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새벽 5시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책을 읽지 못합니다. 지난 달에 알게 된 추분이란 절기를 지나니 밤이 길어지는 게 확연히 보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을이 다가온 것도. 쇠창살이 가리지 않은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찰나에 불과한 게 원통합니다. 티 없이 완벽한 푸름을 마주할 때면 비행의 의지를 애써 꺾습니다. 헌데 마음을 달랠 수단이 마땅치 않습니다. 글자를 읽고 쓰는 건 평생 과업이어서 그런지 더 이상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의미만을 갖지 않습니다. 격리시설 내에서도 이따금 격리가 이어지는 거리두기 4단계에서 보내는 시간은 유독 느립니다. 개천절 연휴를 앞두고 코로나19 확진자가 입소하는 바람에 당분간 평일도 주말처럼 지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추석을 무탈히 이겨낸 보람을 빼앗긴 기분입니다.

 

이 곳에 온 지 만 7개월쯤 지나니 웬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습니다. 인내를 연마해 온 덕분이겠죠. 접견도 전화도 허용되지 않았던 혹서기를 이겨냈으니 그보다 작은 고통 따위 우습습니다. 혐오가 묻지 않은 말이 드문 죄수들을 듣는 것에 제법 무뎌졌습니다. 때로는 괜찮은 면이 보인다고, 착각할 법도 한데 그럴 정도로 친밀감이 생기지 않는 게 신기합니다. 함께 지낸 시간에 비례해 거칠어지는 죄수들의 입에 일일이 대꾸하다가는 평정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아 침묵하는 일이 잦아집니다. 마침 새로운 사람이 합류할 시기가 되어서 겸사겸사 묵언수행을 재개합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라’는 말을 항상 경계했는데, 인원이 꽉 찼던 6인실을 잠시 넷이 쓰는 것만으로 조금의 여유를 얻습니다. 12분짜리 영상통화 형식의 접견이 재개돼서 한 주를 버틸 힘을 되찾습니다. 좌변기가 있는 방으로 이사하니 인간성을 회복한 기분입니다. 감옥이 사람을 이토록 작아지게 만듭니다.

 

대체복무요원이 서울구치소에 입성했습니다. 혹시나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 저와 연달아 재판을 받았던 청년이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어깨가 처진 뒷모습밖에 기억나지 않아 제가 먼저 알아볼 수 없는 게 멋쩍습니다. 아직까진 그 무리와 맞닥뜨릴 일이 생기진 않습니다. 죄수가 하던 일을 대체하는 이가 대부분이라 원성이 자자합니다. 서로의 죄목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는 불문율은 여호와의증인을 향한 혐오 앞에 무너집니다. 아마도 저를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와 분리하는 것 같습니다. 법원이 아직도 그와 같은 태도를 바꾸지 않은 영향이 있겠죠. 예상했던 것보다는 마음이 아프지 않습니다. 법정에선 서로 다른 운명에 처했지만 승패가 갈리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무죄를 선고받은 이에겐 비극이겠죠. 지금껏 버틴 시간보다 앞으로 견뎌야 할 시간이 짧다는 희망에 취하는 시기에 접어들어 많이 무뎌진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지켜봐야 가늠할 수 있는 고통일 수 있으니,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다음 편지에서 다시 꺼내야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2021년 10월 4일, 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