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에게.
얼마 전 들어온 편지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제 제 후원회 그룹게 제 편지 스캔본과 타이핑 버전이 동시에 올라와서 가독성이 한결 나졌다고… 세상에. 그럼 여태까지 제가 보낸 편지는 스캔본만 올라왔다는 거군요. 제 악필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을 것 생각하면 죄송함과 민망함에 자다가도 이불을 뻥뻥 찹니다.
그래도 초기에 비하면 글씨가 좀 나아지지 않았나요? 편지 쓸 때, 항상 공책에 한번 쓰고 편지지에 옮겨 적어요. 그러면 제 쪽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나 확인할 수도 있고 옮기는 과정에서 문장을 조금 다듬기도 합니다. 그런데 벌써 편지용 공책이 4권이 넘었네요. 이 정도 펜 글씨 썼으면 좀 나아졌지 싶어요. 물론 판단은 여러분 몫입니다만…

 
근황을 나누자면 드디어 ‘직원이발’로 전업했어요. 이제 수용자가 아니라 직원들 머릴 자릅니다. 가위를 쓰고 싶고 더 나은 기술을 익히고픈 마음에 전업하긴 했지만 쉽진 않네요. 수용자 머릴 자를 땐 마음이 편했는데 직원들 머리 자를 땐 식은 땀이 다 납니다. 얼마전엔 CPRT(기동순찰팀) 계장님 머리를 자르는데 어휴… CPRT는 소내 질서 유지를 위해 있는 팀인데요. 선도부 비슷한 거 같기도 해요. 물리력도 동원하고요. 다들 인상도 싸납고 해서 마주칠 때마다 긴장되고 그러거든요. 그래도 환경은 수용자 이발보다 훨씬 좋네요. 직원들 중에서도 별로인 사람이 있긴 하지만 수용자보단 훨 괜찮아요. 세탁기도 있어서 손빨래 안 해도 되구요.
날씨는 정말 많이 추워졌어요. 이번에 전업하면서 새로 이사온 방이 6下30 인데요. 30방이면 제일 끝방이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추위가 남다르네요. 난방이 되면 나아진다고 하는데 그 때까지 도저히 못참겠고 결국 내복과 겨울옷을 구입해 입고 있어요. 이제 좀 살만해요.

 
아, 드라아 보는 재미가 요즘 좋네요. 욕하고 짜증내면서 본 <왔다! 장보리>와 <운명처럼 널 사랑해>, <조선 총잡이>가 끝나고 이제 좀 볼만한게 나옵니다. 화, 수 에는 <비밀의 문>, 목, 금에는 <내일도 칸타빌레>, 주말에는 <가족끼리 왜 이래>가 나와요. 유동근은 얼마전 정도전에서의 이성계 이미지가 아직 제 뇌리에서 안 없어져서 갑자기 ‘간나새끼’라고 할 것만 같아요. <내일도 칸타빌레>에선 심은경이 너무 귀엽네요. 아 편지로 드라마 스포는 하지 마세요. 여기는 바깥보다 한 두 주 늦게 나오거든요. <미생>도 보고 싶은데 그건 케이블이라. ㅠ.ㅠ

 
근황 전하긴 했는데 뭔가 영양가 없는 얘기만 늘어 놓은 것 같아요. 요즘 제 삶이 이렇게 영양가 없는 걸 수도 있구요. 더 나아지는, 발전하는 느낌이기보다 정체되고 늘어지는 요즘이에요. 뭐 좋은 방법 없을까요?
그래도 하루하루 이어지는 거에는 분명 의미가 있겠죠. 다음엔 더 나은 소식 전하길 바라며 이만 줄여요. 안녕!

 

2014. 10. 25
서울남부구치소 6동 下층 30방에서
여러분의 친구 상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