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욱(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활동가)

 

김엘림 님의 석사논문 「6·25 전쟁기 여성의 참전과 그들의 전쟁 경험: 페미니스트 안보연구의 접근」(이하 논문)이 내세우는 연구 목표는 세 가지다. 첫째, 6.25전쟁기 여성의 참전 사실을 역사화하기, 둘째, 참전 여군 ‘임동순’과 ‘이복순’이 경험했던 6.25전쟁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에 답하기. 셋째, 이들의 경험을 어떻게 읽고 들을 것인지에 답하기. 개인적으로 내가 일하는 곳에선 한국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나는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 논문을 ‘여군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읽었다.

 

여군의 역사적 경험

과거사는 언제나 현재사다.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전쟁과 군대 관련해선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해방 이후 미군정에 의해 일본군 출신 장교들이 요직을 꿰찼고, 제주4.3과 여순사건,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국군은 내부 숙청과 자국민 학살로 그 정체성을 확립했다. 오랜 군사 독재는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를 우선시해 온 한국군에겐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지난 12.3 계엄만 봐도 그렇다. 한국군은 그 자신이 자라났던 토양을 완전히 뒤집어엎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여군은 어땠나. 논문의 3장 ‘6.25 전쟁기 한국 육군의 여군’은 여군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여성’-군인 대 여성-’군인’이라는 탁월한 개념쌍을 통해 그려낸다. 언제나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받는다.

남군은 당시 총만 들 수 있어도 징집했지만, 여군은 당시로는 극소수였던 고등교육을 이슈한 엘리트들만 입대가 가능했다. 그럼에도 여군 모집의 열기는 뜨거웠다. 모집을 위한 방편으로 여군은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내걸었지만, 입대 여성들은 ‘여자니까’ 따위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자진해서 남군과 동일한 강도의 훈련을 받았고, 더 나아가 전선으로 배치해달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도부는 1950년 말 중국군 참전으로 전황이 악화되자 여군 역시 전방으로 배치해버린다. 전투에서의 첫 여군 전사자가 발생하자 갑자기 남자들은 ‘연약한 어린 소녀’, ‘꽃다운 2.8 청춘의 처녀’를 전방에까지 배치해 죽게 만들어야 했냐며 죄책감과 불편함 따위를 호소했다. 여군은 다시 후방으로 밀려났다.

결국 여군의 업무는 ‘여성의 일’인 행정 업무와 각종 당번(차, 청소, 전화)에 국한되었다. 그러다 ‘여군 무용론’이 제기되었다. 전황도 안 좋고 예산도 빠듯한데 여군에게 쓸 돈이 어디 있냐며 남군에게 집중하자는 주장이었다. 여군이 ‘군기를 문란’하게 한다라는 익숙한 문구 역시 등장했다. 여군에게는 결혼과 출산도 금지되었다. 일이든 가정이든 하나만 택하라는 뜻이었다. 목숨을 걸고 입대한 여성에게조차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은 가정으로 규정되었다. 이 모든 대상화와 차별은 여군 활용에 대해 별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싶)지 않았던 지도부의 무능력과 무심함,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군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때문이었다. 여군의 이름이 떠받들어질 때는 여군 자체의 공적 때문이 아니라 ‘비겁한 남성’을 동원하고 ‘허영 여성’을 반성하게 하는, ‘여자도 하는데!’ 따위의 상징으로 활용될 때였다. 여군의 이미지는 오로지 전쟁 시기 국민 총동원을 위해서만 착취되었던 것이다.

전방에서도 후방에서도 여군은 남군에게 동료로, 전우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여군에게 요구되는 대부분의 요구사항은 군인이 아닌 ‘여성’(‘여’군)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이와 같은 남성중심의 구도에서 여군의 자기증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7월 있었던 군복무 부적응과 관련한 논문 토크에서 여군으로 20년 넘게 복무하다 전역하신 전미선 님의 발언이 생각났다. 군 생활 동안 스스로를 계속 ‘부적응자’였다 생각하셨다는 말이었다. 매일 출근길 위병소를 거칠 때마다 긴장을 하고, 계속 겉도는 것 같았다는 감각. 전미선 님이 느꼈던 이 감각은 당연히 개인이 아닌 집단의 경험이자 역사적 경험이었다.

 

전쟁은 단일하지 않다

논문이 여군 차별의 역사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여군들의 전쟁 경험을 통해 적극적인 주체로 나섰던 모습을 보여준다. 놀랍게도 이 논문은 역사학 논문이 아니라 정치외교학 논문이다. 일하면서 주로 정치외교학 전공자들이 쓰는 안보정세 관련 글을 많이 접하게 된다. 대부분의 글은 국가 등 다소 거대한 주체를 행위자로 상정한다. 외교가 국가 간에 벌어지는 일을 뜻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하지만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고공 정치’를 다루는 내용에서 일상에 발 붙이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상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글을 읽다가도 ‘그래서 뭘 할 수 있지?’ 되묻게 된다.

논문이 기반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국제정치학 이론은 남성이 뭔가 큰 일을 한다며 ‘여자가 어딜!’하고 떠벌리는 ‘고공’에서의 안보 논의를 “일상의 평범한 현실로 끌어내리고자”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은 국제정치학 속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28쪽) 국제정치학에서의 젠더 관점 도입은 전쟁과 군대를 말할 때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남성중심적 통념(보호하는 자 / 보호 받는 자)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구도의 재생산은 여성의 입을 막고 가부장 남성의 우위를 유지시킨다. 이와 같이 전쟁을 말할 때 여성에게 강요된 침묵을 다루는 이론이 논문에서 소개하는 ‘안보화 이론’이다.

‘안보화’란 안보라는 지위가 실제 물질적 조건에 기반하기보다는 ‘안보’에 대해 사람들이 말을 하나둘씩 얹는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말을 얹을 기회가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는 이들은 안보화에서 배제된다. 이것이 바로 ‘침묵 문제’다. 이는 단순히 ‘침묵’을 넘어 안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가 발언권을 박탈 당한 이들을 멋대로 대리해 말하는 ‘대리 안보화’의 문제 역시 동반한다. 이중의 침묵이 일어나는 것이다.

논문은 이와 같은 이론에 기반해 ‘여군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과업을 수행해낸다. 논문은 여러 공적 자료나 언론보도 등을 통해 드러나지 않았던 전쟁의 이야기를 임동순, 이복순 두 분의 구술을 통해 밝힌다. 또한 ‘선한’ 의도로 이들의 이야기를 알리고자 했으나 정작 당사자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가려 버리는 ‘대리 안보화’의 위험 역시 드러낸다.

단 하나의 완전한 기억이란 허구다. 기억은 경합하며, 경합은 권력관계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 특정 기억에만 발언권이 주어지고, 그 발언은 권력의 의도대로 편집된다. 물론 모든 기록에는 기록자의 의도가 반영되며 편집을 거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편집할 것인가? 섣부른 ‘대리 안보화’의 위험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저자는 4장 ‘6·25 참전 여군의 전쟁 경험’에서 입말을 최대한 살려내 임동순, 이복순 두 분의 구술을 풀어낸다. 사소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ㅋㅋㅋ’, ‘ㅎㅎㅎㅎ’까지 등장하는 다소 충격적인(?) 구술은 ‘공적’ 언어가 담아내지 않은 일상을 보다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 이야기에는 그들이 실제로 겪어야 했던 젠더 위계, 한 명의 여성으로서 권력과 협상하는 과정,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고 당당하게 삶을 꾸려나갔던 태도가 오롯이 담겨 있다(만약 이 논문을 읽으려 하는데 236쪽이라는 분량에 엄두가 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구술을 다루는 4장부터 먼저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여군의 참전을 기억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여야 할까?

논문을 읽으며 가장 고민이 되었던 내용에 대한 질문을 나누면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여자배속장교와 여자의용군, 그리고 그밖의 수많은 여군과 비군인 참전 여성들까지 그들은 모두 남성과 ‘같이’ 전장에 있었다. 그들은 ‘보호 당하는’ 존재이기보다 ‘보호하는’ 주체이기를 택했고, 적극적으로 안보실천을 수행했다. 이제는 그들의 경험을 ‘역사’로 바꿀 시간이 되었다.”(126쪽)

‘보호하는’ 자를 언급하는 순간 ‘보호 당하는’ 자와의 위계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논문 역시 이와 같은 위계를 젠더 위계로 읽어내면서 여군이 겪어야 했던 불평등의 역사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여군이 ‘보호하는’ 주체이기를 선택했으며, 이를 역사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 역사화는 무엇이어야 할까? 보호/피보호의 위계를 재생산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보호하는’ 주체로서 여군의 안보 실천을 역사화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다 어쩌면 나 역시 보호/피보호라는 전쟁의 이분법을 내면화한 것이 아닐까 묻게 되었다. 임동순, 이복순 두 분의 구술에서도 때로 여군 보병과 간호장교의 위계를 나눈다거나, 자신은 다른 여군과 다르게 남군과 똑같이 전투를 치렀다는 자부심이 발견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발언만 똑 떼어내서 이분법의 재생산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 이야기는 구술 속 수많은 다른 이야기들의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 가령, 부상으로 전투에 참전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에 전우의 빨래를 대신 해줬다는 이야기, 많은 여군들이 전쟁 동안 한 번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거의 죽을 뻔할 정도로 부상을 입어 휴가를 나갔다가 전우들이 위험한 전장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픈 몸으로 다시 부대에 복귀했다는 이야기 등등.

그들의 이야기 속에 배치된 수많은 장면은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 한 사람의 삶을 담고 있다. 삶은 흐름이자 스펙트럼이다. 여기서 보호/피보호의 구분을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라 스펙트럼으로 읽어낼 가능성이 생겨난다. 류소연 님이 쓰신 지난 ‘평화를 읽다’ 블로그 글에서 발견한 다음 문구가 기억에 남았다. “전쟁이라는 상황 속 폭력 저항과 비폭력 저항 사이에서 망설이고 협상하며 제각기 저항의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개인들의 실천”. 폭력과 비폭력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여군의 전쟁에서도 보호/피보호의 명확해보이는 구별이 흐려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는 내가 읽어낸 하나의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구술자 두 분의 ‘안보화‘를 읽어내기 위해선 더 면밀한 읽기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여군의 참전을 기억한다는 것이 그저 기존의 안보 개념을 반복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간절한 내면의 요청이 있었다. 『함락된 도시의 여자: 1945년 봄의 기록』에서 익명의 저자는 “나는 전쟁과 여성에 관한 모든 것을 다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썼다. 논문을 읽으며 ‘전쟁과 여성에 관한 모든 것’은 그들이 겪었던 일상에서부터 배워나가야 함을 알게 되었다. 각자의 안보화는 ‘공적’인 전쟁만을 다루는 전통적인 ‘안보화’가 절대 담지 않으려 하는 이야기들로부터 쓰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