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슬램>

지금은 일요일 밤입니다. 내일 월요일부터 새로운 출역지가 정해졌어요. 바로 인쇄공장 출역입니다. 운 좋으면 M동지를 매일 볼 수 있는 다른 출역장에 갈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게도 공장출역이 되었네요. 어디건 남지 않으면 집체훈련에 관한 법에 따라 멀리 이송갈 수도 있었던 신세라, 여하간 여기 남게된 것이 다행인 오늘입니다.

부연할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접어두겠습니다. 지금 저는 공장 출역을 함으로써, 이를테면 징역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어요. 10년 병역거부사, 위대한 파이오니어가 된 기쁨에 감개가 무량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사소로 관용부 출역, 한식조리기능사 훈련으로 직업훈련생 출역, 그리고 이번 공장 출역으로, 교도소의 전 출역형태를 석권해보는 것입니다. 관용부-훈련생-공장!
뿐만 아니에요. 주거의 형태에 있어서도 11인이 함께 지내던 대방, 5~6인 중방, 3~4인 소방 생활도 모두 지나왔고, 심지어 징벌관구 징벌방도 다녀왔었습니다. (이건 분류기준이 다르려나요) 미결방, 기결방, 출역방은 물론이고 어릴때 유치장도 경험이 있으니, 가령 미결에서 바로 출역을 간다던가 하는 식으로 단순화되어가는 병역거부자의 징역 코스에서, 저는 이 시대 보기드문 정도를 걸어왔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거기에 구치소 생활, 교도소 생활도 섭렵!
뿐만 아니에요.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도소였던 영등포교도소(49년 개소)에서의 생활과, 가장 최신의 교도소인 지금의 서울남부교도소로 이어진 여정은 말마따나 세기를 잇는 경험!
오직 한스러운 오점이 있다면 독거수용과 병실수용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마는 그것은 프롤레타리아로서의 계급한계이기 때문으로 어찌할 수가 없네요… 친정집 기결대기방 동기인 병역거부자 친구 하나는 현재 간병출역 2인자 자리에 올라 무려 침대생활의 호사를 누리고 있다 하던데!!
이 교도소는 앞서 잠깐 언급했듯 최신의 시설입니다. 특히 치료(혈액투석, 심리치료 등)에 특화된 기획시설로 병동이야말로 최신 부르주아 시설의 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앞으로 얼마나 쟁쟁한 정치인, 재벌들이 이곳을 다녀갈런지… 벌써부터 각종 참관형태로 그분들은 미래의 홈 스윗 호움을 구경하고 가십니다. 그러나 저는 여하간 기본계급이므로 스위트룸격인 독거실이나 펜트하우스격인 병실은 구경못할거여요. 하여 저는 프롤레타리아트로서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것에 흡족해하고 있는 실정인 것입니다.
역시 프롤레타리아트라면 그 꽃은 공장출역이 아니겄어요? 남은 4~5개월 남짓 공장일을 하다보면 운좋게 독방도 얻어쓸지 모릅니다. 여하간 그랜드슬램! 그 정점의 공장출역을 앞두고 들뜬 오늘밤.

돌이켜보면 너무도 흥미로운 여정이었습니다. 속해지는 집단을 옮길 때마다 바뀌는 미묘한 사회적 지위의 변화랄까 문화의 변화는 무어라 설명을 하기 어렵네요.
가령 관용부는 직원들과의 교류가 굉장히 큽니다. 교정노동자의 조직 또한 거칠게 말하자면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있고, 관료주의의 현신들, 나름의 투쟁을 하다가 외부자적 존재로 버림받은 이,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방 안에 갇힌 존재가 아닌, 일정 철창 밖에서 돌아다니는 존재가 되고 -그래봐야 큰 담의 안이지만- 이 중간자적인 위치에서 어떤 때는 갇힌 이들의 대변자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감시하는자와 공감대를 교류하는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짧게나마 징벌,조사 수용되었을 때, 그 징벌사동의 분위기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에 구노회에서 후원받은 지젝의 책에 따르면, 전체주의 정권은 과도할 정도의 법을 공표하고 – 이법은 사실상 생활의 모든 행위를 유죄로 결정할 수 있을만큼 모호하고 범위가 넓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너희를 범법자로 잡아갈 수 있지만, 자애롭게 풀어주는거야. 그러니 너무 나서지는 마’라는 체제. 그 안에서 사람들은 ‘습관’을 만들고 정해서 나름의 관습법적인 -그러나 불법이기도 한- 생활양식을 만든다. 라고 합니다.
형집행법 107조, 말하자면 교도소 내의 헌법이자 형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조항에는 그와 같은 전체주의적 거대한 그물망이 들어있습니다.
가령 방과 방 사이에 신문이나 책을 교환하는 행위는 형집행법 107조 6항 그밖에 시설의 안전과 질서유지를 위하여 법무부령으로 정하는 규율을 위반하는 행위 -예문 중 15. 허가없이 물품을 반입, 제작, 소지, 변조, 교환 또는 주고받는 행위- 에 위반하는 행위일까요?

‘또박산다’는 표현이 있는데, 여러 의미로 쓰이지만 그중에 ‘법대로 산다’는 의미가 가장 크게 통용될거에요. 말그대로 그 어떤 형집행법 등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 그 어떤 전체주의적 협박에 거리낄 것 없이 산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또박사는 사람’, ‘또박이’는 상대하기 피곤한 사람의 대명사로 널리 쓰이는데, 이는 또박살이가 징역 내 사회생활 -습관- 그 일체를 부종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그들은 속옷이나 이불, 티셔츠, 양말, 수건 등을 주거나 받는 행위도 언제건 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노트의 겉면에 신문에서 찢은 사진을 붙이는 것도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습관이 되어있는 징역 내의 사회생활은 법적으로 불법, 징벌의 대상이 될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아니, 이미 불법입니다. 대화하는 것도? 물론 불법입니다. 징벌관구는 모든 임의적으로 허용되어있던 습관들이 일체 인정되지 않는, 순수한 법의 실현상태가 이루어지는 백색의 공간입니다. (여기에 갈 때, 모든 짐들은 기동대 -치안담당자들-의 사무실에서 최대로 꼼꼼한 검수를 통과해야만 하며, 사안에 따라 그들은 영치, 교부 전산목록과 대조하여 모든 ‘불법적 소지물’들을 솎아내는 멸균작업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백색의 공간은, 완벽한 전체주의, 이 교도소의 ‘헌법’의 맨얼굴이었습니다. 그것은 새근새근 잠든 애인의 맨얼굴처럼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었지요. 또 상기의 ‘습관’은 제가 나열했던 여정 속, 각 공간, 문화별로 무척 상이했습니다.

관용부에게 물건의 교환은 은밀한 것입니다. 관용부는 경계자적 위치로 인해, 전체주의가 폭정을 가할 때(가령 관내 사건, 사고가 발생하거나 조직폭력배 특별검거 직후 등) 그러니까 모든 습관들이 흔들리는 – 자애가 걷어지는 때 최우선의 타겟이 됩니다. 관용부는 일인 일인의 출역 직전에 그의 신분장(모든기록)을 소장이 검수한다는 것으로도 그들의 특수한 위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비해 공장수나 훈련생의 물건 교환은 훨씬 용이합니다. 훈련생보다 공장수쪽이 훨씬 더 용이하기도 하고, 이것은 또 구치소와 교도소 간에도 편차가 큽니다. 2급 시설인가 3급 시설인가에 따라서도 다르구요. 베개를 만들어 쓴다던가, 구치소 관용부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 교도소에서는 흔하다던가. 신문과 책을 교환해본다던가. 뿐만 아니라 대방과 소방의 문화도 다르고, 구성원에 따라서도 달라지지요. 같은 훈련생이라도 어떤 공과는 고학력자들이 생활하고, 어떤 공과는 상대적으로 재범 전과자가 많습니다. 이건 완연한 문화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여하간 그랜드슬램의 험난했던 여정을 겪어오면서 안정은 없었으나 배움은 넘쳐났기에 햄볶았어요. 쿠루리의 햄먹고싶어(하무 타베타이)라는 곡이 듣고 싶어지는 12월이네요. 쿠루리며 데미언라이스며 베이루트며 하필 징역있을 때 내한하네요.

6개월 사이에 또 어느새 가지가 뻗쳐, 그 연락망을 통해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인쇄공장에 질나쁜 사람들이 있다고 하기에 어쩐지 잠못이루고 불타오르는 밤입니다. 친한 형들도 최효종의 사마귀 유치원에서의 캐릭터를 패러디하며 “공장생활 어렵지 않아요~ 허리는 항상 40도로 하구요~ 반장에겐 늘 공손한 말투로 영치금 쐈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기만 하면 돼요~” 등의 코미디를 시연하고서 사요나라 바이바이 했는데, 그 메아리가 귓가에 쟁쟁하네요. 그러나 방년 25세, 일생에 가장 운이 좋은 해가 될 것이라던 사주풀이며 점술가들을 기억하며, 실제 그랜드 슬램까지 달성했던 아름다웠던 지난 날의 징역운을 생각해보면, 아직 2011년, 신묘년, 그랜드슬래머의 운은 끝나지 않았다, 외치며 마무리.

2011. 12. 18. 일요일.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안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