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쭝(비폭력 트레이닝 트레이너)

 

 

먼 곳에서 온 침략자들이 섬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섬을 식민지로 삼아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가는 곳마다 정령들의 자취를 파괴하려 합니다. 섬을 지키는 정령으로서 당신은 능력을 키우고 다른 정령들과 힘을 합쳐 너무 늦기 전에 침략자들로부터 섬을 지키고 그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보드게임 〈정령섬〉 상자 뒷면에 적힌 소개 문구이다. 이 게임은 ‘섬의 정령이 되어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다’는, 꽤 보기 드문 테마를 갖고 있다. 플레이어들은 각각 번개·악몽·대지·강물·바다·천둥·녹지· 그림자 등 다양한 정령을 맡아 협력하면서 침략자와 맞서야 한다.

 

슬금슬금 불어나는 침략자들… 어떻게 막을까

작가는 식민지를 건설하는 테마의 보드게임에서 〈정령섬〉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원주민들은 식민지들을 만들기 위해 찾아온 외국인들을 보면서 얼마나 화가 날까? 하지만 우린 그것을 알 수 없지. 왜냐하면 이 게임은 그 곳에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좀 너무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웃어넘겼지만, 이 생각은 작가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꽤 많은 게임이 침략자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내가 종종 플레이하는 〈푸에르토리코〉는 푸에리토리코에서 농장을 만들고 일꾼을 고용하고 작물을 수출하는 게임이다. ‘일꾼’은 갈색의 토큰으로 표시한다. 사실상 노예로 일했던 사람들의 피부색을 표현한 셈이다. 즉, 이 게임의 플레이어는 식민지 지배자가 되어 원주민들을 착취한다. 더 많이 착취해 부를 쌓는 사람이 승자다.

테마의 내용은 정말 해로운데, 게임 자체는 참 잘 만들었다. 그래서 ‘이건 푸에리토리코가 아니다. 어떤 섬나라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게임이다’라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게임을 한다. 그래도 마음 한 켠이 찜찜하고 불편하다. 아마 작가도 이런 마음으로 〈정령섬〉을 개발했을 것이다.

그 마음이 깃들어서인지 〈정령섬〉 게임은 공들여 만든 티가 팍팍 난다. 제국들의 침략 과정, 정령의 특성과 능력, 원주민과 정령의 관계 등에서 현실을 깨알같이 반영했다. 작가의 고민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침략은 3단계로 이루어지는데,  ‘탐사’ 단계에서는 탐험가만 등장하지만, ‘건설’ 단계에서는 탐험가가 슬금슬금 마을이나 도시를 만들며, ‘정복’ 단계에서는 원주민을 수탈하고 섬을 오염시킨다. ‘탐험’이라는 이름으로 식민 지배를 넓혀갔던 유럽의 역사를 보는 듯하다. 게다가 게임 옵션으로 적대국을 설정할 수도 있는데, 이 때 적대국으로는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왕국’, ‘잉글랜드 왕국’, ‘스웨덴 왕국’ 등 실제 유럽국가가 등장한다.

플레이어의 저항도 꽤 현실적이다. 게임을 하다 보면 언제나 그런 때가 온다. 침략자의 마을과 도시가 불어나는데도 손이 닿지 않고, 정복이 일어나고 오염이 확산되는데 도무지 막을 방법이 없는 때. 모든 곳을 한꺼번에 지킬 수는 없는 법이니까. 이럴 때 어떤 곳을 포기할 지 선택하는 것도 전략의 일부이겠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이게 현실이라면 우리가 포기한 지역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자연이 파괴되겠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정령섬

<정령섬> 플레이 장면. 가운데 섬이 놓이고 그 위에 ‘침략자’와 ‘원주민’ 마커가 놓인다. 플레이어들은 각자 섬을 지키는 정령이 되어 원주민들과 상호 작용을 하며 침략자들에 맞선다.

 

원주민들의 ‘군사적 저항’이 성공하려면

〈정령섬〉 게임이 현실 세계의 침략전쟁과 저항활동 사례를 연상시키는 대목은 이 뿐만이 아니다. 특히 원주민의 반격 과정은 ‘군사적 저항’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게임에서 섬을 지키는 주인공은 정령이지만, 제대로 섬을 지키려면 원주민이 움직여줘야 한다. 정복 단계에서 침략자가 먼저 공격을 한 뒤에는 살아남은 원주민들이 반격을 한다. 군사적 저항을 하는 셈이다.

아마도 이 섬의 원주민들은 평화를 참 사랑하는 것 같다. 침략자들이 자기 땅에 들어와 마을과 도시를 건설하는 동안에도 선제공격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플레이어 입장에선 답답할 지경이다. 아이고, 이 사람들아! 저 탐험가부터 쫓아내. 저 놈들, 아주 나쁜 놈들이야.

그런데 호전적 원주민이 등장하는 옵션 룰도 있다. 원주민이 지역을 이동할 때마다 침략자에게 즉시 피해를 입히는 규칙이다. 얼핏 들으면 원주민이 시원시원하게 침략자들을 무찔러서 게임이 쉬워질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도시를 파괴하면 주변 지역에 마을이 생기고, 마을을 파괴하면 주변 지역에 탐험가가 생긴다. 즉, 저항이 강력해진만큼 침략자도 더 세게 나오는 것이다.

규칙을 이렇게 설정한 이유에 대해서,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침략자들의 정부는 전략적 중요성을 근거로 여전히 섬에서 물러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다한(원주민)의 호전성에 대응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즉, 피가 피를 부르고 공격이 공격을 낳는 셈이다.

이 옵션 룰을 적용할 때 게임 난이도는 다른 조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어떤 정령으로 플레이를 하는지(원주민을 배치하는 능력이 뛰어난 정령으로 플레이하면 게임이 쉽다), 어떤 적대국을 설정하는지(대량으로 마을과 도시를 건설하는 나라를 상대하면 게임이 어렵다) 등이 변수다. 즉, ‘군사적 저항으로 섬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섬의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얼핏 보기에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극단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총을 들 것인가, 말 것인가?’, ‘총 없이 침략자를 몰아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단답형의 답변만을 허용한다. 그러나 게임에서조차 정해진 답은 없다. 각국의 군사적∙경제적∙지리적 조건, 종교∙민족∙지역 간 갈등이 오랜 시간 얽히고설킨 채 벌어지는 현실 세계의 전쟁은 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

 

우리가 바로 정령들이다

〈정령성〉 게임의 배경은 먼 과거 제국주의 시대이지만, 나는 원주민의 저항을 보면서 나에게 좀 더 친숙한 전쟁들을 떠올렸다. 21세기에 벌어졌던 많은 전쟁과 그에 군사적으로 저항했던 베트남, 이라크, 팔레스타인,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예멘의 사람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러시아의 침략에 다양한 방식으로 맞서고 있을 우크라이나의 사람들.

게임에서 내 정령이 있는 지역 한 곳이 파괴될 때에도 속이 쓰린데, 실제로 전쟁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어떤 마음으로 고향에 남고, 어떤 마음으로 고향을 떠날까. 어떤 마음으로 “조국을 지키겠다”고 총을 들고, 어떤 마음으로 “그래도 총은 들지 않겠다”며 다른 길을 선택할까.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을까.

안전한 방 구석에서 즐겁게 보드게임을 하는 나로서는 그 마음을 감히 짐작할 수도 없고, 무엇이 옳은지 답하기도 어렵다. 이런 복잡한 질문에는 쉽게 답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평화를 그렇게 쉽게 얻을 수는 없을 테니까.

다만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전쟁을 막아 낼 때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전 세계의 평화활동가들이 반전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매주 금요일마다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반전집회가 이어진다. 국제개발협력단체와 인도주의단체들은 피해자 및 난민들을 위한 긴급구호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함께 침략전쟁에 저항하면 좋겠다. 침략자를 막아내는 우리가 바로 정령들이다.

 박스 이미지

<정령섬> 박스 이미지. 세련되지 못한(?) 박스 이미지와 다르게 게임은 시각적인 디자인이나 게임 룰 모두 훌륭하다.

 

덧말

이 글은 본격적인 게임 리뷰는 아니라서, 〈정령섬〉 게임에 대한 설명은 길게 하지 않았다. 사실 본격적으로 리뷰할 정도로 내가 게임을 잘 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게임을 추천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음… 게임 초보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룰이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각자의 다른 능력을 발휘해 침략자에게 피해를 주고, 각 지역을 방어하며, 원주민의 반격을 지원한다. 또한 원주민이나 침략자를 재배치해서 정복이나 건설을 막고, 침략자에게 공포를 심고, 섬의 오염을 막거나 제거한다. 이런 갖가지 활동을 다른 플레이어들과 상호작용하면서 해야 한다. 한 번 플레이하는 데 걸리는 시간(2시간~2시간 반)도 짧지 않다.

그러나 ‘게임 내내 정신이 하나도 없고, 뭘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처음 몇 차례의 어려운 경험을 견디다 보면, 게임의 복잡성이 조금씩 재미 요소로 바뀌기 시작한다. 보드게임 좀 해봤다 싶은 중수 이상이라면 적응이 더 빠를 것이다. 일단 게임에 익숙해지면, 어려운 계산과 상호작용 끝에 극적으로 침략자들을 몰아낼 때는 쾌감이 상당하다. 정령들의 조합, 섬보드의 배치, 옵션룰의 적용 등에 따라서 게임을 다채롭게 변형할 수 있다는 것도 엄청난 장점이다. 덕분에 질리지 않고 끊임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상호작용이 많은 협력 게임이니까 되도록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플레이하기를 권한다. 그래야 서로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더 역동적인 게임을 할 수 있고, 잘하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주도해 다른 플레이어가 소외되는 문제도 줄어든다. 구성물이 예뻐서 오프라인 보드게임으로 구매해도 좋지만, 실물 구매가 부담스럽다면 온라인 게임을 사서 비대면으로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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