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경(〈드라마의 말들〉저자)

 

<무빙>은 무언가를 지키는 드라마다.

우선 가족을 지킨다. 초능력을 가진 부모 – 봉석(이정하)의 엄마 이미현(한효주), 희수(고윤정)의 아빠 장주원(류승룡), 강훈(김도훈)의 부모 신윤영(박보경)·이재만(김성균)을 비롯하여 계도의 아빠 전영석(최덕문), 세은의 엄마 홍성화(김국희)는 자식은 자신처럼 국가에 의해 착취당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하고자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자식을 지킨다. 부모뿐 아니라 자식들도 무언가를 지킨다. 비행능력을 가졌지만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던 봉석은 희수와 엄마가 위험에 처한 걸 감지한 후 각성하여 비행 기술과 오감 능력을 활용하여 엄마를 지킨다. 희수와 도훈도 위험으로부터 아빠(들)과 주변 인물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남한뿐 아니라 북한군도 그렇다. ‘아바지’가 되는 걸 기뻐하던 비행 능력 특수기력자 장준화(양동근)도, 그보다 먼저 ‘발각’되어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당시 투입되었던 강찬일(조복래)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임무를 수행한다.

사랑을 지키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안기부에서 서로를 이용해야 하는 관계였다가 사랑하는 사이가 된 미현과 김두식(조인성)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거짓말을 하거나 저항하고 은둔한다. 두식이 맡기 싫었던 특수 임무를 위해 다시 북한으로 날아간 이유도 국가로부터 미현과 봉석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주원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자신이 속한 조직폭력배 조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으나, 이후에는 연인인 황지희(곽선영)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박력 있게 사용하고 안기부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한다. 어릴 적 탈북하려던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로 수용소에 갇혀 지내면서 삶을 의지를 상실하게 된 북한 특수기력자 림재석(김중희)은 “삽시다. 살아봅시다. 포기하지 말고”라는 말로 자신을 다시 살게 한 옆방 수감자 권용득(박광재)을 각별히 여긴다. 재석은 자신과 함께 작전에 투입된 용득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용득을 지키기 위해 창밖으로 투신하여 자신의 손으로(충격파 발휘 능력이 있다) 지반을 무너뜨린 후 “사람답게 살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자신의 영역에서 공동체를 지키기도 한다. 전력을 사용하는 능력이 있는 버스 운전기사, 전계도(차태현)는 자신이 모는 버스 승객과 매일 만나는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정상궤도를 벗어난 운행을 감행한다. 초능력자를 선별하여 육성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정원교등학교 교사로 파견된 안기부요원 최일환(김희원)은 아끼던 제자가 사망하자 각성하여 학교와 학생들을 지키는 교사로 거듭난다. 반대로, 지키지 못하여 어긋나는 이도 있다. 북한 보위부 요원 김덕윤(박휘순)이 그렇다. 두식이 주석궁을 돌파했을 때 경호가 뚫린 죄로 부하와 동료가 모두 총살당하고 혼자만 살아남자, 동료들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을 가지고 보위부의 명령을 받아 특수 기력자를 양성하며 많은 특수기력자 후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을 하게 된다. 악인인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그의 어긋남도 결국 동료를 지키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무빙은

무빙은 국가(또는 공권력)이 부재한 상황 혹은 오히려 국가가 개인들을 해치려고 할 때, 이에 맞서 서로를 지키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들은 초능력자지만 이들이 히어로가 되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초능력은 국가와 맞설 때만 쓰이고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연인, 가족, 친구 그리고 자기 자신의 삶이다.

 

각각 다른 것을 지키는 것 같지만 이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결국 평화가 아니었을까? 드라마 속 인물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원하는 이들이었다. 주원의 말처럼 “좋은 사람이 이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무협지 결말처럼 말이다.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그 평화를 지키고자 한다. 물론 그 평화는 때로는 무력하고 너무 자주 위태롭다. 평화로울 때가 오히려 위기인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남한의 국가안전기획부 제5차장 민용준(문성근)과 북한 보위부장 김현성(손병호)로 대표되는 ‘국가’는 시민/인민의 안녕과 국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표방한다). 그러나 이들은 위기를 통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여 존재감을 인정받으려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평화는 곧 (존재감이 상실될) 위기다. 그래서 호시탐탐 적진을 습격하며 ‘적’을 위협할 초능력자/특수기력자를 발굴하여 육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물론 국가 체제도 평화를 강조하긴 한다. 얼마 전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했다. 압도적 힘에 의함 평화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서 한 소리일까? 조직폭력배가 팔에 ‘차카게 살자’ 문신 새기고 “차카게 살자”고 윽박지른다고 착해지는 게 아니듯 평화는 힘에 의해 조성되는 게 아니다. 평화로써 지켜질 수 있다.

<무빙>의 가장 중요한 멘탈리티는 ‘가족애’지만,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떨게 지킬 수 있나?“라고 질문하며 평화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괜찮은 반전/평화 드라마이기도 하다. 특히 안기부 특수요원이지만 사람을 죽이지 않기 위해 정확하게 사격하는 기술을 익히고 실행한 국정원 요원 두식이나 “인민은 죄가 없다. 죄는 희생을 강요하는 자에게 있다”며 “우리 대에서는 끝내야 한다”는 신념을 실행한 덕윤의 선택이 인상적이다. 시민/인민을 국가 간 대립을 유지하는 인력이나 국가 체제 유지의 도구로만 여기는 폭력적인 국가 체제에 대한 나름의 저항 아니었을까? 물론 초능력이든 특수기력이든 아무는 능력이 있어야 뭐든 지킬 수 있는 건가 싶어 슬퍼지지만, 같은 능력이라도 어떻게 발휘하느냐 – 무엇을 지키는 데 사용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이 없다면, 그 능력은 누군가를 죽이거나 폭력적 체제의 기여자가 될 수 있다는 면에서 능력의 방향성에 관한 성찰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초능력? 그게 뭔데. 사람의 진짜 능력은 공감 능력이야. 다른 사람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그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야. 다른 사람 마음 아프게 하는 게 그게 무슨 영웅이야”라는 미현의 소신과, 북한 특수기력자 용득이 희수네와 함께 살며 주원의 온갖 구박을 받으며 치킨을 튀기는 장면이나 봉석이 자신의 초능력을 활용하여 누군가의 생명과 일상을 지키는 무명의 영웅으로 활약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 <무빙>의 ‘적’은 남한과 북한이 아니다. 폭력적인 국가 자체이며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공동체이며 궁극적으로는 사랑과 평화다. “좋은 사람이 이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무협지 결말처럼 말이다. 그리고 드라마는 그 어려운 임무 수행에 성공한다.

하지만 이것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판타지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이번 공격으로 시민이 희생되었으며 하마스는 100여 명의 이스라엘 시민을 인질로 잡아갔고,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가자지구도 많은 시민이 희생되었다. 두 국가 간 전면전이 펼쳐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 리뷰를 쓰려니 너무 한가한 소리 하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그러나 각자의 ‘명분’을 위해 무고한 시민을 희생시키는 국가 체제의 폭력을 상기해 볼 수 있다는 면에서 곱씹어 볼 드라마라 애써 의미부여를 해본다. 평화는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 “우리 대에서는 끝내야 한다”는 덕윤의 말처럼 폭력을 더 이상 행사하지 않고 무한반복되는 군사적 대결의 고리를 끊겠다는 누군가의 적극적 의지와 노력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하마스의 기습 공격 직후에 전쟁저항인터내셔널에서 낸 성명에 적극 동의한다. 이런 신념이 그저 ‘판타지’로 끝나지 않기를. 전쟁이 확산되지 않고 멈추어 더 이상의 생명과 일상이 폭력에 희생되지 않기를. 힘에 의한 평화라는 가치관이 허용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폭력이 격화되면 우리는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죽여야 하는 적으로 간주하는, 차이를 없애야 하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거부합니다. 이러한 요구가 아무리 커지더라도 폭력이 요구하는 잘못된 선택을 거부하는 사람과 공동체가 있어왔고 앞으로도 항상 존재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대신, 우리는 총과 폭탄이 아니라 비폭력적으로 신뢰와 협력을 구축하고, 엄청난 압력에도 살인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감히 상상하는 사람들과 연대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증폭시키는 데 전념하고자 합니다.” – 전쟁저항인터네셔널 성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