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전쟁없는세상

여옥, 오리, 청희, 김영준, 최진규, 임재성 님 등 전없세가 조직해준 많은 엽서 덕분에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심지어 싱가폴, 남아공처럼 먼 이역만리에서까지 잊지않고 엽서를 보내준 깊은 연대의 정에 가슴이 뭉클했답니다.

 
저는 지금 3차 단식에 돌입했습니다. 교황방한일인 14일부터 ‘세월호참사 해결, 공안탄압 중단, 징병제 폐지’와 ‘감옥인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체복무 도입을 넘어 징병제 폐지를 요구하는 이유는 윤일병의 죽음으로 징병제도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에 없이 표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끔찍한 죽음을 보며 평범함 99%의 자녀를 인권 침해의 소굴로 강제동원하는 비인간적이고 억압적인 제도에 대해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1% 기득권 지배층과 이를 위한 이윤 중심 체제 국가의 지정학적 이익을 위해 동원되는 것이 현 군대의 본질이지만, 심지어 징병제도로 평범한 청년들의 삶과 ‘목숨’까지 희생되고 있음이 새삼 비극적으로 우리 가슴을 쥐어짜낸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나 공안탄압 같은 이윤 중시, 민주적 권리 후퇴의 문제도 ‘근본적으로’ 이 같은 문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윤을 위해 안전을 내팽개치고 노동자 서민의 자녀에 대한 구조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비정한 체제와 정권 하에서 윤일병의 죽음, 비인간적 군대 또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에 저항하는 세력, 또는 체제비판적 사상은 싹을 잘라놓겠다는 것이 공안탄압의 본질입니다. ‘공공의 안녕’을 위한다는 명분 하에 집회 처벌, 노동자 투쟁 등에 대한 손배가압류, 국가보안법과 ‘내란음모’ 처벌 시도가 여전히 잔존하고, 오히려 강화되고 있습니다.

 
감옥인권문제 역시 이러한 사회구조의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경쟁과 이윤, 자본의 효율을 위해 운영되는 체제에서 ‘범죄자’들의 권리와 이들에 대한 지원 따위 완전히 뒷전으로 내몰립니다. 피억압계층을 서로 반목시키고 분열시키기 위해 오히려 이들을 의식적으로 차별하기도 합니다.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집단이 존재한다면 다른 집단에 대한 억압도 한결 수월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의 두 달여에 걸친 단식과 부분 단식 등으로 체력이 저조하고 몸 이곳저것 성한 데가 없지만 감옥 안에서라도 사회 진보와 인권 보장을 위한 노력에 한 손 보태고 싶습니다. 사정항 자세한 내용은 ‘다른 경로’를 통해 전하겠지만 강제 항문검사, 일기장 검사, 보호장비 ‘고문’, 징벌 조사 수용, TRS 전자영상장비를 통한 일상적 감시, CRPT, 책 서신 검열 등 제가 당한 인권침해에 대한 문제제기도 꼭 필요합니다. 제 한 몸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사자가 싸우지 않는다면 어떤 외부연대도 효과적으로 건설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코 쉽지않은 시간이었지만 제가 당한 고통을 그동안 수많은 수용자들이 ‘죄를 지은 범죄자’라는 이유로, 못배우고 아는 것도 없이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탄압에 굴복해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더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엽서로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표해 주셨는데 답장이 늦어 면목이 없네요. 나아질 때도 있고 안좋아질 때도 있지만 두 달여 동안 기력과 집중력이 온전치 못해 쉽지가 않았습니다.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저항과 ‘직접행동’을 이어갈테니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연대를 부탁합니다.

최근호 <전쟁없는세상>의 내용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관심이 많은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에 대해 요모조모 따져 비판적으로 분석한 것이 좋았습니다. 여옥님의 감옥체험기도 좋았습니다. 짧은 기간이라 경험도, 느낀 것도 분명히 차이는 있겠지만 공감되고 무릎을 탁 친 부분도 많았습니다. “안과 밖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말에는 적극 공감하면서도 조금은 반성도 하게 되었습니다. 단식으로 힘들다는 핑계로 바깥에 충분히 서신을 쓰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요. 항문검사 관련 기고 같은 경우도 그렇습니다. 여옥님이 외국가기 전 선의로 기고를 요청하고 지지엽서까지 많이 조직해주셨는데 결국 요청에 응하지를 못했네요.
그러고보니 <전쟁없는세상> 저널에 대해 질문할 것이 있습니다. 7월 30일에 발송한 사각봉투에 ‘서적’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음에도 수감자우편물만 첨부되어있어 문의했더니 책은 원래 들어있지 않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8월 19일에는 ‘우편발송스티커’조차 붙여있지 않는 비정상적인 우편에 42호가 담겨왔습니다. 이상하게도 이번에 받은 42호의 발생일은 8월 1일인데 제가 갖고있는 41호의 발행일은 5월 1일이더군요. 이외에 3권 정도 과월호가 징벌방 금치 과정에서 없어졌는데 이 문제가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갖고있는 41호는 ‘다른 나라의 군사제도 살펴보기’, 42호는 ‘군사기지와 이웃하여 산다는 건’ 입니다.

 
저와 달리 바깥 분들은 부디 건강하게 대중운동 한복판에서 진보와 정의의 길을 닦아나가길 빌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2014년 8월 19일 화.
서울구치소 4566 조익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