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비(시각문화 연구자, 독립기획자)
전쟁없는세상의 20주년 전시를 마무리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3월 중순 첫 만남 이후 우공, 쭈야, 용석으로 구성된 전시팀과 온라인으로 주기적으로 만나 기획 회의를 하고, 전시 오픈 전날 저녁 용석, 쭈야, 우공, 펭귄, 김경묵, 쥬, 안악희, 오리 등 전쟁없는세상(이하 전없세)의 활동가 및 동료들이 모여서 일사천리로 전시물을 설치했다. 300여 명이 다녀간 일주일간의 전시 동안 네 번의 강연과 토크를 했고, 전시 마지막 날 다시 필요한 인원을 훌쩍 넘는 이들이 모여 몇 시간 만에 전시장을 비웠다. 이 글은 전시 <추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협력기획으로 참여하며 전시를 만들고 갈무리한 사람의 시선에서 남기는 일종의 주석이자 댓글처럼, 편지의 추신처럼 쓰였다. 기획자의 위치에서 전시에 대해 남기는 간략한 해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달 여러 단체에 나가는 후원비를 늘리는 것이 부담스러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나서야 얼마 전 정기후원 버튼을 누른 보통의 개인의 자리에서 전없세를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전시설명글에도 썼듯이 “그간 현장과 시위를 오가는 숨 가쁜 운동의 시간 속에서 두껍게 쌓인 아카이브들을 처음으로 한 자리에” 꺼내놓는 자리였다. 전없세 사무실에서 처음 아카이브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날이었다. 작은 사무실 어딘가에서 박스가 자꾸 나왔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번 사무실을 옮기며 이사를 했음에도 전없세의 많은 자료들은 박스 안에 잘 담겨있었다. 어떤 게 들어있는지 모르는 박스들을 열며 전없세 활동가들은 “이게 여깄네”를 연발했다. 행사 자료집 사본뿐만 아니라 행사 당일 강의를 들으며 빼곡히 적은 필기가 남아있는 누군가의 문서, 준비도 여러 번 했기에 날짜도 여러 버전인 회의록, 손때와 낙서가 남은 국제회의 문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메일주소와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방명록 등. 물론 정리는 안 되어 있었다. 사진과 편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회의록, 자료집, 시위 도구, 티셔츠, 책자들은 시간과 주제와 상관없이 뒤섞여 있었고 피켓이나 현수막도 재사용을 여러 번 했기에 이전 것들은 찾을 수가 없었다. 사실 정리가 잘 안 되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것도 어렵지만, 시민단체에서는 아카이빙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활동가들의 일은 너무 많고 보통 몇 인분의 역할을 하는 것이 평균이기에 매번 다음 사건, 다음 행사를 준비하고 대응하기에 바쁘다. 정리도 하나의 일이기에, 자연스럽게 다른 일에 더 우선순위가 갈 수밖에 없을 듯했다. 그럼에도 2010년대를 기점으로 전없세는 온라인에 차곡차곡 자료들을 잘 모아왔고, 정리 회의나 후기 등을 통해 갈무리하는데 많은 애를 쓰고 있다. 이번 전시의 의의가 있다면 이 자료들을 총정리해 보는 데 있다고 서로를 토닥이며 박스를 열고 먼지 쌓인 것들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어지럽게 뒤섞여 있던 다양한 회의록, 자료집, 책자, 시위물품 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면서 전시에서 보여줄 것들을 추렸다. 사진은 전시 전날, 전시에 가져갈 물품을 모아놓은 것
이번 전시에서는 연표를 만들기로 했기 때문에 그것에 맞춰서 다른 자료들이 짜 맞춰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가장 오래 연표를 만드는 일을 진행했다. 사실 아카이브 전시에서 가장 많이 만드는 전시물이 연표이다. 연표는 기록되지 못한 것들을 시간이라는 고정점을 축으로 역사화하기도 하고, 한눈에 여러 사건들을 맥락화해주기도 하며, 어떤 과정의 흐름을 파악하게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여러 사건들의 큰 그림 속에서 서로 다른 일, 단체, 인물 간의 상관관계를 볼 수 있다. 전없세라는 단체가 병역거부운동을 중심으로 20년이 넘게 활동해온 지나간 시간들을 정리하고 이들이 마주한 21세기의 한국을 보여주려니 당연히 연표가 필요했다. 전없세가 참여한 병역거부운동의 시간 정리는 용석 활동가가 품을 많이 들였다. 매해 병역거부선언한 사람들의 이름을 찾아 적고, 기록이 희미한 2000년대 초반 자료들을 정리할 수 있었던 건 당시에 그 자리에 있었던 용석 활동가의 기억, 그리고 오리 활동가의 기억 덕분이었다. 여기에 한국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 중 전없세에 크고 작게 영향을 준 일들에 ‘공적 시간’이라는 이름을 달아 하나의 축을 더하니 20년의 역사가 그려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 시간들은 전없세를 잘 아는 사람들, 활동가나 후원회원, 병역거부 당사자, 연표에 있는 사건들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만 읽힐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방에서 나고 자라 2010년 초반에야 서울에 살며 점차 두 눈으로 사회문제를 목격하고 그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나에게도 2000년대의 시간들은 희미하고 아득한 거리감이 있었다. 전시팀은 그래서 여기에 개인의 시간을 더하기로 한다. 우리가 알법한 사람들을 캐릭터화해서 그들의 목소리로 국가의 시간과 운동의 시간에 들어가는 경로를 만들어낸 것이다. “개인의 시간은 21세기를 살아온 누군가가 겪었을 시간들을 상상한 픽션이지만 각자의 경험, 보고 들은 친구들의 경험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논픽션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 연표에서 강원도 강릉 출생 65년생 김옥자는 우리 엄마를 떠올리며 각색한 것이었다.
작은 딸도 연세대에 입학했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축하할겸 가족 여행으로 제주도에 왔다. 큰 딸이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세워지고 있는데 반대운동에 서명해야한다고 문자로 링크를 보내줬다. 군사기지면 대한민국을 보호해주는 것 아닌가 의아했지만, 큰 딸 성화에 엉겁결에 서명을 했다. (2011년, 김옥자의 시간)
지방에 살면 시위를 보통 대중매체를 통해서 어떤 문젯거리처럼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뉴스로 시위를 접할 때마다 우리 엄마는 내게 카톡이나 전화로 안부를 묻곤 했다. 시위의 메시지보다는 시위라는 이미지가 서울에 사는 두 딸의 안부를 묻게 하는 걱정거리로 다가오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찬성과 반대로만 이분법적으로 나눠지는 사람들 사이에는 다양한 이유와 다양한 입장을 가진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그냥 50대 남성, 여성, 기성세대라고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생각들이 캐릭터화하고 서사화되면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다. 가끔 엄마에게 빌려주는 책이 정희진의 서평집이거나 비거니즘 만화일 때 일단 읽어보길 시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운동이 일상에 스며드는 뜻밖의 순간을 생각해보곤 했다. 전시장에서 사람들이 가장 재밌게 읽은 부분이 연표의 ‘개인의 시간’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후에 펼쳐질 시간들을 상상해보았다. 6월 6일부터 12일까지 이곳에 다녀간 사람들 중에서 전없세나 병역거부운동을 잘 몰랐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앞으로 어떤 생각들이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가장 먼저, 가장 오래 준비했던 전시 연표의 일부. 2023년5월까지 전쟁없는세상의 시간과 한국 사회의 시간, 그리고 관람객들이 이런 공적인 시간으로 들어가는 경로로 준비했던 개인의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전시를 만들며 나는 ‘공동의 전시’ 라는 말을 자주 떠올렸다. 일정한 시간 동안 특정 공간을 점하는 전시라는 사건, 행사, 혹은 창작물은 당연히 여러 사람들의 노동과 관여로 이루어진다. 큰 전시일수록 크레딧도 빽빽하다. 하지만 이 전시는 특히나 여럿이 함께 만든 것이라는 게 더 체감되는 경험이었다. 전시 만들기가 처음으로 외롭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이번 전시는 하나의 행사를 준비하기에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통상적인 전시를 준비하는 데에는 부족한 돈으로 시작했다. 이 돈이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따져보니 새삼 전시에 들어가는 여러 소모되는 비용들이 크게 느껴졌다. 시트지 비용, 장비 렌탈 비용, 소품 제작 비용, 운반 비용, 설치 비용 등등. 그것은 아카이브를 감싸는 포장지 역할에 사용될 비용들이었다. 사회운동 아카이브 전시였기에 그 비용 하나하나가 과연 필요한지 따져보는 시간이 있었다. 결국 많은 이들의 도움과 배려로 소모품에는 거의 돈을 쓰지 않았고 그 덕분에 전시 설치와 철수 과정에서 폐기물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테이블, 전시물품, 운반용 차량 등을 제공해준 이들 덕분이다. 전시가 진행되는 일주일 내내 전시장에 나와 방문하는 관객들을 맞이하고 전시물을 설명하고 챙긴 수많은 손들 덕분이다. 새로운 구조물이나 그래픽적인 요소들로 아카이브를 감싸거나 떠받치지 않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이 그 역할을 했다. 미술 전시라면 허용할 수 없는 부족한 비용과 환경에도 연대의 마음으로 참여해준 김경묵 작가가 나눠준 기억과 오로민경 작가가 만들어준 기억이 전시장의 아카이브들을 지지했다.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돌보는 손, 지지하는 손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방문객들로 채워진 전시장과 생각보다 오래 머무르며 꼼꼼히 전시물을 살피던 사람들의 뒷모습을 마주하며, 사람들이 전시를 그렇게 많이 보러 다니진 않는다며 회의적인 말로 기대치를 낮췄던 내가 부끄러웠다. 평화수감자들에게 편지를 쓰는 관객참여 테이블에 생각보다 많은 엽서가 모여 있어 놀랐던 순간도 기억난다. 전없세와의 전시만들기는 어쩌면 내가 나의 경험 속에서 갖고 있던 운동과 공동체에 대한 회의적인 마음들을 회복하고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수락할 수 없을 것 같은 개인적인 일정과 자신 없는 마음속에서 연대의 마음으로 참여한 일들에서 꼭 실수가 발생하곤 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동시에 여러가지 일들을 하고, 계획된 것 속에서 계획하지 못한 일들이 생기거나 들어오는 일상이 잘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전없세에, 그리고 내가 함께 하지 못한 지난 운동의 시간에, 그리고 앞으로의 평화 운동에 연대하는 참가자로 함께 했지만, 전없세의 아카이브를 읽고 보고 다시 쓰며 용기와 더 나아갈 방향을 찾아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해외 일정과 잔병치레로 일정을 맞추지 못하는 내게 그래도 괜찮다고 해준 말들, 서로에게 너 없으면 못할 거라고 해주던 말들이 이 전시를 만들었다. 생각해보니 전없세의 아카이브에서 살펴본 사진과 방명록 안에도 그런 말들이 있었다. 이렇게 서로를 향하는 목소리들 덕분에 “연대와 응원의 편지가 끝나지 않고” 이곳에 흐를 것이라고, 미래에 보내는 편지 같았던 이 전시에 짧은 추신을 남긴다.
*큰 따옴표 안의 말들은 전시<추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전시소개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20주년 전시 <추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관람객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