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이전에 소개한 〈CO2〉가 기후위기 대응의 한 측면(친환경 발전)을 다룬 게임이었다면 〈데이브레이크〉는 본격 기후위기 대응 게임이라고 할 만하다. 개발자는 〈팬데믹〉 시리즈로 유명한 게임 디자이너 매트 리콕과 게임 디자이너이자 교육자인 마티오 메니페이스이다.

〈데이브레이크〉는 완전 협력 게임으로, 게임의 목표는 각 국가(혹은 국가 연합) 정부의 역할을 맡은 플레이어들이 힘을 합쳐 탄소 배출 넷제로를 달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해진 수의 라운드가 지나기 전에 한 라운드에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양을 숲과 바다 등에 흡수되는 탄소의 양보다 적게 만들어야 한다.

 

기후위기 완화와 적응을 어떻게 게임으로 풀었을까

게임은 기후위기 대응의 두 축인 완화와 적응의 개념을 규칙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완화’는 탄소 배출을 줄여 지구 온난화를 막는 것이고, ‘적응’은 인류를 기후위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회복력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게임에서 완화는 화석연료 발전과 기타 배출원(공업, 농업, 운송수단, 건물, 유전, 폐기물)을 줄이는 것으로 표현된다. 기후위기 완화를 충분히 하지 못해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2˚C 이상 상승하면 게임에서 즉시 패배한다.

적응은 회복력으로 상징된다. 고조되는 기후위기에 맞춰 세 종류의 회복력(사회, 생태, 인프라)을 고루 갖추지 못하면 위기에 빠진 공동체 토큰을 받는다. 에너지 공급이 증가하는 수요(인구)를 따라가지 못해도 위기에 빠진 공동체 토큰을 받는다. 이 토큰이 일정 개수에 도달하면 즉시 게임에서 패배한다.

이로써 플레이어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증가하는 인구에 맞춰 에너지 공급을 늘리자면 기존의 화석연료 발전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하는데, 동시에 탄소 배출은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게임을 해보면 인구가 비교적 적은 미국과 유럽이 빨리 친환경 에너지 체제로 갈아탄 뒤 중국과 다수세계(제3세계)를 원조하는 양상이 자주 펼쳐진다.

보드게임 〈데이브레이크〉 플레이 모습

보드게임 〈데이브레이크〉 플레이 모습

 

폭넓은 접근과 빼어난 테마성

개발자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개인의 생활양식이나 윤리적 소비가 아니라, 지구적 규모의 구조적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게임이 플레이어들을 임파워링하고, 기후위기를 막는 것이 엄청난 도전이면서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각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로컬 프로젝트 카드와 여럿이 함께 사용하는 글로벌 프로젝트 카드는 다양한 정책과 기술, 사업 등을 상징한다. 흥미롭게도 프로젝트 카드 중에 ‘여성 교육’이 있는데 이 카드를 사용하면 에너지 수요(인구)가 줄어든다. 이처럼 기후위기 대응의 다양한 사회적, 생태적, 기술적 요소를 고려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발생하는 재난의 스노우볼 효과가 무시무시하다. 온도가 오르면 빙하가 녹고, 빙하가 녹으면 탄소가 배출돼서 온도가 더 오르고, 산불이 나서 나무가 타고 탄소가 배출되고, 나무가 타면 탄소 격리가 줄어들어 넷제로에서 더 멀어진다.

게임 디자인에서 고민한 지점도 보인다. 핵 기술도 탈탄소 대안으로 등장하는데 규제를 필요로 하는 등의 제약이 따라서 소형 모듈 원전이 아니면 실질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지구공학 프로젝트 카드는 사용하면 주사위를 던져 확률적으로 효과를 적용하고(운이 나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지정학적 위기가 발생하면 플레이어간 협력이 저해된다.

게임 외적인 특징으로는 지속가능성 컨설턴트가 참여했고, 구성물에 플라스틱과 섬유 소재 없이 FSC 인증을 받은 종이와 목재만을 사용했다. 게임 카드와 토큰, 주사위뿐 아니라 구성물 보관함도 종이로 만들었고, 그 흔한 비닐 조각 하나 없이 게임 박스도 종이 완충재로 싸여 왔다.

게임의 모든 프로젝트 카드와 위기 카드에는 QR 코드가 있어 카드 내용에 대한 설명과 ‘더 알아보기’, ‘행동하기’ 등 추가 정보가 담긴 페이지로 연결된다. 이 설명이 대체로 굉장히 충실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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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 위기’ 카드 – QR 코드를 찍으면 설명을 읽을 수 있다

 

게임이 쉬운 것은 어쩌면 의도된 게 아닐까?

모든 국가들이 각자의 잇속 없이 기후위기 대웅이라는 단일 목표를 위해 협력한다는 전제는 다소 비현실적인 면이 있다. 더 어려운 게임을 위한 위한 챌린지 카드를 사용하면 각자 개인 목표가 생겨 이런 단점이 보완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원래 규칙에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아쉬운 점 중 하나는 몇 번 해보니 게임이 너무 쉽다는 것이다. 처음 두어 판은 어렵다고 느꼈는데 한번 ‘감’을 잡고 나니 속전속결로 1.4~1.5˚C 정도에서 이미 넷제로가 달성됐다. 기후위기를 너무 낙관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닌가 느낌이 들 정도다.

사실 표지에서부터 낙관적인 분위기가 물씬 난다. 어쩌면 이 점을 의도한 것이리라. 심리학은 사람들에게 공포보다는 희망을 줄 때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결과를 일관적으로 보여준다. 본래 게임의 가제는 ‘기후위기(Climate Crisis)’였다. ‘데이브레이크(Daybreak, 새벽)’은 기후위기의 어두운 현실과 개발자들이 전하고자 하는 밝은 희망을 함께 담은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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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낙관적인 분위기의 게임 박스 이미지

 

기후위기는 전쟁을 불러온다. 그리고…?

게임 외적으로 아쉬운 점도 있다. 위기 카드 ‘지정학적 위기’의 QR 코드를 찍으면 나오는 설명에 기후위기가 무력 분쟁의 원인이라는 내용은 있지만, 역으로 무력 분쟁이 기후위기를 심화한다는 내용이 없고, 해당 페이지에 ‘행동하기’ 항목이 빠졌다. 전쟁을 기후위기의 원인으로 인식했다면 해결책으로 평화운동을 제시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게임사에 연락을 했다.

연락을 드린 것은 ‘지정학적 위기’ 카드에 대한 피드백을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이 카드가 웹페이지에서 ‘행동하기’ 섹션이 없는 유일한 위기 카드이며, 설명에 중요한 사실이 누락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설명은 기후 위기가 전쟁과 무력 분쟁의 원인이라는 점을 올바르게 강조하고 있지만, 전쟁과 무력 분쟁이 기후 위기에 기여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소위 평화 시기에도 군사 기지, 무기 회사 및 기타 군사 조직은 주로 화석 연료를 사용하며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미국 국방부는 2020년에 5,20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제적 책임을 위한 과학자(SGR)는 전 세계 군대의 탄소 발자국을 전체의 5.5%로 추정합니다. 이는 국가 기준으로 중국, 미국, 인도에 이어 세계 4위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전쟁 시기에는 배출량이 더욱 증가합니다. 우크라이나 환경부와 현지 기후 단체인 에코디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2022년 2월부터 1년 동안 약 1억 2,000만 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6,000만 톤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한 것으로 추정하는 보고서가 발표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전쟁과 군사 부문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군의 온실가스 배출은 전 세계적인 기후 행동 노력에서 간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5년 파리협정 프레임워크는 군대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를 의무가 아닌 자발적 선택사항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각국 정부가 군대 및 무기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투명하게 보고하고 감축할 것을 촉구하는 ‘행동하기’ 섹션을 웹페이지에 추가할 것을 제안합니다. 추천 링크는 국제적 책임을 위한 과학자(SGR)분쟁 및 환경 관측소(CEOBS) 등입니다. 제 제안을 고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내용을 보드게임긱 커뮤니티에도 올렸는데 제법 호응이 좋았다. 아쉽게도 게임사에서는 검토해보겠다는 말 이후로 아직 연락이 없다.

 

종합하자면, 〈데이브레이크〉는 게임 난이도나 밸런스 면에서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전 지구적 사회 문제를 잘 그려낸 게임으로 그 해결책에 사회운동도 포함시켰다는 면에서 매우 인상 깊고, 게임성도 훌륭하다. 게임의 무게(접근성)는 보드게임을 많이 즐겨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메커니즘이 다소 낯설 수 있지만, 그리 무겁지는 않아 입문용으로도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높이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