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아니 축하합시다. 이 사회가 세운 벽을 넘어서지 못한 좌절이 불과 수개월 전이었지만, 예상보다 일찍 전쟁없는세상이 염원하던 결과가 찾아와서요. 아직도 재판을 치르고 있는 얼굴들을 기억하면서,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기쁨을 맞으려 합니다. 지난 4년 동안 지겹게 들렸던 저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를 설득할만한 이의 서사가 더욱 넓게 퍼지는 계기가 되겠죠. 비로소 완전한 내면의 해방을 느낍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들어온 문을 꽁꽁 잠그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다시는 없을 줄로만 알았던 인터뷰를 옥중에서 한 건 꽤나 보람 있었습니다. 기자님이 손수 출력해서 보내주신 한겨레신문 기사에는 그동안 전쟁없는세상이 이야기했던 현실이 넉넉한 분량으로 소개되었더군요. 제 이름이 적지 않게 등장한 건 부끄러웠지만, 모범답안을 한참이나 벗어난 말들도 기사에 실리는 것을 보고 늘 자기 검열에 시달렸던 지난 날들이 약간은 후회스럽기도 하더군요. 비판하는 걸 좋아하면서도 욕 먹는 게 두려워, 신념에 반하지 않는 선에서 많은 말을 감추며 말했던 날들이 스쳐갑니다. 저보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여러분을 헛되게 깎아내리지 못하도록 애써온 노력이 한 몫 했다는 점은 인정해주시겠죠.
어제 기다렸던 소식을 들은 후로 계속 들떠 있습니다. 7월이 되기 전에 미리 편지를 쓰는 이유죠. 6월은 걱정했던 것보다 덥지 않아서인지, 시간이 꽤나 빨리 흐른 것만 같네요. 도저히 입맛을 맞출 수 없는 식단을 거르기보다 다른 식품으로 대체하는 방법을 찾고, 늘어난 업무량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을 기른 시간이었습니다. 넘쳐나는 읽을 거리를 계획적으로 해치우고, 냉수 목욕을 그럭저럭 견디는 한 달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느닷없는 일거리가 생겼습니다. 주간경향에 당분간 글을 연재하게 될 것 같습니다. 반대편 세계와의 시차가 큰 문제인데, 운이 좋다면 제가 이번 판결을 확정적으로 예견하며 쓴 첫 글이 게재되었을 겁니다. 이렇게나마 기여할 수 있어서 또 기쁘네요. 우울은 끝없이 파고들지만, 기쁨은 담백하게 즐기는 습성 떄문에 이번 글은 여기서 줄입니다. 짧게 써야 더 많은 분들이 보신다는 것도 생각했고요. 백신 접종의 기회 놓치지 마시고, 언제나 건강하세요.
2021년 6월 25일
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