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전쟁없는세상, jungmin.duck@gmail.com)
전쟁없는세상 주:
전쟁없는세상이 매년 여름 개최하는 평화캠프가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평택평화센터에서 열립니다. 올해는 특히 직접행동/캠페인을 조직해본 경험이 있는 활동가(본인은 스스로를 그렇게 정체화하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를 대상으로 열립니다. 어떤 식으로든, 크든 작든 직접행동/캠페인을 조직해본 활동가들과 함께 다양한 게임, 워크숍, 소그룹 토론으로 사회운동과 사회운동의 메커니즘에 대해 논의하려고 합니다. 평화캠프 시즌을 맞이하여 전쟁없는세상은 캠프에서 고민하고 논의할 주제에 대해 미리 기획연재를 준비했습니다. 기획연재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촛불대통령 시대의 사회운동
- 길을 잃어 힘들고 지친 활동가들에게 권하는 프로그램, 사회운동설계(Movement Action Plan, MAP)
- 비폭력 행동의 198가지 방법
- 삶과 혁명의 조화, 직접행동과 건설적 대안 만들기
사회변화가 꼭 사회운동을 전제해야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운동이 만개했을 때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지며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많은 활동가분들을 2018 평화캠프에 초대합니다. (평화캠프 프로그램 둘러보기 및 신청하기)
간디는 현존하는 폭력과 압제의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과, 새롭고 건강하고 보다 탄력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두 운동이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자는 타인과의 관계, 지구와의 관계를 새롭게 재정의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간디는 인도의 사회 변화 과정이 직접행동 캠페인들을 통해 국가 권력에 맞서 이를 점유하는 것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점의 근저에는 수단과 목적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간디의 독특한 관점이 존재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잘 알려진 생각과는 반대로 간디는 수단을 “목적의 발달과정(ends in making)”이라고 보았다. 변화를 이루기 위해 취하는 수단은 목적한 바를 반영하고 그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다 정의롭고 지속가능하며 평등한 사회를 창조하려 한다면 우리의 수단도 그렇게 정의롭고 지속가능하며 평등해야 한다.
간디는 소금행진이나 보이콧과 같은 직접행동/시민불복종을 통해 낡은 질서에 직면하는 것을 극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과 똑같이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회를 실천하는 것이었고 그는 이를 “건설적 프로그램(Constructive Program)”이라 불렀다. 간디는 이러한 활동이 직접행동 등 대면적인 운동을 위해서도 활동가들을 준비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직접행동은 인도의 식민지배자들을의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건설적 프로그램의 역할은 바로 그 국가의 사회구조를 재창조하는 것이었다. 간디의 비전에서 이 두 가지 과정(비폭력 저항과 건설적 프로그램)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파괴와 재창출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었다.

간디는 불의한 권력과 체제에 직접행동으로 저항하는 일만큼이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도 중요하게 여겼다. 간디의 물레는 영국 제국주의의 인도에 대한 수탈에 저항과 새로운 인도를 건설하는 프로그램 모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저항과 건설적 대안: 동전의 두 측면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대한 다양한 대응이 있고 우리는 이것들을 크게 “저항”과 “건설적 프로그램”이라는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눠볼 수 있다. 동전의 양면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사회 변화에 대한 이 두 가지 접근법이 동전의 양면처럼 가까운 사이가 아닌 경우가 많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사회운동단체들이 비슷한 전략이나 기술에 계속 기대면서 단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직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고 잘못 판단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해당 이슈에 대한 보다 넓은 구조적 분석이 미흡할 수도 있다. 혹은 대개의 경우 자신들의 활동을 확장할 수 있는 시간이나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현실은 비록 이렇지만 사회 변화에 대한 이 두가지 접근법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상호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운동은 이 두가지 접근법이 보다 규칙적이고 적극적으로 함께했을 때 더욱 강력해질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하고 급진적이며 창의적인 운동들은 한 형태의 운동에만 의존하지 않고 두 가지 접근법을 함께 해서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폭력과 압제에 저항하는 수단을 창조하고 있다.
저항: ‘노(NO)’ 운동
비폭력 저항이라는 수단은 아마도 “사회 변화”나 “액티비즘”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일 것이다. 낙태죄 폐지를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행진을 하거나, 제주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진행되는 인간띠잇기, 파인텍 해고노동자들의 굴뚝농성 등.
저항은 우리가 반대하는 세력들의 결정이나 정책 혹은 활동에 맞서 “노”라고 말하는 수단이다. 특정 형태의 폭력, 착취, 파괴에 저항하는 이러한 구체적 “단일 이슈” 캠페인은 잘 개발되어 있으며 전 세계 사회운동에서 사용되고 있다. 점거, 보이콧, 봉쇄, 시위, 탄원, 파업, 거리 연극, 유인물 배포 등. ([2018 평화캠프 특집] 비폭력행동의 198가지 참조)
동전의 ‘저항’이라는 측면은 우리 사회의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부분을 생각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이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 활동가들은 많은 시간을 투여해 이에 저항할 방법들을 찾는다. 이러한 사회 변화 운동에 참여하는 것으로도 지속가능성, 동기부여, 영감을 얻을 수 있지만 이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우리 운동의 목표는 단순히 최고 권력을 끌어내리거나 몇몇 악법을 개정/폐지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공적 영역뿐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의 사회 변화 또한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간디는 인도 독립운동 과정에서 영국산 옷감에 관한 보이콧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물레를 돌려 스스로 옷을 지어 입는 건설적 대안을 함께 주창하였다. 카디(직접 물레를 돌려 손으로 짠 옷감)를 만들고 비수기 인도 농민들에게 일감을 제공하기 위해 조직된 All-India Spinners’ Association은 15,000개 마을에서 활동했으며 1942년에는 35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한다. 이러한 간디의 물레는 비협조 저항운동(보이콧)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지속성을 높이는 동시에 인도 독립 이후의 사회를 상상할 수 있게 하였다.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자긍심을 높이고 운동의 문화를 바꾸었으며 인도 독립운동하면 떠오르는 상징이 되었다.
건설적 대안: ‘예스(YES)’ 운동
저항이 “노”라고 말하는 행동이라면 건설적 프로그램은 타인과, 사회와, 그리고 지구와의 관계와 삶을 적극적으로 재정의 함으로써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만드는 “예스”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건설적 프로그램은 비록 규모가 작거나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살고싶은 세상을 건설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직접적인 욕구에 대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반응이며 주류의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폭력을 미러링할 것을 거부하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다. 건설적 프로그램은 보다 비폭력적이고 삶과 노동에 긍정적이며 사람들을 임파워한다.
우리의 건설적 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단순히 어중간한 유토피아적 꿈이 아니다. 건설적 프로그램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자본주의, 가부장제 및 인종차별주의 사회의 한계 내에서 운영된다. (그래서 대부분 작은 공동체들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운영된다. 예를 들어 간디의 아쉬람) 우리는 우리 스스로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지구와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배워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매우 정기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간디에게 건설적 프로그램은 보다 능동적이고 대면적인 저항운동을 준비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독립/혁명 이후 실무적이고 구조적 요구사항을 충족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는 비폭력적인 비전을 정치, 경제, 문화에 깊이 확립하고 공동체가 권위주의적 식민주의 국가에서 권력을 빼앗아 자립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임파워하고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스페인 마리날레다 마을을 소개한 책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 표지
우리는 많은 혁명의 사례들(비폭력적, 폭력적 혁명 모두)에서 엘리트들의 이익에 운동의 성과를 빼앗기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인도 독립 이후, 그리고 최근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이집트에서 등) 새롭게 등장한 독재자나 기존의 강력한 엘리트 기관은 손쉽게 정치 권력을 다시 잡거나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미완의) 혁명은 원래 강력한 엘리트들의 몫이었던 ‘권력을 떠받치는 기둥’을 근본적으로 훼손하지 못했고 단순히 리더십을 대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법률이나 대통령을 바꾸는 등의 공적 영역을 넘어선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건설적 프로그램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하고 실행하기 어렵지만 이미 전 세계 다양한 운동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고 있다.
브라질: Movimento dos Trabalhadores Rurais Sem Terra(MST, Landless Workers Movement)는 농촌 노동자들의 운동으로 대규모 토지를 점령하거나 무토지 농민들에게 땅을 돌려주고 있다.
미국: Community Land Trust 프로그램은 저렴한 주택, 커뮤니티 가든 및 기타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에서 유래했으며 “미국 남부 시골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위한 경제적, 주거적 독립을 위한 장기적인 기회”를 창출하기 위해 Bob Swann과 Slater King(마틴 루터 킹의 사촌)이 시작하였다. Catholic Worker movement는 노숙자와 지낼 곳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 제공하고 동시에 전쟁과 그 원인에 저항하는 비폭력직접행동을 함으로써 “환대와 저항”의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Catholic Worker movement 는 핵과 ‘재래식’ 무기의 적극적이고 비폭력적인 군축에 전념하는 활동가들의 비공식 네트워크인 플라우쉐어(Ploughshares) 운동과 오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 마리날레다(Marinelda) 마을은 직접행동으로 지역 토지 영주로부터 토지를 점령하고 결국 되찾고, 노동자 소유 협동조합을 조직하며, 긴축 경제에 대한 직접적인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마을 시장은 음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공개적으로 도둑질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인도: Mendha-Lekha 마을은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 원칙인 스와라지(Swaraj)를 채택했다. 마을 사람들은 어떤 정부 기관이나 정치가도 자신들을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도록 허락하지 않으며 마을이장이나 부족장도 완전한 협의없이 그렇게 할 수 없다.
영국: ‘Radical Routes’ 주택조합네트워크는 소규모 주택 협동조합들이 펀딩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도덕적, 실용적 지원을 하며,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사회 변화에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주택공급에 중점을 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The Holy Land Trust’는 이스라엘 군에 의해 파괴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을 재건하고, 농부들이 접근할 수 없는 올리브 수확을 돕기 위해 국제 자원 봉사자들을 초대한다.
서뉴기니: Malind Anim 공동체 사람들은 머라우케(Merauke) 지역의 에너지, 식량 복합생산 농업지구 개발 프로젝트에 항의하여 프로젝트 담당 기업으로 가는 도로를 차단하고 그곳을 푸드 가든(food garden)으로 만들었다.
오큐파이(Occupy)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캠핑장을 만들었으며 그곳에서 워크숍을 하고 액션플랜을 세우고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동안 몇몇의 경우에는 수천명의 잠자리와 먹을 거리를 제공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건설적 프로그램은 직접적이고 구조적이며 문화적인 폭력인 ‘파워-오버(power-over, 위에서 내리누르는 권력)’와 폭력을 이해하고 대체하며, 해방적이고 민주적이며, 구조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폭력적이지 않은 ‘파워-위드(power-with, 연대의 힘)’, ‘파워-위드인(power-within, 내부로부터의 힘)’을 구축함으로써 다른 세계를 미리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건설적 프로그램은 저항, 캠페인, 직접행동과 별도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함께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