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병역거부자 오경택입니다. 일교차가 큰 요즘입니다. 다들 몸 건강히 잘 지내시는지요? 일기예보에서는 한낮에 더울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이곳은 종일 가을 날씨가 완연합니다. 가장 더운 오후 2시쯤에도 찬물로 샤워하기가 녹록지 않고 밤에는 이불을 덮지 않으면 감기에 걸릴 정도니까요. 다른 재소자 말이, 한겨울보다 10~11월 추위가 더 견디기 힘들고 감기도 더 많이들 걸린다고 하니 월동준비를 서둘러야겠습니다.

수감생활은 계절의 변화 말고는 적응할 게 거의 없을 만큼 익숙해졌습니다. 초반에 애를 많이 먹던 이발도 꽤 속에 익어, 이제는 가위도 겁 없이 쓰고요. 가끔 의도한 것보다 더 많은 머리를 자를 때도 있는데, 새로운 스타일이란 이러한 순간을 통해 탄생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물론 손님에겐 비밀이지요. 징역이 6개월에 접어드니 새로울 건 없고 반복되는 일상만 남았습니다. 여기서 오는 안온함도 나쁘진 않지만 변화가 없다는 상황이 주는 갑갑함에 숨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수감 초기에는 ‘2주 후 격리 해제’, ‘한 달 뒤 처우 등급 부여’, ‘다음 주 출역 시작’처럼 이전보다 더 나은 상황을 기대할 수 있는 디데이를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거든요. 똑같은 일상만 남은 요즘, 시간이 더 안 간다는 기분마저 듭니다. 어쩌면 바로 이 지겨움이 형벌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어요. 다른 재소자들이 배설하는 혐오와 차별이 가득한 말들인데요, 어쩜 ‘이 상황에서 그 말은 안 하겠지’ 싶은 말을 골라서 하는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에 익숙해지고 무뎌지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50대 미만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지난 주에 저도 백신접종을 받았습니다. 밖에서 교정시설 등에 대한 접종계획을 촉구한 분들 덕분에 빠른 접종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백신 종류는 얀센이었고 다행히 별다른 이상 반응은 없었습니다. 접종 당일 밤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몸살기운과 추위가 있었지만 약을 먹으니 금방 괜찮아졌어요. 밖에 계신 분들도 어서 백신을 맞으시고 조금이라도 안정해지시길 바랍니다. 나아가 일상도 회복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8월에는 밖에서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국정농단과 배임·횡령으로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는 재벌총수가 유례없는 가석방으로 출소했고,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됐습니다. 처지가 처지인지라 이곳 사람들은 누군가의 구속과 석방에 관심이 많은데도 두 사람의 뒤바뀐 IN&OUT에 대해 가타부타는 말들은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도 재벌총수가 누린 ‘특혜 같은 가석방’ 요건을 적용받을 수 있을까 기대하다가 ‘결국 가석방은 높으신 분들 마음에 달렸다’는 닳고 닳은 결론에 닿을 뿐이었지요.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그들의 체념을 보면서 국익이니 위기의 시대니 분칠해도 이번 가석방이 이전과 다를 것 하나 없는 구태의 반복임을 절감합니다.

며칠 전에는 미군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떠났습니다. 이를 보고 전쟁이 드디어 끝났다고 마냥 기뻐한 분은 그리 많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미국이 명분 없이 시작한 전쟁에서 대책 없이 도망쳐 나온 탓에 아프간 사람들은 다시금 위험과 혼란에 빠지게 됐습니다. 여기에 카불 공항의 테러와 미군의 보복 송급은 전쟁이라 불리지 않는 형태의 전쟁이 지속될 거라는 불안을 키웁니다. 전쟁의 부재가 곧 평화가 아니고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불러올 뿐이라는 오래된 사실을 뉴스로 전해 듣고 있다는 게 괴롭기만 합니다. 전쟁과 살상이 끊이지 않는 그곳에 파병까지 했던 한국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할까요? ‘특별기여자’를 수용하는 것 이상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결론이 나지 않는 고민을 오늘도 이어갑니다.

수감생활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무력감인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생화에서 처한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체념에서, 밖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좌절에서 무력함이 피어납니다.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일은 마음속에서 내려놓기도 하지만 문득문득 ‘내려놓기’가 습관이 돼서 만사에 무감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닌지 겁도 납니다. 중용이란, 그래서 쉬운 게 아닌가봅니다. 화나고 슬픈 일이 유독 많은 요즘, 저도, 여러분도 스스로를 지키면서 전쟁없는 세상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1.9.5 일요일

매미의 헤비메탈이 귀뚜라미의 발라드에 무대를 넘긴 가을 밤, 오경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