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전없세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조금은 쌀쌀한 기운이 감돌던 봄의 초입에 인사드리고 이제 인사를 드리는거 같네요. 하하.
다들 건강하게 잘지내고 계신가요? 메르스로 난리던데, 다들 무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바깥에선 어떤 분위기, 어떤 체감을 하고계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안은 아무래도… 크게 느껴지는 정도는 아니고, 그저 면회오려는 사람들이 메르스 이후로 면회를 미루고, 가족만남의 날이니 장소변경접견이니 하는게 취소되면서 간접적으로 심각성을 느낄 뿐입니다. 쳇..ㅋㅋ

오늘도 12개월째, ‘어느새…’와 ‘아직도…’가 교차하는 시기로 접어들었네요. 뭐가 변했고, 뭐가 그대로인지를 딱히 답할 상황은 아닌거 같고, 그저… 제 삶의 여러 가지 여정 중 하나 -어떤 점에서는 소중하고, 어떤 점에서는 그렇지 않은-로 이 생활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정도를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병역거부’를 선택해 이곳에 들어왔지만, 정작 ‘병역거부’에 대해 고민하고 말을 하는 일은 더 줄어든 아이러니를 몇 달 전에 깨달았었습니다. 뭐,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진지하게 할만한 환경이 아니기도 하고, ‘외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자칫 잘못하면 ‘희생자’로서의 위치 때문에, 불필요할 정도로 무거운 느낌을 줄거 같아서 자제하다보니 이야기 자체를 안하게 되더군요. 오늘은 전없세 분들게 하고싶은 이야기를 부담없이 해볼까 합니다.

몇 달전 -지금까지도- 불거졌던 병역거부 관련 이슈는… 역시 병역거부-기피에 대해 ‘신상공개’를 하겠다는 일일겁니다. 이에 대해 분노하고, 또한번 ‘국가’에게 실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너무 당연해서 자동적 반응 이상은 아닌거 같고요, 뭐..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하더군요. 병역거부-기피에 대해 중범죄자에 한해, 혹은 재범율이 높은 특정 범죄자에 한해 이루어졌던 ‘신상공개’를 청구한다는 것, 이는 국가주의의 확장이자, 동시에 위기를 의미하기도 할겁니다. 순탄하게, 모든 것을 장악한 체계는 굳이 이렇게 극단적인 방식으로 스스로를 내세울 필요가 없을테니. 우리사회에서 ‘국가’ -신성한 무엇으로서의 국가-를 둘러싼 긴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징표가 이번 ‘사태’가 아닐까 합니다. 주인기표-헤게모니를 장악한 상징-은 도전받을수록, 스스로가 스스로의 한계점과 문제점을 드러낼수록 거세지기 마련입니다. 세월호 사건이나 이번 메르스 사태나, 우리의 ‘국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한다는 원론, 이상과는 정반대의 모습 뿐이었지요. 뭐, 국가라는 체계자체가 사람들 개개인의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기능을 최우선으로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고, 역사상 그런 국가가 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는 데 제 모든걸 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사실 이런점을 고려할 때 우리가 하는 병역거부는 국가라는 체계의 입장에서는.. 강간, 강도, 살인에도 비할 수 없는 행위이지요. 그런 범죄들은 국가공권력의 필요성을 ‘입증’하지만 -그런 점에서 국가 입장에선 반가울 수도 있는- 우리의 행위는 국가의 부당함을 ‘입증’하니까요. 그야말로 우리는 국가의 토대 자체를 공격하는거지요! ‘정신’을 직접 부정하는 셈입니다. 더 나아가면 이 사회의 주류 헤게모니 전반을 부정하는 행위일테고!

… 뭐 이렇게 생각을 하면 병역거부가 뭔가 더 숭고한 행위인거 같고, 제 자신이 대단한 투사가 된거 같기도 하고, 이놈의 국가가 도입하려는 가당찮은 신상공개도 이 상황을 한층더 의미있게 만들어주는거 같기도 해서 기분이 좀 나아지긴 합니다.

하지만 제 자신을 돌이켜보면… 한계점은 명확합니다. ‘원래부터’ 병역거부라는 행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던 사람들에게는 제 행동이 어떤 울림을 주었겠지만 -음,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식상한 울림이었을수도?ㅋㅋㅋ- 사회적인 층위에서 의미의 구조나 배치를 바꾸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좀더 소소하게 말을 해서, 의미의 구조나 배치를 직접 건들지는 못해도 그럴 가능성이라도 높였을까(제 행위가).. 라고 물어봐도 자신이 없네요. 어찌보면.. 예전의 병역거부자들이나, 그들과 함께했던 분들과 이 부분에서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제 행동이 사회적으로 자리매김한다는 확신이나 느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같은건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씁쓸함이나 허무함이 밀려오곤 하지요.

물론 사회적 층위가 아닌, 제 개인적인 삶의 층위에서는, 병역거부는 아주 중요한 선택이자 행동이었고, 지금까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허나 위의 한계점을 제가 절실히 느끼고 있기에, ‘1년 6개월’을 살아내는 일은 국가주의에 가담하는 것에 대한 거부, 폭력을 문제해결 수단으로 삼는 것에 대한 거부의 출발점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아직 출발점에 머물러있는 주제에 이런 말을 하니 앞서가도 너무 앞서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하. 어쨌든 아직은, 저에게 병역거부라는 행위는 사회적 층위에서는 무력했던 행위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인간의 행위의 의미, 평가는 소급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거겠고, 그럴 수 있기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걸겁니다.

어찌하다보니 꽤 옆길로 많이 샜는데, 어쨌든, 이번 신상공개로 인한 ‘병역거부를 대한민국에서 선택한다는 것’은 더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아, 아직 결정이 완료된 것도, 바깥에서 열심히 대응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습니다. 다만.. 이 안에서 접하게되는 제한된 정보들 -신문기사나 뉴스-로는 신상공개를 향한 절차들이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거 같아서 좀 안타깝기도 하고, 애초에 이런 발상이 현실화될 수 있는 이 상황 자체가… 병역거부를 더 어려운 선택으로 내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예전에 여옥씨께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오릅니다. 대체복무제가 만약 도입된다면, 병역거부자들은 더욱더 소수자가 될거고, 병역거부운동은 더 어려운 ‘길’이 될거라고. 역설적이지만, ‘엉뚱한’ 이 신상공개로 인해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또 오리님께 들었던 말이 떠오르는군요.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는 것이 반드시 ‘좋은 방향’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말 말입니다. 단순한 음과 양의 이분법의 구도 -좋은 면이 있으면 나쁜 면이 있다는 식의- 가 아니라, 사회가 가지는 복잡한 의미 네트워크 안에서, 대체복무가 반드시 이 의미네트워크의 방향을 바람직한 쪽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뜻이었지요. (이렇게 해석해도 되겠지요?^^)

저는 지금의 상황도 반드시 ‘나쁜 방향’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 상황 자체는 나쁩니다. 명백한 퇴보, 퇴행이지요.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이러한 변화 -비록 퇴행일지라도-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무엇이 어떻게 되든간에… 상처받고 낙담하지 않았으면, 그리고 이왕이면.. 그래도 잘 막아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봅니다. 하하하.

메르스도 메르스이지만, 요새 날이 많이 덥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별생각없이 구운계란을 까서 입안에 넣었는데, 맙소사…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맛과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는;; 윽 날씨가 덥다보니 유통기한이 남아있던 물건이었는데도 완전히 썩어버렸더라구요. 나원참. 아예 썩어서, 입에 넣자마자 알아차린게 다행이라면 다행인건지-_- 뭐, 배탈은 안났습니다만, 계속 가글하고 양치했는데도 한동안 뭔가를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두려웠다는… 한 세 시간 정도이니 ‘한동안’이라고 표현하기는 민망하네요ㅋ 전없세 여러분들도 상한음식 조심하시고, 더운 여름 동안 체력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다들 건강하시길 바래요~ 소등이 된 관계로 좀 급하게 마무리 짓는지라 뭘 깜박한거 같기도 한데, 그냥 기분 탓이라 생각하려 한다는!

 

2015년 6월 10일 여주교도소 강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