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길모입니다.
우선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어떤 경로로든 양심적 병역거부와 함께 하시는 분들에게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온 지 이제 3주 정도가 지났네요. 그 안에서는 더디 가던 시간이 정말 미친 듯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삶이 너무나 조급하게 느껴질 정도로. 1년 동안 멈춰져 있던 시계바늘이 몇 배로 빠르게 돌아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감옥에 있을 때보다 더 풍요롭고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냥 바쁠 뿐이고, 아직은 자유의 무게에 눌려 있을 뿐이지요. 그래도 오히려 감옥을 통해 비축해놓은 건강과 여유 덕에 그럭저럭 버티는 게 아닐까 싶다는.
어찌하다보니 운 좋게 1년 1개월 만에 바깥 공기를 마시게 됐습니다. 역대 CO들의 감옥 사를 되짚어 봐도 이렇게 운이 좋은 케이스는 희귀 했던 거 같은데, 저에게 이런 행운이 올 줄은 몰랐네요. 저보다 먼저 들어가셨던 분들이 아직 감옥에 계신 걸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괜히 미안함이 앞섭니다. 그리고… 왠지 가석방으로 인생의 운을 다 날린 기분이라 모든 면에서 좋지만은 않습니다. 예상(?)대로 바깥에 나오니 마음 먹은 대로 풀리는 일들이 별로 없거든요. 괜찮습니다. 이런 인생이 더 익숙하니. 하하. 뭐, 이건 농반 진반이고.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직접적인 실천을 마치게 된 시점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 기억들이 스쳐갑니다. 그 동안 제 내면에서는 정말 많은 갈등과 변화들이 있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일단 처음으로 돌아가 볼까요. 저는 처음부터 평화주의자였고, 군대를 거부했던 건 아닙니다. 지금껏 살아온 삶의 기간을 되돌아보면 이런 고민을 했던 건 정말 짧은, 근래의 몇 년에 불과했지요. 저에게 적극적 평화주의자가 될 요소가 전혀 없던 건 아니었지만, 남성으로서의 삶이 더 중요했었죠. 하지만 훈련소에 갔던 날, 그런 삶보다 ‘자유’를 더 원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훈련소에서 도중에 나온 뒤 한동안 우울증으로 고생을 했었죠. 결국 저는 병역의 문제를 반정치적, 반자유적 관점에서 접근을 했고, 여기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길을 선택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전없세 문을 두드리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넘었네요. 2013년 5월이었으니… 어찌 보면 수감된 순간이나 나온 순간보다 이 순간이 더 중요했었다는. 정말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천하던 첫 순간이 아닐까 하네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사무실에서 나온 순간이 떠오릅니다. ‘아, 이제부터 내가 정말 새로운 삶, 길을 가겠구나…’ 그 이후에 수감되던 날까지,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저에게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제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분들이 저에게 응원을 보내주셨었습니다. 아마 평생 잊기 힘들 겁니다. 이 당시에 제가 얻었던 희망과 정신적인 힘들은. 감옥 생활 내내 떠올랐었고, 지금도 힘을 받고 있으니까요. 또, 이 기간 동안 저는 평화라는 가치, 남성성이라는 가치에 대해 정말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제 삶의 많은 것들이 달라졌어요. 평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고, 더 이상 남자다움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를 얻게 되었으니.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원동력을 얻었다고 할까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쉬움도 많이 남는 게 사실입니다. 너무 의욕이 앞섰고,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제가 힘들게 한 사람도 있었고, 제가 할 수 있던 일들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던 부분이 반, 변명할 수 없는 제 어리석음이 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차분하게 생각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미 시간은 지나가버렸고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리고 감옥 생활. 1년 1개월 동안 일일이 말하기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혼자 멘붕이 와서 미칠 것 같았던 순간도, 너무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렸던 순간도 있었고, 징역이 깨지기 일보 직전까지 몰렸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무력감에 치를 떨었던 순간도 종종 있었지요.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행보를 되짚어 볼 수 있었고, 앞으로 살아갈 힘을 비축하던 기간이었거든요. 나왔기에 하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던 것도 좋았고, 건강을 되찾은 것도 좋았다는. 나름대로 그 안의 생활을 즐긴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바깥이 더 좋은 것도 사실은 사실이지요. 어쨌든. 저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실천을 직접적으로는 마치게 됐습니다. 아직은 가석방 기간이지만. 후후후.
하지만 저에게 감옥에 들어갔던 순간보다 전없세 문을 두드렸던 순간이 더 중요하듯이, ‘감옥에서 나온 오늘’보다는, 앞으로 제가 살아갈 삶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양심적 병역거부는 끝난 게 아닙니다. 제 삶 속에서 계속해서 이어지고 나아가야 할 일이지요.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제 자신이 겪었던 몇 가지 제도적 절차 말고는 말이지요.
물론 제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 거라는 확신을 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 가지 삶들을 꿈꾸고 있지만 삶은 예측 불가이니까요. 그래서 몇 가지 꿈들만 살포시 내보인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이 사회에서 살아나간다는 꿈도 있고, 철학도에서 철학자로 업그레이드(!) 되고 싶다는 꿈도 있고, 좀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꿈도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많은 일들을 꿈꾸고 원합니다. 그리고 삶 속에서 이것들을 이루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겠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끊임없이 노력할 뿐입니다.
후원회를 맡아주었던 율장이형, 장호,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여러분, 많은 선배 CO들과 함께 감옥생활을 했던 CO들, 지금 감옥에서 고생하는 CO들, 저를 지지해줬던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Love and Peace!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