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분들께.

그동안 별로 나눈 이야기들도 없는거 같은데 어느새 헤어질 시간입니다…라고 운은 띄웠지만 남은 얼굴들이 마음에 걸려 쉽게 글이 안써지네요. 두 번이나 머리를 밀어준 성민씨, 단골손님 정훈씨, 빵잽이 펜팔친구 길모씨, 이리저리 스쳐가며 아슬아슬하게 이야기나눈 경묵씨, 그 외에 다른 CO분들 모두 몸과 마음 건강하시길 빕니다. 작년 5월, 노역으로 들어와서 의료과 앞에서 만난 여옥과 공범 오리도요. 그때 생각하면 정말 서프라이즈입니다.

출소를 20여일 앞둔 지금, 지나온 1년 2개월을 돌아봅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제 징역의 시작은 병역거부를 처음 고민하기 시작한 2007년 여름부터네요. 그 시간들이 어찌나 힘겹던지 마침내 수감되던 순간에는 후련하기까지 했어요. 그 사연들을 구구절절 늘어놓기엔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삼아도 부족할겁니다. 아무튼, 어쩌다 남부구치소로 ‘골인’되서 어쩌다 ‘이발’이란걸 1년 넘게 했네요. 나가서 아빠머리 예쁘게 잘라드릴 생각하니 가슴벅차요. 근데 징역은 역시 ‘사람징역’이라고, 그동안 거울을 보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투영하며 오르락내리락 하는 시간들을 보냈네요. 소중한, 귀한 경험입니다. 모든걸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게 없다는 옛사람의 말처럼 많은걸 얻어가는 것 같아요. 물론 이 모든걸 ‘승화’시킨 제가 가장 훌륭합니다.(농담) 다시 생각해보면 처음 분류심사 받을때 분류과 직원이 증인들 작업장에 넣어주겠다고 한걸 고사하지 말았어야했나 싶어요. 그나마 수용시설에서 제일 괜찮은 그룹이 증인들인데 말이죠.

지금 제 심정은 출소를 앞둔 장기수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1년 3개월 산거 치고는 웃기지만 어떤 시인이 그러던데, 제 나이면 잔치는 끝내야 한다네요. 뭔가 제로베이스로 세상에 던져지는 것 같아 두려움 반 기대감 반입니다. 일단 공안에서 운영하는 일자리교육을 잘 받아볼 생각입니다. 지난 달에 1차 교육을 수료했는데 괜찮더군요. 다른 분들꼐도 추천드려요. 시간 잘 깨지는건 덤입니다.

다시금 병역거부를 결심할 때 절 움질인 말을 떠올립니다. 훌륭한 사람이 훌륭한 선택을 하는게 아니라 훌륭한 선택들이 훌륭한 사람을 만드는 거라고… 이 말이 움츠러들었던 제게 용기를 줬어요. 그리고 결국 절 설명해줄 수 있는건 인생이란 그래프에서의 날카로운 변곡점들이 아닌, 지금 제가 두 발을 딛고있는 좌표겠죠. 사회로 돌아가서도 이걸 계속 지키며 살고 싶네요.

좋아하는 사람, 웹툰, 음악, 영화, 드라마, 책, 자전거, 그 외 모든 것들. 단골 술집에 키핑해놓은 양주처럼 다시 누릴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무척 좋아요. 조금 먼저 나가서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정탐하고 알려드릴게요. 그럼 안녕!

2015. 7. 7.
6동 中층 11방에서
상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