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있는 고마운 당신께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여기에 온 뒤에 계절도 몇 번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 내일이면 벌써 만 11개월입니다. 하루 하루는 참 길게 느껴지는데, 돌아보면 모든 것이 금방 지나온 것 같이 느껴집니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모두 보내고 나니, 여기 오기 전에 들었던 것과는 달리, 여름 징역이 겨울 징역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글에 쓰신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제한이 많은 징역에서 더위야 화장실에 뛰어 들어가 찬 물이라도 끼얹으면 좀 풀리지만, 추운 것은 좀처럼 풀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17년만에 내복도 입어보고, 덧버선까지 신고서 꽁꽁 싸맸지만 벽을 뚫고 들어오는 한기에는 벌벌 떨 뿐, 방법이 없더라구요. 어떤 이들은 발가락에 동상까지 걸려서 겨우 내내 고생을 했는데, 난방시설이 갖춰진 지금도 이정도인데, 예전에는 오죽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꽃들도 화사하게 피고, 초록 잎들도 무성한 5월인데 아직도 추운 것은 남아있습니다. 보일러가 꺼진 방에 이따금씩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도 춥게 만들지만, 신문과 뉴스를 타고 들려오는 담 너머의 소식들이 마음을 춥게 만들곤 합니다.
물론 반가운 소식, 즐겁고 궁금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얼마 전 들려온 빈라덴을 살해하고, 또 그 사실에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하는 이들에 대한 뉴스는 온 몸에 소름이 돋게 했습니다. 아무리 테러리스트의 수괴로 규정된 적이라 해도 사람의 죽음을 앞에 두고 그리도 기뻐하는 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들의 광기가 알카에다보다도 더 무섭게만 느껴졌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컴퓨터 게임으로 적군을 모두 죽이고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클리어한 뒤 즐거워하는 아이같았습니다. 이미 그들의 눈에서 사람은 사라졌던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으로서 스스로 존엄성을 가진 사람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서로를 노려보고, 사람으로서가 아닌, 적으로만 바라보며 주먹을 쥐고, 더 좋은 무기를 갖기 위해 경쟁을 하는 것은 결국 평화가 아닌 파멸을 가져올 것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다. 눈을 마주하고, 손을 잡고, 서로를 사람으로 바라볼 때 평화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지는 평화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도, 성소수자나 외국인에 대한 차별도 없는 평화입니다. 이윤과 서로에 대한 차이보다 서로 사랑임을 두고 관계를 맺어갈 평화에 차별은 없을테니까요. 저는 그렇게 사람이 사람으로서 함께 나누며 사는 것이 바로 평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처럼 앞으로 더 많은 이들과 꿈꾸고, 노력한다면 따사로운 5월의 햇살같은 평화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무난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평일엔 직장인 마냥 8시가 조금 넘어서 일을 하러 나가고, 5시가 조금 넘어서는 방으로 돌아와 이른 저녁식사를 합니다. 오후 6시까지 설거지를 마치고, 9시가 되면 대부분 잠이 든 가운데에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밤을 보냅니다. 11시쯤 되면 배가 고프기도 하지만, 뭘 시켜먹을 수도 없고 한밤중에 부스럭거리는 것도 눈치 볼 일이라 조용히 물을 마십니다. 한번은 1.5리터의 물을 한 병 다 마셔서 밤새 화장실에 오간 적도 있었는데, 2000년에 환활 가서 물먹기 게임을 했던 기억이 많이 났답니다. 한번 해보세요. 술보다 더 먹기 힘든 게 물이에요.
주말엔 이틀 모두 쉬기 때문에 방에서 하루 종일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TV도 조금 봅니다. 주말이 아니면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되도록 TV시청을 피하려고 노력 중인데, 최근에는 <나는 가수다>의 노래에 이끌려 노래까지 따라 부르면서(속으로!!) 보곤 합니다. 여기선 노래가 참 귀해요. 그래서 평일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들려주는 라디오방송(107.7MHz, SBS 이수경의 파워FM)에도 귀를 쫑끗 세우고서 설거지와 청소를 해요.
걱정 반, 기대(?) 반이던 감옥에서의 생활도 이제 1년 가까이 지내고 보니 별 것 아니구나 싶다가도,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이 계시기에 지금껏 잘 지내왔음을 다시 깨달으며 감사한 마음을 전해봅니다. 혼자였다면 몇 십배는 힘들었을 생활이 많은 분들의 관심과 응원이 있었기에 별 탈 없이 잘 이어져 왔습니다. 이제 곧 다가올 여름만 무사히 보내고 나면 시원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당신과 밖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은 여름도 시원히 여기며 보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항상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는 당신과 당신의 가정에 건강함과 즐거운 웃음이 항상 함께 하길 바라며, 오늘 인사는 이만 줄입니다.
2011년 5월 22일
남부교도소에서 영배 드림.
P.S 며칠 전에 영등포교도소에서 서울 남부교도소로 이름이 변경됐어요. 조만간 있을 이사 때문에 같이 바꾼거라는데, 짐싸고, 수갑에 포승줄까지 몸에 걸칠 생각하면 이사가는 것이 싫어 출소한 뒤에 가기를 바라다가도,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이와 쥐벼룩 등을 볼때면 신축건물이니 벌레가 없겠다 싶어 어서 이사를 갔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혹시 ‘이’나 ‘쥐벼룩’같은 벌레를 퇴치하는 민간요법(?) 같은 것 아시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