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X 8 (평화활동가)
무기박람회 DX KOREA 2022 저항행동 중 하나로 진행된 전시장 내 퍼포먼스에 참여했다가 업무방해죄로 기소되어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DX 8인의 항소심 결심공판이 지난 9월 2일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열렸습니다. 선고기일은 2024년 10월 10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시작된 이후 전쟁은 3년째에 접어들었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역시 지난 10월 이후 수개월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이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는 판사님께서도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은 수많은 생이 연결된 고유한 우주라고들 말합니다. 지금의 전쟁은 얼마나 많은 우주를 앗아가고 있나요. 우리가 잃은 수십만의 우주를 생각하면, 가슴 한 켠이 저릿해집니다.
그 반대편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보면,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굴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전쟁이 나서 신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K-방산, 한국산 무기가 잘 팔려서 전례 없는 호조를 겪고 있다는 보도를 볼 때면 말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한 해, 한국의 무기산업은 전년도보다 2배 이상의 수출 실적을 냈습니다.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많은 나라들이 더욱 무장을 하고, 우크라이나로의 무기 지원 역시 많아진 영향입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대량 학살이 있었던 2014년 이후 한국은 10년 동안 한화로 약 710억 원어치의 무기를 팔았고, 작년 10월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이 시작된 이후에도 약 17억 6천만 원어치 이상의 무기를 이스라엘에 수출했습니다. 이렇게 팔린 무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고 있는 제노사이드에 쓰이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한국의 모 언론은 이를 두고 한국의 방산주가 “자녀에게 물려줘야 할 주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쟁으로 치솟은 한국의 무기회사 주식의 수익률이 앞으로도 성장세를 보일 거란 것이지요. AI 같은 한국의 첨단기술이 세계 무기시장에서 경쟁력이 되고 있다며 상기된 분위기 입니다. 전쟁이 나서 돈을 번다고 기뻐하는 집단이 있는 세상에서, 전쟁이 과연 그칠 수 있을까요? 저희는 그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으로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는 집단들이 모여 비즈니스를 행하는 곳이 바로 무기박람회입니다.
저희가 탱크 위에 올라가서 악기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구호를 외쳤던 DX KOREA 2022에는 총 40개국에서 350개의 무기회사가 참여했고, 27개국에서 37개 대표단이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중 ‘VIP’로 초청된 14개 대표단이 전쟁이나 무력 분쟁에 직접 관련된 국가이고, 9개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국가입니다. DX KOREA 2022에 참여한 무기기업들은 전쟁의 여파를 고스란히 겪고 있는 동유럽과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큰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한국산 무기는 태국, 필리핀과 같이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며 폭력적으로 탄압하고 있는 나라들로부터도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세계 무기 수출 9위국이라는 순위는 무엇을 뜻하나요? 예멘, 웨스트파푸아, 필리핀, 미얀마 등 분쟁과 탄압 현장에서 한국산 무기가 쓰이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희가 속한 사회에서 만들어지고 팔려간 무기들이 제 이웃들을 겨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과 국가가 나서서 K-방산의 호조를 축하할 때, 그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말해지지 않습니다. 무기박람회에 가서 비폭력 시위를 펼친 것은 이러한 실상을 알리고, 더 많은 시민들에게 무기파는 나라의 시민으로서 해야할 책임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탱크에 올라가는 시위를 하기 전에도 저희는 이미 여러 차례 이를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DX KOREA에 분쟁지역과 독재국가의 VIP를 초대하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고, 무기박람회의 어두운 이면을 알리려 다방면으로 노력해왔습니다. DX KOREA 행사장 인근의 시민들에게 팜플렛을 건네거나, 1인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DX KOREA에서는 아무런 답변을 받을 수 없었고, 언론 역시 저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무기박람회라는 게 있는지도 모릅니다. K-방산의 흥행을 기뻐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정부의 방산수출 진흥정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저희의 목소리는 좀처럼 전달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사람들이 더 잘 듣게 하고자 무기박람회에서 탱크 위에 올라가 악기를 연주하고 피켓을 들었던 것입니다. 저희는 이 액션을 기획할 때부터 우리의 액션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고자 했고,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비롯해 행사장의 그 누구도 다치거나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계획을 짜고 실행했습니다. 실제로 저희가 탱크 위에서 비폭력 퍼포먼스를 진행한 5분 가량의 시간 동안 아무도 다치거나 피해를 본 사람이 없고, 퍼포먼스 이후에는 보안요원과 경찰의 안내에 따랐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목적은 저희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지,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퍼포먼스를 통해 무기박람회에서 팔리는 무기가 어디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다치고 죽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지를 알리고, 무기거래가 우리 모두를 군비경쟁의 악순환 속에 처하게 만든다는 것을 말하고자 이 비폭력 퍼포먼스를 실행했습니다. 그래서 이 행동은 저희의 민주적 권리와 표현의 자유로 보장되어야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희가 이런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우리가 사는 사회의 민주주의가 강화되고, 국가에 대한 시민의 민주적 감시 및 통제권이 확립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의 퍼포먼스 이후, 그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시민들이 무기박람회와 K-방산의 실상에 대해 알고 관심을 표해주고 있습니다. 저희의 재판 소식을 들은 수백 명의 시민 분들이 한국산 무기 수출의 비윤리성을 비판하며, 저희의 무죄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작년에 있었던 ADEX, 또 다른 무기박람회 저항행동은 이전에 비해 2배나 많은 분들이 ADEX 중단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를 해주셨고요. 주류 언론 역시 저희의 활동을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국일보는 지난 10월 17일 처음으로 무기박람회 저항행동을 보도했는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인명 살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열리는 무기 전시회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며 무기박람회와 K-방산의 이면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견을 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에는 한국 정부에 이스라엘 무기 수출 중단을 촉구하는 서명에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을 해주셨습니다. 애초 목표했던 5천 명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시민들이 참여해주신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저희의 퍼포먼스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무기박람회와 한국산 무기 수출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는 행위, 그리고 그게 더욱 잘 들리게 하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사례들이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돈을 버는 산업에 저항하는 저희의 목소리는 표현과 양심의 자유로서 보호되어야 합니다. 평화를 말하는 저희 여덟 명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민들의 목소리가 위축되지 않도록, 옳은 판단을 내려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