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일종의 수형생활 반성문입니다.
저 자신에 대한 그리고 저 자신을 위한 반성문입니다.
저는 지금 ‘입실거부’라는 구치소 내의 조그마한 저항을 한 덕분에 조사실에 홀로 앉아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더러운 방을 청소하느라 진이 다 빠졌지만 정신과 마음만은 맑고 충만해서 펜을 잡았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왜 입실거부를 했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반성의 마음가짐으로 행하였는지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처음 제가 이 곳 남부구치소에서 수형생활을 시작할 때는 부푼 꿈을 가졌습니다. 수형자들 사이에 녹아들어가서 그들과 신뢰를 쌓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 곳 수형시설을 바꾸고자 했습니다. 혼자 잘난 척, 내가 다른 죄인들과는 다른 고귀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다른 재소자들에게 그런 평가를 받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대중 속에서 고립되면 죽은 혁명가(감성 터지는 분위기에서 쓰는 거라 이 단어 외에 어떤 단어도 마음에 들지 않기에)라는 저의 오래된 신념 때문이었고, 이 곳 구치소에 수감된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바로 그 ‘민중’들 이었기에 더더욱 저의 동료들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어, 깔짝깔짝 공부하면서 폼을 잡고 있는 저에게 ‘박 박사’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이것저것 챙겨주었던 한 많은 사장님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에 투표했습니다. 저는 공부의 한을 한문공부로 풀고 있던 그에게 한자능력검정시험 책을 선물했지요. 운동을 다른 방 사람들과 같이 했기에 제 주변의 사람들은 늘어만 갔습니다. 3개월 정도 그렇게 신뢰를 쌓고 바로 그 분들과 저의 경험을 토대로 구치소의 여러 환경들을 바꾸기 위한 작은 행동들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꼭 바꿔 달라’라고 지지하고 응원해주었지만 함께 나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재판과 가석방, 교도소 배정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작은 노력들이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고 재소자들에 대한 원망보다는 저의 모습이 부끄럽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재소자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매우 저다운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방의 권력을 우선적으로 잡고, 그 다음에는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권력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야 구치소가 저를 건드려도, 혹은 제가 문제제기를 했을 때 동참은 아니더라도 지지는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곳 감방에서 주류, 타인에게 존중을 받는 사람들은 매우 원초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돈 혹은 주먹. 저는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저는 후원금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 곳 구치소 직원들이 많은 배려와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돈이 없고 말 주변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눈을 감았습니다. 방장이 돼서 알량한 권력의 맛을 느끼며, 내가 방장인 이상 내가 운영하는 방은 민주적이고 평등한 방이 될 거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저는 저 자신을 속이고 있었습니다. 힘없는 재소자들은 눈치를 보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말을 해도 잘 받아 주지 않았죠.
그리고 며칠 전 구치소 측에서 일방적으로 방을 깨고 재소자들, 특히 3개월 이상 투숙한 이들을 딴 방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오래 있는 사람들이 텃새를 부린다는 이유였죠. 저 역시 그 대상이었고, 저는 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정직하게 마주했습니다. 방장으로서의 권력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짐승처럼 재소자들을 마음대로 옮겨버리는 교정당국에 대한 분노보다 컸습니다.
그것을 느꼈을 때 ‘지난 5개월을 뭔가 잘못 살아 왔구나’ 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입방거부를 결심하기까지 꼬박 하루 동안 번뇌하며 사색했습니다. 제가 옮겨간 방은 저를 포함해 4명의 사람이 새로 구성되는 방으로 저의 지위와 입김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방이었습니다. 수십억의 재산을 가진 회장님과 30만원을 훔쳐서 들어온 30대, 그리고 덩치 좋은 30대가 공존하는 방이었습니다. 방의 모습은 당연히 방 사람들에게 온갖 먹을 것을 사주는 회장님과 그것을 대가로 그를 대우해주는 덩치,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시키는 일을 하는 말 주변 없는 절도범. 그리고 회장님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제가 있었습니다. 조용히 내가 하는 공부를 하면서 방을 이 균형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과 도대체 내가 병역거부를 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양심의 소리 사이에서 저는 결국 또 하나의 군대 내무반인 이 방을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임, 고충처리반, 계장의 무수한 회유와 설득이 있었지만, 바로 그 대접, 허울뿐인 영접에 마음을 놓고 편안하게 살아온 지난 저의 모습을 부끄럽게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방거부는 병역거부처럼 소극적인 저항입니다. 그저 내 눈앞에서만 부조리들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것에 안주하지 않는 것, 내가 앉은 편안한 방석을 가시방석으로 느끼는 것이 ‘거부’의 참 맛인 것 같습니다. 이 더럽고 치사하고 좁아터진 이 조사방에 들어온 순간, 병역거부를 하고 이 곳 구치소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처럼, 머릿속의 모든 복잡하고 지저분한 생각이 말끔하게 정리되었고, 후련하고 가벼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곳에서 저는 진정한 자유를 맛보았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를 시청할 수 없다는 것을 빼고는 말입니다. 조사방에 있다가 징계위원회가 열리면 저의 징계수위가 정해질 것 같습니다. 징벌방은 뭐 힘들고 지치겠지만 가슴과 머리 아픈 것 만한 고통은 세상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의 징역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그리고 지난 5개월 동안 읽었던 어떤 책들보다 오늘의 이 번뇌와 결단이 저에게는 더 큰 깨달음을 준 것 같습니다. 바깥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을(외부의 적이든 내면의 적이든) 모든 사람들에게 저의 이 반성문이 작은 위로가 되길 빌어봅니다.
2014. 9. 25
부끄러운 사람 박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