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신지요?
보내주신 <병역거부 가이드북>과 자료들을 잘 받아 보았습니다. 평소 법류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에 보내주신 판결문들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9명이 한 방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가로 6m 세로 4m 되는 그야말로 방 한칸에서요. 대부분이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더군요… 비슷비슷한 어린 시절을 겪었고, 비슷비슷한 경험들을 지나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히려 같은 방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연민으로 다들 친절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징역이라는 공간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듯 착각을 만들어 주는 시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진짜 문제는, 개개인의 배경을 해결해야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다시 사회로 나가도 똑같은 배경을 가진다면 어느 누구의 문제도 해결된 게 아니라 문제를 그저 뒤로 미루어 둔 것일 뿐이니까요.
병역거부자들에게도 그저 똑같은 내용의 공소를 제기하고 똑같은 내용의 판결을 통해 문제해결을 기피하고 그저 다음으로 미뤄두는 재판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병역거부자들에게 그토록 날카롭게 들이대는 엄격한 윤리적 기준을 재판부야 말로 완수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저번 주에 뉴스를 통해 병역거부자에 대한 유죄 판결 기사를 보았습니다. 다시 철렁하는 마음이 찾아오더군요. 법원에서의 시간들… 판결문을 들었을 때의 순간이요. 제가 알던 양심 실현의 자유는 그날 다르게 읽혔습니다. 판사의 판단을 통해 개인의 양심을 억압하는 방식은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엄격한 잣대를 통해 양심이 있냐, 없냐를 재판을 통해 판단하고 징벌하는 방식은 국가가 바라는 모습의 양심을 가진 이들을 걸러내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만약 재판부가 말하는 양심이라는 단어를 인종, 성별, 국가라는 말로 바꾸면 그게 국가사회주의(나치즘)의 본성을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도 가깝게는 광주와 제주도에 있는 아픈 역사가 있고 조금 더 뒤로 가면 일본에게 수탈당한 아픈 상처들이 있습니다. 더 넓게 본다면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권과 같은 가슴 아픈 인류의 역사를 통해 아픈 과거를 느낄 수 있지만 그를 통해 단지 반쪽짜리 인식만 가지고 있다면 과거나 지금이 단지 지나고 있는 시간축만 다를 뿐 똑같은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법은 시대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지만 양심은 영원하다고 봅니다. 병역거부자들은 법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양심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징역생활도 각오하고 행하는 것이겠지요. 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만 한 해에 600명씩 유죄판결로 수감되었던 병역거부자들이, 올해뿐만 아니라 과거에서도, 이전의 어느 시대에서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그래왔던 시간들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병역거부자들은 법과 양심 모두를 지키기란 불가능합니다. 이를 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민주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이는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전제로 할 때에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지닌 문제라고 봅니다.
1년 6개월의 징역생활을 각오하는 한해 600명에 달하는 병역거부자들과 본인 또한, 국방의 의무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법원에서 양심을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재판부의 판단에 따른다면 병역법을 어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그에 따른 책임으로 따라오는 수감생활은 흔쾌한 마음으로 감수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반전을 통한 평화라는 양심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실제로 양심을 지킬 수 있었으므로 아무런 윤리적 책임을 느끼지 않습니다. 아마도 저는 제게 주어진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처럼 군대에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지난 시간들을 통해 증명하듯 결코 평화의 길을 가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어떤 직무라 하더라도 집총에 대해서는 결코 이행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고 그런 자세로 살아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평화와 진보의 길로 나아가려면 병역거부자들이 보여주는 사회적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평화의 길을 나아갈 수 있도록 사법부가 본연의 윤리적인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고 봅니다.
누구나 스무살 적 한번쯤 드는 생각인 “왜 군대를 가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던 때 전쟁없는세상을 만났습니다. 그때 제게는 단순한 의문이 확고한 믿음으로 바뀌었습니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확고하게 대중들에게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이 제게 큰 울림으로 남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대중들에게 목소리를 전하지는 못하지만 한해 600명씩 수감되는 어지러운 현실 속에 +1이 되어서 조금이나마 목소리에 힘을 실어 드릴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9.10.1. 송상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