30m까지 접근하며 일촉즉발의 위기가 벌어졌습니다. 평범한 ‘99%’의 이익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전쟁놀음 속에 우리 삶과 평화롭게 살 권리만 희생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모순은 국가 간 갈등뿐 아니라 국내 문제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한기총 부회장의 망언처럼 “돈없는 집 자식들이 수학여행 가겠다”고 나섰다가 사고를 당하자 ‘최종책임자’ 박근혜를 비롯한 국가 관료들은 무능력하고 부패한 대처로 일관하다가 생떼같은 수백 명의 목숨을 바다 속에 수몰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번 사태의 근본에 깔린 대기업의 이윤추구 논리에 대해 감옥에서조차 역겨움과 분노를 느낍니다. 규제 완화로 여객선 선령 제한이 풀리고, 선장을 비롯 다수 선원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안전교육 등 온갖 규제, 점검이 기업들에 맡겨져 무력화되고, 해상 구조가 사실상 민영화되고, 보험금 차액을 노린 선사측이 퇴선명령을 늦출 때 이미 대형 참사는 예정돼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몸은 감옥에 있지만 정신은 형형해지고 신념은 더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나날이 일어나는 부조리와 모순, 불의한 자본주의의 현실이 제 신념의 정당성을 입증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들어와서 근 두 달 간의 기간은 쉽지만은 않은 나날이었습니다. 오새 감옥은 많이 나아졌다고들 회자되지만 여전히 수용자 인권은 뒷전으로 내몰립니다.
저는 입소 첫 날부터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해야 했습니다. 소위 ‘알몸검신(정밀 신체검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옷을 강제로 탈의당하고 팬티가 내려진 상태로 발을 짓밟혀 멍까지 들었습니다. 당시 기동대원은 옷을 강제로 벗기며 “인권위 진정 꼭 해라. 그게 내가 바라는 바니까”하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 뒤에는 소측의 보복까지 당해야했습니다. 저는 ‘혼거불능’자로 하루만에 독거실로 옮겨져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보복성 검방까지 당했습니다. 이후 검방과 달리 기동대원들이 들어와 “이 방은 더 철저히, 원칙대로”하라고 지시하며 이불과 모포까지 펴보며 샅샅이 검사를 했고, 심지어 여러 차례 항의에도 불구하고 일기장까지 오래동안 검사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온갖 망언이 이어졌습니다. 한 기동대원은 “내가 결혼을 일찍 했으면 너같은 자식이 있으니 반말을 해도 된다”거나 “또 너냐? 넌 군대나 가”와 같은 폭언을 늘어놨습니다. 항문검사를 위한 강제력 행사에 동참한 바로 그 자였습니다.
감옥에 왔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권리까지 짓밟혀야하는 현실에 분노를 느낍니다. 저는 신념을 지키기위해 감옥에 온 양심수로서 억압에 굴하지 않고 억압기구인 감옥 당국에 맞서 싸우고자 합니다.
제가 당한 사건에 대해 인권위 진정을 했고, 헌법 소원 배상청구여부도 검토 중입니다. 법률적 상의는 천주교인권위와 하고있고 구속노동자후원회 소식지인 <세상 밖으로> 5월호에는 제 사건에 대한 기사와 기고글이 실렸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보루와도 같은 ‘전쟁없는세상’에도 지지와 연대를 호소드립니다. (혹시 전없세의 매체에 실려 제 사건에 대해 알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지요)

저는 현재 성동구치소가 아니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입니다. ‘알몸검신’이 문제가 되지 증거 수집 등을 방해하고 꼬리를 자르기 위함인지 갑작스레 이송되었습니다.
4월 25일일에 이감된 이후 한동안은 잠잠하게 지냈습니다. 소측이 볼 때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함인지 항문검사를 하지 않는 등 ‘알몸검신’을 간이 검사로 대체하는 양보조치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충돌이 시작되자 서울구치소 역시 성동구치소 못지않게 악랄한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소내에서 발견된 몇 가지 인권문제를 제기하며 개선을 요구하자 갖가지 악랄한 수법으로 보복, 방해, 기만 등을 자행한 것입니다.
제가 요구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운동장 벽면 색상 변경으로 인한 고충 해결입니다. 5월 넷째주에 운동장에 흰 페인트칠을 한 뒤로 반사광 때문에 눈이 부십니다. 특히 제가 사용하는 독거 운동장은 작은 부채꼴 모양이라 햇빛이 셀 때는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입니다.
둘째, 목욕시간 연장입니다. 지금은 옥수욕 기간이 끝났지만 5월까지만 해도 1주일에 한 번 온수욕이 제공되었는데 사동별 배분시간이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아 실제 목욕시간이 7분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물 좀 묻힐 때쯤이면 나오라고 성화니 목욕 때마다 재소자들과 교도관의 갈등도 반복되었습니다.
셋째, ‘기초질서지키기’ 명목의 인권침해 중단입니다. 이상 고온으로 날이 매우 더운데도 관복 상의조차 못벗게 하거나, 취침 시간 이전에는 눕거나 모포를 방석용으로 사용하는 일도 금지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넷째, 거실에 부착된 ‘수용생활 안내문’에 위법한 내용 교체입니다. 여기에는 “서신을 봉합하지 않은 채”로 제출하라고 안내되어 있는데, 이는 형집행법 시행령 65조 위반입니다. “금지물품, 부정연락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개봉하여 검열할 수 있다”는 내용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형집행법 43조와 시행령 65, 66조는 개봉사유와 검열 사유를 구분하고 있으므로 금지물품 확인 등을 위해 개봉한 서신을 검열까지 해서는 안될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런 요구에 대해 감옥 당국은 비열한 탄압으로 대응했습니다. 운동장 순시 중이던 소장을 운동장 앞에서 우연히 만나 개선을 청원했으나 30분 뒤 거실로 기동순찰대가 들이닥쳐 보복성 검방을 진행했습니다. 검사 대상은 제 방과 옆 방뿐이었고, 그나마 제 방에는 옆 방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들어와 진행했을 뿐 아니라, 옆방과 달리 검사 도중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게 시야를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소장 대리로 관구 계장과 진행한 면담 결과도 결국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복지과 면담을 통한 목욕시간 결정 기준, 근거 확인’, ‘기초질서지키기 관련 규정, 법령확인 뒤 안내’ 등을 약속했으나 미이행됐고, 그 뒤 ‘소장(대리)면담 결과 미이행’과 ‘보복성 검방’에 대해 추가로 제기하며 소장 면담을 제기하자 아예 묵살되었습니다.
사동 주임은 정당한 사유도 없이 면담 거부를 통보하면서 징벌 위협까지 가했습니다. 대화 도중 갑자기 면담이 끝났다며 입실을 지시하고 순식간에 ‘지시불이행 3회’라며 경고하는 식입니다. 그는 “제대로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건 병신같은 짓”이라며 비속어까지 쏟아냈습니다.
이 모든 일이 ‘교정1번지’라 불리는 서울구치소에서 벌어지는 일이자 이 나라 감옥의 인권 실태를 보여주는 산 증거입니다.

물론 줄기찬 항의 과정에서 성과는 있었습니다. 서신을 미봉합 상태로 내도록 한 내용은 교체했습니다. 제 방의 안내문이 예전 것이라 새 것으로 바꿔단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쉬운 문제라 들어준 것이겠지만 이 역시 사동 주임에게만 얘기했을 때는 실현되지 않았던 것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운동장 문제에서도 진전이 있었습니다. 보안과장 순시때 대리로 기동대장과 진행한 면담에서 “운동장 벽에 그림을 칠할 것”이라는 답변을 얻어냈습니다. 오늘까지 1주일이 되도록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보아 공언으로 그칠 가능성도 있지만 이후에 투쟁을 이어가기에는 좋은 발판을 만든 것이라 하겠습니다.
‘알몸검신(정밀신체검사)’과 서울구치소 내 갖가지 처우 문제 등에 대해 앞으로도 줄기차게 싸워나가고자 합니다. 유사시 징벌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호소드립니다.

추후 교도소로 이감되면 더 큰 충돌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는 현재 분류심사를 거부해 S4처우급을 받은 상태고 교도소로 가면 출역마저 거부할 계획입니다. 죄를 짓지않은 제가 죄질에 따라 수용자를 분류하는 심사를 받을 이유가 없고, 강제노동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분류심사와 그 결과로 나오는 경비처우급은 수용자의 처우를 극단적으로 차별하고 가석방 심사에도 반영돼 수용자들이 여러 불만에도 불구하고 당국에 복종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통제수단으로 작용합니다. 분류검사의 다양하고 복잡한 기준 가운데는 놀랍게도 ‘공권력에 대한 태도’라는 조항까지 존재합니다.
원칙적으로 S4급 수용자에게는 출역을 시키지 않게 되어있으나 이언령비언령 고무줄과 같은 감옥 당국이 무슨 짓을 벌일지 알 수 없으므로 어떤 고초에도 굴하지 않고 맞받아 싸울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6월 18일에는 거리 시위 벌금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쌍용차 연대집회, 민주노총 파업집회 참가 혐의인데 1심 재판부는 부당하게도 50만원을 판결했고, 심지어 검찰은 벌금이 적다며 항소까지 해서 감옥에 갇혀있는 제게 보복하려 합니다. 검찰은 노골적으로 ‘공공복리를 위해 집회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항소이유서에 썼습니다. 세월호 추모집회 참가자를 수백여명 연행하고 거리시위 ‘삼진OUT’제도로 집회참가자를 구속까지 시키겠다는 비민주적 탄압 의도를 여기서도 드러낸 것입니다.
원래 5월 21일에 항소심이 끝날 예정이었으나 재판장은 최후진술만을 위해 한 차례 더 기일을 잡아 진행하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벌금 항소심이 세 번째 기일까지 가는 경우는 흔치않을 뿐더러 최후진술만을 위해 속행하는 것도 매우 드문 사례입니다. 당시 저는 신상발언으로 저의 병역거부 수감사실과 한국의 병역거부 실태, 감옥에서 당한 인권침해에 대해 알리고, 제가 참가했던 쌍용차 집회와 민주노총 파업집회의 정당성을 주로 세월호 사고에 빗대어 주장하는 중이었습니다. 재판장이 제 이야기에 공감하여 무언의 응원을 보내준 것일까요? 아니면 세월호 관련 내용이 자기 재판에서 울려퍼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최후진술을 중간에 끊을 핑계를 만든 것일 뿐일까요?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재판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겠지요. 어느 쪽이 진실이건, 저로서는 다시 한번 법정을 이용해 정권과 경찰, 검찰을 비판하고 저항운동의 정당성을 옹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지금 상황으로 보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노가 그때까지 쉬이 가라앉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꿋꿋하고 단호하게 싸워나갈테니 감옥 안팎에 계신 다른 분들께도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옥에 들어온지 두 달이 넘게 지나서 첫 서신을 띄우게 되어 면목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종종 이렇게 서신으로 소식전하고 부탁도 청하겠습니다. 평화와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동지들께 연대 인사를 보내며, 글을 줄입니다.

2014년 6월 3일 화.
서울구치소에서 4566번 익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