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전쟁없는세상 주:

이 글은 피스모모 10주년 행사 ‘평화의 공존, 공존의 평화’  행사 토론문입니다. 행사의 다른 토론과 발제는 피스모모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은 단체명에서 바로 알 수 있는 것처럼 반전운동단체입니다. 한국, 서울에 근거지를 두고 있습니다. 저희는 전쟁이 어떤 미치광이 군 최고 수뇌부의 즉흥적인 결정으로 일어난다고 보지 않고 군사화된 일상이 폭력적으로 발현한 결과가 전쟁이라고 여깁니다. 군사화된 일상이라면 여러 가지 제도나 기관, 문화까지 포괄할 수 있지만 저희는 내부적인 합의를 거쳐 그 중에서도 딱 두 가지 징병제도와 무기거래 문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전자를 위해 지난 20여년간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해왔고 최근에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후자를 위해서는 대표적으로 2년에 한 번씩 한국에서 개최되는 동아시아 최대의 무기박람회 아덱스에 저항하는 활동 지속해오고 있고 최루탄이나 물대포와 같은 한국산 경찰무기, 확산탄 등의 개별무기, 혹은 예맨 전쟁과 같은 특정 전쟁에 한국산 무기가 수출되는 것을 감시하고 막는 활동을 벌여오고 있습니다. 이슈가 이슈이다 보니 매번 지는 싸움이지만 바레인과 터키에 한국산 최루탄이 수출되는 것을 저지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전쟁없는세상이 전쟁의 원인이 되는 일상의 군사화를 문제 삼는 활동을 하기 때문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활동은 저희에게는 반전운동, 평화운동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기후위기는 전쟁의 원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전쟁은 기후위기를 낳는 석유 등의 화석연료, 식량, 식수 등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입니다. 많이 얘기되지는 않았지만 최근의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멸종반란 우크라이나는 푸틴의 군대가 석탄, 석유, 가스 산업에 의해 그 자금과 연료를 공급받고 있고 화석연료에 중독된 세계가 전쟁을 원하는 푸틴에 자금을 대주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멸종반란 한국에 의하면 특히 한국은 러시아의 7대 수출국으로 한국 가스공사는 러시아 최대의 국영 화석연료 기업 가트프럼과 ‘한러 가스공급 양해각서’를 맺고 있고 SK 등 대기업들도 러시아로부터 나프타 등 석유화학 원료를 대량 수입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후위기는 또한 전쟁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전쟁시기 군사활동 뿐만 아니라 소위 평화시기에도 군대, 방위산업체, 군사기지 등 각종 군사기구들은 주로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 합니다. 이들 기구들의 활동 및 존재 자체가 심각한 환경 피해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대체로 무시됩니다. 감축의무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탄소배출뿐 아니라 무기 원료 추출부터 수질과 토지의 오염까지 군사기구와 그 활동으로 인한 피해는 그 규모가 크고 다양합니다.

세계 7위 이산화탄소 배출국이자 가장 빠르게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하는 국가 중 하나인 한국역시 군사 시설과 군사 활동 용도의 차량은 목표관리 감축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이에 2020년 녹색연합,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피스모모, 한베평화재단은 국방부와 환경부에 군사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관련하여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답변 내용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군사 부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차량 2부제, 5부제 실시 등 노력 중이라는 것과 군사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공공부문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 운영 등에 관한 지침 제9조에 따라 통계에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것, 다만 국방사무 및 주한미군 유류 사용량의 경우 배출량이 포함되어 산정되나 별도로 분리하지 않아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고,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2018년)에는 국방부 본관, 국립서울현충원 청사 등 건물 및 차량 배출량, 국방전산정보원 차량 배출량 등이 해당되나 각 군 및 해병대 등 국방·군사 목적의 시설은 역시 위 지침 9조에 따라 제외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일부 건물과 일부 차량 이외에는 통계조차 내고 있지 않다는 답변인 것입니다.

이외에도 제주해군기지를 비롯한 군사기지로 인한 해양오염 등 환경파괴, 사격장 등의 군사훈련장으로 인한 소음피해 및 토양오염, 무기 제조 및 거래에서 발생하는 지속적인 환경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군사부문은 야기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체 국방비는 늘고 있습니다. 2020년 50조1,527억원, 2021년 52조8,401억원, 2022년 54조6,112억원입니다. 정부 총 재정 대비 비율로 보면 2020년 14.1%, 2021년 13.9%, 2022년 13.0%로 줄어들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으나 여전히 이스라엘, 러시아, 미국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입니다.

갈 길이 멉니다. 그린워싱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을 정도로 많은 나라들이 이미 군사 차원에서 기후위기를 다루기 시작했지만 아직 한국은 일언반구 말이 없습니다. 일관된 군축정책 없이는 기후위기와의 싸움은 끝날 수 없습니다. 군사비의 생태적 전용, 핵무기금지조약의 비준, 무기거래, 특히 분쟁지역과 인권침해 국가에 한국산 무기를 수출하는 것을 당장 중단, 국경을 비군사화하고 환경난민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 비폭력평화교육 등 지금 당장 구체적 아젠다를 개발해야 합니다.

제가 처음에 단체 소개를 할 때 대체복무제도 도입이라는 성과가 있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 덕분에 전쟁없는세상의 활동이 단체 바깥에서 보기에는 정점을 찍고 이제 하락세에 들어서는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이제 전쟁없는세상 뭘 할 꺼야?”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으니까요. 무기거래감시 캠페인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전쟁없는세상이 병역거부자와 후원인의 모임으로 시작했고 가장 오래된 캠페인이 병역거부캠페인이었으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단체 내부적으로는 전쟁없는세상의 향후 10년을 설계하는 비전워크숍이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쟁없는세상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올해 뜬금없이 바빠졌습니다. 예상하실 수 있는 것처럼, 시작된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우리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 글을 쓰고 데모를 조직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내부의 평화주의자들의 입장과 소식을 퍼 나르며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반전운동단체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 전쟁이 깔대기처럼 우리의 모든 관심과 자원을 흡수해 현재 진행되는 다른 전쟁에 대한 뉴스나 빈곤, 불평등, 실업, 사회적 소외와 기후 위기 등의 일상의 진정한 위기가 무시될 수도 있다, 아니 무시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러한 자리가 더욱 소중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일상의 기후위기에 저항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전쟁을 막는 운동이 되고, 무기거래를 저지하는 행동이 무기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나 각종 환경파괴를 막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비남성으로 패널을 꽉 채운 모모의 안목에 감탄하며 가부장제, 성차별주의가 군사주의와 환경파괴 모두의 원인이자 결과라는 점을 짚고자 합니다. 전쟁의 성별 영향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전후 평화재건 과정에서 여성 참여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 유엔 안보리의 여성과 평화안보에 관한 결의(1325호)가 나온 것이 2000년입니다. 강산이 두 번도 더 바뀐 세월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것도 시민사회에서 이런 기획이 아직 당연한 것이 아니라 칭찬받을 일인 것이 좀 안타깝습니다. 아무튼 앞서 얘기한 1325결의안의 ‘전쟁’을 ‘환경파괴’나 ‘기후위기’로 바꾸면 얼추 말이 됩니다. 환경파괴와 기후위기의 영향은 전쟁처럼 젠더화 되어 있습니다. 또한 기후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동등한 참여를 보장받고 있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공격, 지배, 대립을 자연스럽고 당연시하는 젠더에 대한 지배적인 생각이 군사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이 두 지배적 권력구조가 얽혀 만들어내는 현재의 대환장파티를 만드는 기저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이에 도전하는 것 역시 중요한 반군사주의운동, 기후위기에 저항하는 운동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제 토론을 마칠까 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