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식구들 & 수감자분들께
안녕하세요. 양심없는 병역거부 신입 재소자 김경묵입니다. 1월 14일에 수감되었는데 2달이 지난 시점에서야 처음 안부서신을 보냅니다. 저는 현재 남부구치소에 있습니다. 그간 이곳 생활을 하며 좀 적응이 되면 전없세에 서신을 하려했지요. 그러나 체제부적응자답게 아직도 적응 중인 상태라(아마 출소때까지 ‘적응중’으로 사려됩니다) 더 늦기전에 ‘수다떨고 징징대도 괜찮다’는 나무님의 글에 힘입어 펜을 들었습니다.
실제로는 이미 3월 7일자 <한겨레> 신문을 통해서 그간 구치소생활을 제대로 수다떨고 징징댔습니다. <한겨레>신문을 구독하시는 분들은 그날 놀라셨을거에요. 대낮부터 악플을 불러모을듯한 제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표지사진을 보고서요. 여기서 인터넷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다행으로 느껴지더군요.
기사보도 이전의 제 소식은 그 글에서 제가 쓴 수감기를 통해 알 수 있으실 거에요. 그리고 기사 이후이 상황도 나름 흥미진진했습니다. 기사가 나가자마자 그날 오후 전 보안과장님 면담, 곧이어 사회복귀과에서도 찾아와 기사가 나가게된 경위와 의도에 대해 조사받았습니다. 그렇게 화요일까지 조사, 면담을 했습니다. 제 글 중에 구치소 생활상을 묘사한 것과 관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어조가 있었기에 관 측이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애초 구치소의 규율에 관한 비판이 목적인 글이 아니라, 병역거부자의 수감생활의 고충을 강조하다보니 글이 그리되었다고 사실 그대로 답했죠. 이 문제가 더 커지지 않고 마무리되길 바랬기 때문에 조사에 협조적으로 응했습니다.
이후 제게 내려진 처분은 ‘서신검열 및 접견시 교도관 참관’입니다. 이게 정당한 행정처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루빨리 이같은 조치에서 벗어나기위해 일단은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다행이 징벌처분은 아니기 때문에 당분간은 상황을 지켜보려 합니다.(궁금한 것이 수감 중인 재소자가 외부 글 기고를 할 수 없는 건가요? ‘구치소의 질서와 안녕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같은 제재가 취해졌는데, 이게 어디까지가 객관적인 사실인지 판단이 되지 않네요. 사실이라면 앞으로도 제가 외부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것이 행정적 처분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행위가 되나요?)
어쩌다보니 신고식 제대로 치루고 있습니다. ‘조용히! 건강하게! 알차게!’를 모토로 했던 수감생활이 혼거방에서 독거로 옮기며, 또 저의 수감기사가 보도되면서 와장창 깨지고 있습니다. 독거로 오면서 붙은 시찰 딱지가 한 달만에 더 강화되어 특별관리 시찰로 진화했으니 말입니다! 나름 사회생활을 잘해왔다 생각하며 지냈는데, 이곳에 온 뒤 지난 2달간은 제가 얼마나 사회부적응자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허물벗은 세상을 겪고있는 듯 합니다. 모든 수감자들이 겪었을/겪고있을 어려움이겠지요.
우리 순둥이같아 보이던 병역거부자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그동안 놀려대기만 했던 샤샤&동기에게마저도 경외감이 들게 만드는 수감생활!) 그래도 전 징역벼슬인 독방이라 나름 편하게 지내고 있는 듯 합니다. 전없세에서 보내주는 수감자우편물의 편지들도 위안이 되고, ‘오월의봄’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들도 한달음에 다 읽었습니다. (출역나가지않고 혼자 생활하니 하루종일 책읽고 TV만 보게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남부구치소에 남으려 출역신청을 했었는데, 의도하지않게 이번 기사보도로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달 안에는 교도소로 이감가게될 것 같습니다. 옆집인 남부교도소로 이사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남부구치소에서 상민씨와 몇 차례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사회에서 뵌 적이 없지만, 이곳에서 만나니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항시 붙어지내다 마음맞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던지요. 이곳 생활하며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순간들이었습니다.
아직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네요. 이 추위가 한바탕 지나고나면 어느순간 봄이 와있을테지요. 전없세 식구분들도 전국 곳곳에 외롭게 퍼져있는 병역거부자분들에게도 설레임과 함께 올 봄 맞이하길 바랍니다.
2015. 3. 12. 남부구치소에서 경묵.
P.S) 이 편지를 본 병역거부자들이 “우리땐 더했어, 이것아!”라고 속으로 생각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