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홍입니다. 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입니다. 지금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2017년부터 이어진 기나긴 재판 끝에, 올해 2월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3월 8일에 이 곳에 들어왔으니, 오늘로 딱 한 달이 지났습니다. 검찰청으로 자진출두한 날, 배웅하러 와주신 동료들 덕분에 마음은 평안합니다. 이별하는 시간이 짧아, 동료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한겨레21> 인터뷰에 놓고 왔노라고 당당히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수감 후에 받아본 잡지에는 좋은 기사에 어울리지 않는 제 표정과 말이 어색하게 실려있었습니다. 지면에 실릴 수 없던 이야기, 그동안 할 수 없었거나 하지 않은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20대를 통틀어 무언가로부터 계속 도망쳤습니다. 거대한 우울로부터, 대학으로부터, 관계로부터, 음악을 창작하는 역할로부터,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희미한 것들로부터. 그 끝에는 항상 군대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군대는 제 내면을 철저히 파괴하고, 어쩌면 내면을 넘어선 것까지 파괴할 수 있었기에, 저는 군대가 제 삶의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대가 삶의 끝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도망친 곳에서,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길게 고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선택지를 알게 되고, 후원회를 꾸리고, 재판을 준비하고, 수많은 분들의 지지 속에 마침내 결심을 현실로 이룬 순간을 기업합니다. 그 순간은 제게 구원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저를 어둡게 휘감던 우울과도 작별했습니다. 재판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내린 결심은 아니었습니다. 삶이 20대 후에도 지속될 수 있다는 기쁨에 젖어 있던 와중에, 암울한 법정에 동행한 동료들의 얼굴을 보며 마음을 조쳤습니다. 제가 과연 당신의 지지, 염려, 위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끊임없이 되물었습니다. 병역거부 운동에 대한 책임감도 아프고 무겁게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제각기 다르겠지만, 저보다 먼저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의 얼굴 중 제가 아는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저의 이기심은 압도되었습니다.
어줍잖은 책임감으로 응하기 시작한 언론 인터뷰로 제가 병역거부 운동의 얼굴이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운동을 위한 언어를 고민하고, 발화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말하기 실력이 조금씩 늘긴 했지만, 저보다 운동을 지키기 위한 언어들을 강조하니, 낙담하고 돌아간 기자도 여럿 만났습니다. 법정에 제출할 이야기거리도 부족했던 제가 사회의 상상력을 넓힐만한 언어를 만들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비록 어설펐지만, 익명성을 어느 정도 포기한 활동가인 제가 혐오에 마주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기적적인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었고, 잠시나마 ‘제1호 대체복무제 참여자’ 따위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1년 6개월의 징역형과 3년의 교도소 합숙 중 어느 것이 더 나은지, 혹은 더 나쁜지, 지금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헌법소원의 원고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제가 맞서야 했던 자리마다 무척 버거웠습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마음과 불복종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켰습니다. 운동을 위해서 누군가는 꼭 참여해야만 했고,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역할이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냉정했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미숙하게 써 내린 제 소견서가 유죄 판단의 주요 근거로 활용됐습니다. 대법원 선고를 앞둔 어느 새벽, 2심 판결문을 정독했습니다. 그 전까지 차마 열어볼 수 없었던 판결문을 한 문장씩 꼼꼼히 읽었습니다. 상처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판결문은 쉽고 논리정연했습니다. 반면 5년 전에 썼던 소견문은 끝내 다시 꺼내볼 수 없었습니다. 파기환송은 기대할 수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패배주의적 사고에 빠진 건 아닙니다. 제 그릇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결과를 낙관하지 못했습니다. 가능한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둠으로써, 상처 받지 않으려 하는 방어기제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의도는 달랐겠지만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제게 건네주셨던 위로 덕분에 이곳에서의 생활을 덤덤하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과분한 애정에 비해 한없이 모자른 제가 느꼈던 죄책감이 감옥생활로 조금은 덜어질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저를 지켜주셨던 홍합지졸(편집자주: 병역거부자 홍정훈 후원회)과 변호인들게 특히 미안함을 느낍니다.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보편성을 어느 정도 획득한 병역거부권을 주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을 거란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제가 반복해서 미안하다고 말씀드려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더 큰 위로를 전해주셨던 분들께, 꼭 제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기로 한 사람인데, 컴퓨터 없이 마음을 적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운지 몰랐습니다. 화면에는 티끌만큼도 남지 않은 오점이 편지지에 새까맣게 덮인 모습을 보니, 제가 가야할 길이 무척 멀다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쇠창살 사이로 펼쳐진 노을에 마음이 일렁입니다. 작은 것에 기뻐하되, 작은 것에 슬퍼하지 않는 태도로 수감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이 흘렀습니다. 조그만 흠만 있어도 날카롭게 누군가를 바라보았던 자세를 버리고, 하루 온종일 마주하는 사람들의 장점을 발견하는 재미를 뒤는게 알았습니다. 꽤나 지낼만 한 곳이거나, 제가 잘 적응했다는 징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아, 매일 편지를 쓰는 습관을 만들었습니다. 바깥 세상에서는 도통 읽을 수 없던 책을 가득 쌓아놓고 대부분의 일과를 독서로 채웁니다. 커피를 끊어서인지, 더 건강해진 기분입니다. 서른이 넘은 나이라 그런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난다는 느낌도 듭니다. 물론 더 빠르게 흐리길 바라기도 합니다. 제가 다른 세상에 갇혔음에도, 평안함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 건 지난 4년간 받았던 따뜻한 마음 덕분입니다.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건강하고 씩씩하게 지내겠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글도 써서 보내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21년 4월 8일 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