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전쟁없는세상, jungmin.duck@withoutwar.org)

 

 

작년 봄에 에리카 체노웨스와 마리아 J. 스티븐의 책 『비폭력 시민운동은 왜 성공을 거두나? (Why Civil Resistance Works) 』를 읽고 독후감을 썼었다.[1] 책은 1900년부터 2006년까지 체제변화, 외국 점령군의 추방, 분리독립운동의 사례들 중 눈에 띄는 사례 323건(그 중 비폭력운동 106건)을 조사해 비교, 분석해 비폭력운동이 폭력운동보다 언제나 전략적으로 우위에 있었다는 것을 사회과학적 논리로 증명해낸 논문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에게는 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저자 중 한 명인 에리카 체노웨스가 이번에는 대중서를 썼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워 아직 국내 출간 전이지만 영어로 읽기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체노웨스의 책은 Oxford University Press 출판사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섭외해 집필, 발간하고 있는 ‘What Everyone Needs to Know (WENTK)’ 시리즈 중의 한 권이다. 이 시리즈는 2008년 ‘Kosovo’를 시작으로 정치, 환경, 역사,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누구나 알아야 하는 주제에 관해 현재까지 113권의 책을 출간한 각 분야 입문서로서 그 권위를 상당히 인정받고 있는 시리즈이다. 모든 시리즈는 질의응답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복잡한 주제를 가독성이 뛰어나게 만들기 위한 장치로 매우 적절해 보인다. (이 책의 목차 전체가 질문들이다. 그래서 목차만 5페이지. 이 글의 말미에 목차 전체를 거칠게 번역해 두었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Civil Resistance』, 이 독후감에서는 시민저항으로 번역했다. 앞서 언급한 체노웨스의 이전 저작 『비폭력 시민운동은 왜 성공을 거두나?』에서 civil resistance는 비폭력 시민운동으로 번역이 되었다. 아무래도 ‘시민저항’이라는 단어가 ‘비폭력’, ‘시민운동’ 등에 비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사회운동의 여러 방법론이 활발히 논의된 적이 없기 때문에 시민운동, 사회운동, 시민사회운동, 혹은 민중운동 등으로 호명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Civil Resistance를 시위(protest),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 사회운동(social movement) 등과 분리해서 책에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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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 체노웨스가 쓴 <비폭력 시민운동은 왜 성공을 거두나?> 표지. <Civil resistance>와 더불어 사회운동의 방법을 고민하는 활동가들이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시민저항이란 무엇인가

“시민저항(Civil Resistance)은 무장하지 않은 사람들이 파업, 집회, 시위, 보이콧, 대체/대안적 제도 구축 및 기타 여러 전술과 같은 다양한 조직된 비제도적 방법을 사용하여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거나 해를 입히겠다고 위협하지 않고 변화를 촉진하는 적극적인 갈등의 기술이다. 주요 도로를 봉쇄하거나, 고의적으로 감옥을 가득 메우거나, 공무원의 사무실을 점거하는 등, 일부 시민저항 방법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분열적이고 대립적인 경우가 많다. 시민저항의 모든 지지자들이 평화주의를 믿거나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지지자들은 그렇게 한다. 모든 평화주의자들이 시민저항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평화주의자들은 시민저항 방법을 사용한다.”

아마 시민저항의 요소라 볼 수 없는 것들을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은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시민저항은 집회와 같은 단일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저항은 집권층을 몰아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열된 일련의 다양한 비폭력 기술을 포함한다. 둘째, 시민저항이 반드시 평화적 갈등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건설적으로 갈등을 조장한다. 셋째, 시민저항이 반드시 비폭력과 동등한 의미는 아니지만, 그러한 접근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시민저항에서 비폭력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더 효과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의 중, 장기 캠페인/운동들 대부분이 시민저항에 해당될 것이다. 물론 저자의 표현으로 주변부 폭력(fringe violence)이 과거 한국의 시민저항 내에 아주 없지 않았으나 큰 틀에서 비폭력이 캠페인/운동의 원칙이었다. 오히려 근래에는 비폭력이 준법으로 오인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제기될 정도로 아주 작은 폭력이라도 수반되는 캠페인/운동을 상상하기 어렵다.

저자는 시민저항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마친 후 5개 장으로 나누어 시민저항에 관해 모두가 알아야 할 지점들에 관해 대답하고 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시민저항에 대한 몇 가지 일반적인 오해를 다룬다. 여기에는 시민저항은 고통을 수동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 시민저항은 예의바르고 공손한 것을 의미하고, 시위는 시민저항의 주요 형태이며, 시민저항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다는 선입견, 시민저항의 방법들이 부당하거나 부도덕한 목적으로 남용될 수 없다는 생각 등이 있다. 두 번째 장에서는 시민저항의 작동방식을 서술하고 있다. 저자가 시민저항의 성공요인으로 꼽는 대규모 참여, 이탈(defection)[2], 전술 혁신, 탄압에 대한 탄력성이 어떻게 시민저항을 성공으로 이끄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제기되는 질문들, 이를 테면 비폭력 저항이 불가능한 상황이 있는지, 시민저항이 상대방을 감화시킴으로써 성공에 이르게 되는지, 시민저항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혁명보다는 개혁에 적당한 운동인지, 폭력저항이 시민저항보다 더 효과적인지, 시위와 같은 시민저항의 단일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한지, 그리고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기술은 항상 비폭력 반체제 인사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지 등에 대해 답한다. 세 번째 장에서는 시민저항과 운동 내부의 폭력에 대해 다룬다. 주변부 폭력이 시민저항운동의 주요 정치적 변화 가능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이다. 네 번째 장의 주제는 시민저항과 운동에 대한 폭력으로 극단적인 탄압의 상황에서 시민저항이 어떤 식으로 작동했는지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는 시민저항운동의 미래에 관한 얘기로 시민저항의 성공률이 감소하고 있는 최근의 경향에 대해 언급하고 시민저항의 힘과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아무래도 현역 활동가인 나에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운동의 미래와 관련한 마지막 장이었다. 이 장에서 저자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의 10년 간을 역대 가장 활발한 비폭력 저항이 진행되었고 진행되고 있는 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기간 96개의 비폭력 혁명이 시작되었고 이 중 15개는 2019년에 들어 시작되었으며 23개는 저자가 책을 집필하고 있을 당시인 2019년 말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 전 10년(2000~2009년)이 58건으로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고 하는데 이 기록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인 것이다. 그런데 지난 50년 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폭력보다 비폭력 시민저항에 눈을 돌리고 50% 이상이 성공하였으나 문제는 2010년 이후 그 성공률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시민저항이 혁명운동으로 정권에 도전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 된 반면 역설적으로 그 효과는 감소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폭력저항은 성공률을 높여 왔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성공한 비폭력 혁명이 34% 미만이었다고 하지만 폭력혁명의 경우는 9% 미만만이 성공했다.)

 

시민저항이 감소한 세 가지 이유와 한국의 상황

체노웨스는 시민저항의 효과가 감소한 이유를 크게 3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캠페인 성공의 가장 중요한 단일 지표가 크기라는 것을 기억할 때 최근 몇 년 동안 시민저항 캠페인은 과거보다 평균적으로 다소 작아진 경향이 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운동 때 등장해서 유명해진 3.5%법칙[3]을 적용해보면 1980년대에는 약 2%, 1990년대에는 약 2.7%의 국가 인구가 평균적으로 비폭력 캠페인에 참여했지만 2010년 이후 참여율은 1.3% 미만으로 감소했다. 둘째, 현대 운동이 총파업이나 대규모 시민불복종과 같은 대중 비협조의 다른 더 강력한 기술들을 개발, 조직하지 않은 채 대규모 시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그 시위의 규모가 시간이 지나면서 지속되지 않는 경우 효과가 덜 할 수밖에 없다. 이는 현대의 많은 운동들이 리더 없는 저항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더 일반적이 되었는데 이러한 저항은 조직화 능력이나 운동 전략, 전술의 조정 및 배열 역량이 약하기 때문이다. 셋째, 최근의 운동은 특히 소셜미디어를 통한 디지털 행동주의와 조직화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 디지털 운동의 강점은 짧은 시간에 대규모 인원을 모을 수 있고 운동 슬로건과 이미지를 대중화하고 바이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주류 기관이나 정부가 통제하지 않는 수단을 통해 의사소통하고 조직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에 의존하는 운동은 이러한 대규모 시위대를 효과적이고 장기적인 운동조직(계획, 협상, 공동의 목표 설정, 과거의 승리를 바탕으로 한 캠페인 전략의 구축 등을 수행할 수 있는)으로 전환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 권력자들이 쉽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반체제 인사들을 감시, 선별 및 진압하고 잘못된 정보, 선전 및 대응 메시지를 퍼뜨리는 한편, 자신들을 대신해 충성 지지자들에게 집회를 열게 한다는 것은 또 다른 골칫거리이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지난 10년간 시민저항의 효과가 감소했을까? 체노웨스의 연구는 정권을 무너뜨리거나 새로운 민족국가를 만들려는, 주로 사회학에서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는 사례에 국한된 것이기 때문에 (이 경우 한국의 사례는 1건이다. 박근혜 전대통령 퇴진운동. 비폭력이자 성공사례로 분류되었다) 한국의 시민저항 전체(특히 내가 하고 있고 관심이 있고 내 동료 활동가들이 매일을 헌신하고 고민하는 일상의 크고 작은 캠페인들)의 효과 여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래서 체노웨스의 이 분석을 현재 전쟁없는세상이나 다른 단체들의 개별 캠페인에 바로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을 터이다. 하지만 질문은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 2010년 이후로 한국의 시민저항(사회운동)의 효과가 감소했는가?

사실 이 질문에 현재로선 답이 없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관련한 통계가 없다. 과학적으로 증명한것은 아니지만 전쟁없는세상의 경우 최근 대체복무도입 캠페인의 성과도 있고 해서 그런지 행복회로를 돌려서 그런지 체감상으로는 효과가 그렇게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현재로선 효과가 감소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체노웨스가 지적한 효과 감소의 3가지 이유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하다. 만약 이 3가지 경향성이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시민저항 운동에도 영향을 미친(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리도 한 번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먼저 시민저항 캠페인의 크기가 줄어들었다는 것에 대해. 경찰청 통계자료는 개별 운동/캠페인 당 참가자 통계를 내지 않고 캠페인 전략 중 거리시위 참가자에 한한 통계이기 때문에(게다가 주최측 추산에 비해 차이가 많이 난다. 지난 박근혜 대통령 퇴진운동 제6차 집회를 두고는 주최측과 무려 85만명이나 차이가 나는 셈법을 보였다.[4]) 썩 적절한 지표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변변한 연구 경력도 없고 시간도 없는 현재 내 처지에서 책의 독후감을 쓰는 용도로 최선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정리해보았다. 아래 표는 경찰청의 집회신고 및 개최 현황 통계[5]와 전체 집회시위 참가자 수 통계[6]를 합쳐 표로 만든 것이다. 참가자 수 통계가 2018년까지밖에 없어 표에는 넣지 않았지만 2019년 집회 및 시위 개최 횟수는 95,255건으로 그 전해에 비해서도 약 1.5배 가량 월등히 증가한다.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참가자 수 1,659,571 1,514,163 1,909,034 1,855,225 1,803,191 4,388,582 3,030,438 2,568,574
개최 횟수 42,130 40,038 42,562 44,664 47,654 45,755 43,017 68,262

 

경찰청의 통계로만 유추해봤을 때 한국의 경우 시민저항 중 적어도 집회/시위의 수나 전체 참가자의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이다. 2016년과 2017년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운동 때문에 시위 개최 횟수가 전 해들에 비해 큰 차이가 없지만 참가자 수가 약 2~3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해에도 제법 큰 규모의 시위들이 있었지만 (예를 들어 2011년에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로 희망버스 캠페인이 조직되었고 2013년에는 철도노조 파업과 뒤이은 민주노총 총파업,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매년 2~3차례 민중총궐기가 있었다.) 단순 나누기를 해보았을 때 매년 각 집회 당 40명 정도의 수준으로 비슷비슷하다.

두 번째, 세 번째 이유와 연결되는 그나마 가장 연관된 통계로 행정안전부의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수 통계[7]를 가져와 보았다. 한국의 모든 사회운동 단체가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은 사회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이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사회운동단체(비영리민간단체)들은 매년 꾸준히 늘어왔다. 하지만 사회운동단체의 양이 꼭 리더십 그룹으로서 시민저항을 기획하고 수행할만한 질(역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통계 또한 이를 평가하기에 꼭 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비영리민간단체 등록 요건들이 꽤나 까다롭고 그것을 모두 만족하려면 단체의 비전, 임무, 규모, 구조 등을 논의하고 정비해야 한다는 점 정도를 덧붙일 수 있겠다. 위에 집회/시위 횟수와 참가자수 표에 맞추느라 역시 적지는 않았지만 2019년 14,699(전년대비 424개 증가), 2020년 15,051(전년대비 352개 증가)개의 비영리민간단체가 등록이 되었다.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등록 누계 10, 209 10,889 11,579 12,252 12,894 13,464 13,933 14,275
전년 대비
증감 단체수
606 680 690 673 642 570 469 342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신진욱 교수는 2010년 이후 한국의 시민운동은 분산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한다.[8] 1987년 민주화 이후 사회운동이 이념, 의제, 주체, 부문, 조직적 장의 다양화가 특징인 분화의 시기를 지나, 2004년 이후 보수단체 증가 및 정치참여 확대에 따라 제도정치와 사회운동의 당파적 연계 강화,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운동 내부의 균열 및 분절의 시대를 거쳐, 2008년 이후 특정 정당이나 사회단체로부터 독립적인 다수 대중의 소통구조와 네트워크, 정치참여행동의 급증이 특징인 분산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 특성을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첫째, 당사자들의 경험과 참여, 목소리를 중시한다. 둘째, 개인의 자발성과 선택에 의한 자기동원이다. 셋째, 위계적 조직이 아닌 수평적이고 탈중심적인 소통구조를 지향한다. 넷째, 엘리트주의와 망명가 리더 중심 운동 거부한다. 다섯째, 촛불집회와 같은 일시적 참여가 아니라 지속적 운동이다.

 

체노웨스의 논의에서 한국 사회운동이 고려할 지점

한국의 일상적인 시민저항(사회운동)이 그 효과가 감소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은 눈에 띄게 감소한 것 같지는 않지만 더욱 그 효과를 높이려면 두 가지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신진욱 교수의 진단처럼 2010년 이후 한국의 새로운 시민저항(사회운동)이 리더 혹은 명망가 중심의 운동을 거부한다면 체노웨스의 지적처럼 어떻게 리더(그룹) 없이도 리더(그룹)가 있을 때와 같은 장점은 살리면서 효과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간혹 리더(그룹)가 없고 수평적이면서 탈중심적인 운동을, 조직이나 운동에 구조나 체계가 아예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이런 경우 오히려 민주적인 조직운영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경험이 많고 토론에 능숙한 사람들이 플로어를 차지 하고 운동에 막 들어선 뉴비들이 소외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리더 혹은 대변인을 돌아가면서 맡는 것도 가능하고 소규모의 집단 리더십 체제를 갖추는 것도 방법이다. 전쟁없는세상의 비폭력 트레이닝에서는 활동가들에게 특정 운동이나 단체의 비전 혹은 목적이 무엇인지, 단기, 중기, 장기적으로 무엇을 달성하고 싶은지, 해당 조직의 활동은 본인과 함께하는 동료, 그리고 사회 전체에 어떤 이점을 가져올 수 있는지, 비전이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자원/기술/자격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논의의 출발로 삼기에 충분한 질문이고 사회운동(단체)이라면 정기적으로 묻고 논의해야 하는 질문들이라고 본다.

둘째, 한국의 일상적 시민저항(사회운동)은 체노웨스의 지적처럼 (대규모) 시위에만 의존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양한 시민저항의 전략을 잘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은 일정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전 세계적인 경향이기도 한 것 같은데, 실제로 권력의 스무스한 작동을 직접 방해해버리는 (대규모) 불복종운동은 최근의 한국 운동에서도 역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흑백분리를 끝장내기 위해서 백인 소유의 상점을 불매해 버리고,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일터를 점거해서 기계를 죄다 멈춰 버리고, 곧 이라크 침공에 투입될 전투기를 망치로 때려부수는 등의 크고 작은 급진적인 행동들이 점점 시도되지 않고 있다.

망치사진

2003년 2월 3일 아일랜드 새넌 공항에서 이라크로 출격하기를 기다리던 미군 전투기를 평화활동가들이 부수는데 쓰였던 망치들. 이러한 급진적인 시도는 점차 줄고 있다.

과학적인 분석을 한 것은 아니지만, 심정적으로 전쟁없는세상의 대체복무제도입 캠페인의 승리(라고 하기엔 결론이 좀 보잘 것 없긴 하지만)는 시민불복종 전술[9]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2003년 이라크 파병과 2008년 미국산 소고기 협상 반대 촛불시위에 등장한 병역거부는 단 1인의 불복종이라도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는지 잘 보여줬다. 체노웨스가 책에서 든 예들처럼 그러한 불복종이 대규모로 행해진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시위로 대표되는 상징적인 시민저항은 그 자체로 목표가 있고 의미가 있겠지만 (예를 들어 아직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은 사회부정의를 알린다) 아무리 규모가 큰 시위도 계속 지속될 수는 없고 그것이 직접적으로 권력층이 한 발짝 물러서게 하는 지렛대로 작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 같다.

우리의 데모 문화가 이런 방법론적인 논의에 시간이나 노력을 잘 할애해오지 못했던 역사가 있었다고 본다. 단일하고 반복적인 전략과 전술에 의존하는 것은 권력이 그것을 탄압하는 법을 쉽게 개발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캠페인이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을 낮출 수밖에 없다. 어떤 시기와 상황에서 데모의 어떤 전술과 전략이 잘 작동했거나 혹은 잘 작동하지 않았으며 왜 그랬는지, 내가 세운 캠페인 계획을 달성하려면 우리가 가진 자원을 종합했을 때 어떤 길로 가는 것이 가장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지 등 다양한 질문들이 가능할 것이다. 운동의 전략화는 활동가들의 소진과도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져도 져도 지지 않는 것이 사회운동이라고 하지만 매번 지기만 하는 운동에서 활동가들이 건강하게 살아남을 리가 없다.

‘비폭력 시민운동은 왜 성공을 거두나?’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읽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 ‘Civil Resistance’는 번역이 되어 출간되면 좋겠다. 학술논문에 가까웠던 전작에 비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임은 못 짐) 더불어 우리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널리 토론되어 활동의 자양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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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저항> 목차

 

시민저항: 간략한 소개

왜 다른 게 아니라 시민저항(Civil Resistance)이라고 부르죠?

시민저항은 어떻게 발전해 왔나요?

시민저항은 얼마나 성공적인가요?

시민저항의 기본적인 예는 무엇입니까?

이 책의 전개 방향

 

1. 기본 사항

시민저항은 어떻게 사회변화를 일으키나요?

비폭력행동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일반적인 비폭력행동은 무엇입니까?

시민저항과 시위(protest)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시민저항에서 예술과 음악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시민저항에서 유머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대체/대안기관(parallel institution)”이란 무엇입니까?

폭동(rioting)은 시민저항으로 간주되나요?

재산파괴도 시민저항으로 간주되나요?

단식투쟁, 자기희생, 그리고 다른 형태의 자해행동도 시민저항으로 간주되나요?

시민저항과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디지털 핵티비즘(digital hacktivism)이 시민저항으로 여겨진 적이 있나요?

비폭력캠페인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화주의자들인가요?

시민저항이 “예의(civility)”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시민저항캠페인과 사회운동(social movement)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시민저항캠페인의 단계는 무엇입니까?

시민저항을 사용하는 것은 언제 적법한가요?

비폭력저항이 비도덕적일 수 있습니까?

억압받는 사람들이 시민저항만을 이용해 억압에 맞서 싸우기를 기대하는 것이 정당할까요?

 

2. 시민저항의 작동방식

시민저항캠페인이 효과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비폭력 시민저항캠페인은 어떻게 많은 동조자들을 끌어 모읍니까?

성공적인 시민저항캠페인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사람들이 조직할 기회와 동기가 부여되면 무장저항보다 비폭력행동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효과적인 시민저항캠페인을 위한 공식이 있나요?

시민저항캠페인에는 누가 참여합니까?

여성들은 어떻게 시민저항에 관여합니까?

시민저항운동이 어떻게 정권의 지지자들을 이탈(defect)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이탈과 쿠데타는 뭐가 다른가요?

정권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캠페인이 더 많은 동조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걸까요?

어떤 시민저항 전술이 가장 효과적 혹은 가장 덜 효과적인가요?

소셜미디어와 디지털기술이 비폭력캠페인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3.5%의 법칙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인구의 3.5%만 거리로 내보낸다면 운동이 항상 승리할 것이라는 의미입니까?

3.5%의 법칙에 예외가 있나요?

대중 참여율이 가장 높았던 캠페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3.5%의 법칙이 국가 지도자를 축출하거나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캠페인과 같은 큰 결과를 목표로 하지 않는 캠페인(예를 들어 기후행동을 위한 캠페인 또는 지역 학교, 기업, 또는 정부에 대한 캠페인)에도 적용됩니까?

3.5%의 소수가 어떤 정권도 축출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에 무엇을 의미합니까?

시민저항운동이 성공하려면 명확하고 단일한 대의명분이 있어야 하나요?

어떤 유형의 조직구조가 가장 효과적입니까?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필요한가요?

비폭력저항은 민주주의 국가, 선진국 또는 보다 자유로운 문화에서만 작동합니까?

왜 비폭력캠페인은 때때로 실패하나요?

시민저항이 기업을 목표로 해서도 성공했습니까?

시민저항은 인종차별과 같은 오랜 억압 시스템에 대항하여 성공했습니까?

시민저항이 깊이 분열된 사회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요?

시민저항은 어떻게 확산됩니까? 무엇이 확산에 도움이 되거나 방해가 되나요?

한 나라의 정부가 다른 나라에서 시민저항캠페인이 일어나도록 자극한 적이 있습니까?

최소한의 국제적 지원 없이 시민저항이 작동할 수 있을까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소련의 붕괴로 허를 찔린 것일까요? 20년 후 아랍의 봄 봉기에 놀란 것처럼 말입니다.

비폭력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폭력적 저항이 더 잘 작동하는 상황이 있습니까?

 

3. 시민저항과 운동 내부의 폭력

폭력으로 간주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조직된 무장단체가 비폭력캠페인과 함께 투쟁하는 것은 얼마나 흔한 일인가요?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폭력(예를 들어 길거리 싸움이나 폭동)이 없는 순수한 비폭력캠페인이 있었던 적이 있습니까?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폭력이 수반된 캠페인의 예는 무엇입니까?

모든 비폭력캠페인은 암암리에 폭력을 위협하지 않습니까?

일부 주변부 폭력(fringe violence)은 운동이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폭력적인 소수(violent flanks)의 존재는 비폭력캠페인을 약화시키나요?

폭력은 장기적으로 항상 시민저항운동에 해를 끼치나요?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는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까?

폭력적인 소수는 장기적으로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첩자(provocateur)가 얼마나 자주 주변부 폭력을 도발하는 데 성공합니까?

일부 비폭력캠페인이 폭력적인 소수를 받아들이거나, 수용 또는 용인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 그렇다면 비폭력캠페인이 어떻게 주변부 폭력을 예방하거나 제한할 수 있습니까?

폭력이 용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견 차이가 있을 때 어떻게 운동이 단합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폭력적으로 시작된 운동이 시민저항캠페인으로 변모하여 성공할 수 있을까요?

주변부 폭력은 불가피한가요?

 

4. 시민저항과 운동에 대한 폭력

탄압이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잔인한 폭군들을 상대로 비폭력 시민저항캠페인을 시도할 수 있을까요?

비폭력캠페인에 대한 탄압은 얼마나 흔한 일입니까?

탄압은 비폭력캠페인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시민저항은 얼마나 위험합니까?

비폭력캠페인에 얼마나 자주 정권이 대량 살상으로 대응합니까?

시민저항캠페인은 탄압에 어떻게 대응합니까?

인도 소금행진이 대영제국이 아니라 히틀러와 싸웠더라면 비폭력적일 수 있었을까요?

대량학살 정권에 맞서 싸우기 위해 무장저항이 필요할까요?

친정부 민병대, 암살단 또는 기타 무장한 비정부 단체들이 폭력적으로 공격했을 때 캠페인은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비무장운동에 대한 탄압은 언제 역효과를 일으키나요?

시민저항캠페인은 탄압에 취약한 참여자와 잠재적 참여자들의 공포에 어떻게 대처합니까?

시민저항운동이 잔학 행위를 방지하거나 줄일 수 있습니까?

국제사회가 비폭력운동에 대한 잔학 행위를 막을 수 있을까요?

무자비한 정권에 대한 제재가 비폭력투쟁을 벌이는 민간인들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5. 시민저항의 미래

왜 비폭력혁명이 더 흔해지고 있는 것일까요?

시민저항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효과적이 되고 있습니까?

2010년 이후 시민저항캠페인의 효과가 감소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리한 탄압이란 무엇이며, 운동은 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독재전략의 최근 발전을 감안할 때, 독재정권의 확고한 권력에 도전하는 시민저항의 미래가 밝다고 보십니까?

비폭력캠페인이 끝나면 어떻게 됩니까?

왜 시민저항은 운동이 승리한 후 때때로 독재로의 후퇴를 초래하는 것일까요?

운동이 성공적으로 정치적 대전환을 이뤄낸 후, 그들은 어떻게 이행에 대비했을까요?

시민저항이 진정으로 혁명적인 목표를 달성하는데 성공한 적이 있습니까?

코로나 팬데믹에 시민저항캠페인은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시민저항은 많은 경우 효과적임이 입증되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더 완전히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민저항이 어떻게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요?

시민저항에 대해 모두가 알아야 할 5가지 사항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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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https://withoutwar.org/?p=16103

[2] 권력을 떠받치고(지지하고) 있는 사람, 집단, 기구가 그 지지를 철회하는 것을 말한다.

[3] 운동의 절정기에 인구의 3.5%가 참여한 사례 중 실패한 사회운동은 없다.

[4]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591902

[5] 공공데이터포털 https://www.data.go.kr/data/15045212/fileData.do

[6] 경찰청 정보공개자료실 https://bit.ly/3s25ZXJ

[7] E-나라지표 https://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856

[8] 신진욱. 2020. “1987년 이후 30년, 한국 민주주의의 궤적과 시민정치의 변화” 한국민주주의, 100년의 혁명 1919-2019. 한울 아카데미.

[9] 부정의 하다고 생각되는 법을 어기고 공개적으로 감옥행을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