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에
안그래도 바쁘고 정신이 없을텐데, 편지를 써봤자 괜히 타이핑하고 공유하기 번거로울 것 같아서 편지를 안쓰려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방에 있는 최기원씨가 소식지를 보내주는 단체 하나하나에 모두 답장을 보내시는 걸 보고 저도 써야하나 생각이 들어서 편지를 씁니다. 음;
예, 5월 4일부터 최기원씨와 같은 방에 있습니다.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어찌 그리 되었네요. 최기원씨는 감옥생활에 대해 아는게 굉장히 많으셔서 이것저것 질문도 많이 하고 많은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최기원씨는 운동도 잘하시고 글씨도 잘쓰고 방안의 일도 잘하고 저보다 훨씬 성실하셔서 때론 열등감 같은 것도 느낍니다. ;_; 저는 바로 기결수로 들어왔기 때문에 벌써 분류심사 결과가 나와서 S2급이 됐습니다. 이 S가 ‘경비처우’를 뜻하는 것이더군요. 아마 늦어도 6월에는 이감될 것 같습니다.
감옥생활은 그냥 무던하게 지낼만한데, 가장 어려운 건 정보의 차단이려나요. 세상의 여러 정보들과 접하고, 또 제가 정보를 생산해서 남들에게 보내는, 그런 일련의 활동들이 대폭 제약을 받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되도록 발버둥쳐보려고 꾸준히 책을 읽고 꾸준히 글을 써서 편지에 끼워보내고 있습니다. 와서 읽은 책만 7권입니다. 그리고 대략적으로 썼던 병역거부소견서도, 좀더 많은 얘기들을 담아서 약간 길게 써서 편지에 넣어 내보냈습니다. 제 친구들이 과연 언제쯤 그걸 전산화해서 게시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주간지 칼럼이나 운동에 대한 여러 단상들을 적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워드프로세서가 있으면 참 좋을텐데, 없으니 고쳐쓸 때마다 한번씩 글을 새로 옮겨적어야 해서 참 귀찮습니다.
제가 이 편지를 쓰고 있을때, 활동가분들은 ‘세계병역거부자의날’ 자전거 행진을 하고 있겠네요. <전쟁없는세상>에서 자전거를 빌려 ‘스쿨어택’을 가던 날이 생각나기도 하고… 자전거 행진이 사고없이 잘, 그리고 하나라도 많은 이들에게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잘못을 알리는 성과와 함께 이루어지길 감옥 안에서 빌어봅니다. 보내주신 우편물 속에 제주 해군기지 유인물을 방의 다른 분들도 몇 읽으시고, 아주 잠깐 해군기지 얘기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소식지에 있는 주소를 보고 홍이와 길수에게도 편지를 보냈습니다. 인기가 많은 날맹에게는 보낼까 말까 좀 갈등 중입니다. ㅎㅎ
서울구치소를 병역거부자들이 적잖이 거쳐갔을텐데도 직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여호와의증인?”이랑, 그 다음에 이어지는 “강의석 걔 같은 건가” 입니다. 강의석씨 말고 다른 사람을 거론해주시면 좋을텐데 말이죠…
다들 안녕히 지내시고, 다음 소식지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012. 5. 12.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