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분들께
남부교도소로 이감오고 나서 일주일 정도 출역도 안하고 방에 있는 동안 시간도 남기에, 보내주셨던 평화수감자의날 엽서들을 써봤습니다. 최기원 씨께 하나, 그리고 강정 투쟁으로 수감된 분들 중 이영찬 신부님께 하나.. 그런데 이영찬 신부님은 나가셔서 반송됐네요. (웃음) 그리고 최기원 씨께 온 답장에 저는 4월 30일에 들어왔으니, 올해 6월 28일에 못나갈 거라고 써있어서, 어라 그런가? 하고 있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2012년에, 그냥 5월에 들어올걸 그랬어요. 한달 더 사는거, 아주 무지 엄청 싫긴 한데 또 생각해보면 그냥저냥 살 것도 같습니다. 다만 직훈이 6월에 끝나니, 1달이 어중간하게 남으면 여러가지 번거로워지니까 그건 걱정이네요. 하기사 이렇게 미리 가석방 생각해가며 셈하다가, 가석방없이 10월에 만기출소할 수도 있는 일이겠죠? 그런 점에선 징역 1년 6월에 가석방과, 징역 1년2월, 1년3월은 많이 다른 겁니다. 길수가 저는 월말일에 들어와서 꽉꽉 받겠다고 했는데, 반대로 더 적게 받게 생겼군요. ㅎㅎ 웃픈 기분입니다.
남부교도소에 와서 독거방을 배정받았습니다. 저는 독거신청도 안했는데 배정을 해놓고 신청서 겸 각서를 걷어갔는데요. 담당 계장이 제가 ‘병역법’이라 배려해준 거라고 와서 얘길 하더군요. 전 혼거나 독거나 크게 상관않지만, 여하간 신경을 써준 거라니 “감사하다”는 말은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다른 소에 있는 여호와의증인인 병역거부자 분과 편지를 주고받고 있는데, 그분이 자긴 법무부에서 병역거부자들 분리수용하라는 공문이 와서 얼마 전에 독거로 옮겼다고 12월 말에 쓴 편지에 적으셨더라구요. 헐. 그 계장이 특별히 신경써주고 한게 아니라 법무부 공문이 있어서 그랬단건가. 괜한 생색내기였단 말인가. 제가 그 공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건 아니니 단정지을 순 없지만, 좀 웃긴 에피소드가 되어버렸습니다.
앞서, 제가 혼거나 독거나 그리 상관않는다고 했지요? 정말로 그리 큰 차이는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수감자우편물에 수록된 용석씨 글에 적힌 “좁힌 방에서 생활하면서 사람이 미워진다”라는 말을 저는 실감을 못하겠어요. 물론 길수가 인천구치소에서 처음 간 방에서 겪은 것 같은 일이 있으면 저도 힘들고 그 사람들이 밉고 그러겠지만… 사실 제게 직접 어떤 류의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저는 타인에게 꽤나 폭넓게 관용적인 성격인 것 같습니다. 사교성이 있고 그래서 그런게 아니라, 반대로, 타인에게 애초에 뭘 기대하지 않고 제 둘레에 선을 그어놓기 때문에 그런거지만요. 수용자들은 최대한 가능한 한 내 편으로. 직원들도 자주 보는 일선 직원들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게. 상급 직원들이나 교도소, 국가 행정과는 항상 거리를 두고. 이런 실용적인 방침을 세워두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사교성도 없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즐기지 않는 편인 제가 청소년운동을 하며 수십명, 수백명을 만나고 버티고 해나가기 위해 습득한 기술들을 새삼스레 자각하고 있습니다.
‘식품조리’공과는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따는 거라고 하는군요. 49가지 한식 요리들도 다 할줄 알아야 하고, 식품학, 영양학, 조리학 등의 필기시험도 붙어야 한다고 합니다. 요즘은 채썰기, 다지기, 깎기, 포뜨기 등 갖가지 칼질을 열심히 해보고 있습니다.
<인권오름>에 실어달라고 보낸 글이 어찌됐는진 모르겠는데, (글 질이 안좋으면 그냥 후원회에 전달해서 까페에만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혹시 올라오면 병역거부자 팀블로그에도 올려주심 감사해요) 여기에서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있는건 매일 아침마다 애국가 제창을 시킨다거나, 이불 정리에 ‘각’이 안잡혔다고 CRPT가 그걸로 징벌을 주겠다고 경고를 한다거나 뭐 그런 일들입니다. 애국가 제창은 훈련생들에게만 시키는 일로 보이는데, 시간없을땐 가끔 생략하지만 월~금엔 거의 매일아침 하는지라 그때마다 짜증이 솟는 걸 참고 있죠. 이럴땐, 그런걸 문제제기하기도 척박한 한국 사회의 분위기나 정세를 생각하며, 국가주의와 군사주의의 득세를 한탄하곤 합니다. “애국가 부르는게 뭐가 문제냐?” 내지는 애국가 제창, 국민의례를 거부하는 제가 비난받을 가능성이 크겠지요. 어떻게 할게 없을까. 투덜대는 중입니다, 열심히.
조선일보 기사를 보니, 혹시 그것 때문에 전화나 인터넷을 통한 공격을 받고 있으시진 않나 걱정이 드네요. 한편으론 조선일보 기사라도 읽고 한명이라도 더 병역거부 가이드북 소식을 알면 좋겠지만. 사무실에 도둑이 들었다니, 놀랐습니다. 다신 그런 일이 없어야 할텐데요. 강정 투쟁도, 다른 여러 운동들도, 좀 숨통이 트이면 좋겠습니다.(청소년 운동도요) 다음에 뵐 때까지 모두들 잘 지내시길.
추신. 훈련생은 종교집회도 따로, 금요일에 한다고 하네요. 종교집회 때라도 홍이 등 얼굴이나 볼까 했는데,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ㅠㅠ
추신2. 올해 14살이 되는 사촌동생 분이 자기도 저처럼 병역거부할거라 그래서 이모가 골치아픈듯 해요.(웃음) 나가서 만나봐야 하려나요?
2013. 1. 19.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