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전의 날맹 편지를 다시 읽다
새해를 맞이하여 관물대를 정리하기로 했다. <모두들 잘 버리고 있습니까>라는 주간지 기사 제목에, 구석에 쌓아놓은 전쟁없는세상 소식지(수감자우편물)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한 번씩 다시 보면서, 성열이(작업 동료)에게 보여줄 것과 이면지로 쓸 것으로 나누는 중이다. 수감자 편지를 또 읽어본다. 날맹의 편지가 눈에 띈다. 작년 4월, 내가 지금 있는 이 자치사동으로 날맹이 처음 방을 옮겼다. 그 기록을 읽는 것이 신기하다. 처음 불침번을 설 때 교도관처럼 남의 방을 들여다보려니 불편했던 마음(알고보니 대부분 방을 쳐다보지 않고, 나도 그렇게 한다)과 문이 열려있는 시간에 내 방문 앞에서 말을 거는 것을 싫어했던 마음(이것도 적응되더라), 그리고 이 독거실을 서울의 월세집과 비교하는 마음이 같았다.(2년 정도 살았던 13만원짜리, 16만원짜리 고시원을 생각했다)
며칠 전의 일이다. 저녁 먹고 졸려서 관복 상의를 뒤집어쓰고 잠을 잤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순찰돌던 교도관이 “16방, 16방. 괜찮아요?” 하며 문을 열었다. “어디 아픈거 아니죠?” 기분 나쁘지 않은 염려였다. 그런데 교도관을 보내고 난 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얼결에 “죄송합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발화는 준비된 것이 아니었다. 능글맞게 상황을 넘기려고 전술적으로 쓴 말이 아니었다,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취침시간 외에 취침을 한 것이므로 규칙 위반이지만 큰 잘못은 아닌데, 교도관이 봤다는 것에 화들짝 놀라 필요 이상으로 자세를 낮춘 내 생존비법이 맘에 들지 않았다. 이런건 혼자 끙끙 앓으면 안된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공감받으면 된다. 근데 일어나서 옷을 입고 나가는게 귀찮다. 그래서 엎드린 채로, 바닥에 얼굴을 댄 채로, 말을하고, 웃었다. 으음…. 일어나서 옷을 입고 성열이에게 가서 신세 타령을 했다. “너무 마음쓰지 마요. 나도 CRPT 올때 (무슨소리 안들으려고) 얼른 화장실 들어가는 것, 얼마나 비굴한데.” 그래, 그랬지. 크크크, 내가 비굴하고 비겁한게 아니라, 우리가 약한 위치에 있는 것 뿐이지. 그날 밤은 잠드는게 쉽지 않았다.
날맹도 “죄송합니다”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다. 권력관계가 명확한 이곳에서 자신이 죄송하다고 하는 것은 그 권력관계를 승인해주는 것이라고, ‘상대의 인간성을 믿으며 동등한 인격적 만남을 좇고자 했던’ 자신이 출소 후에 이 감옥 경험에 갇히지 않고 여전히 그럴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나와 상대방의 권력이 상황에 따라 더 세졌다 약해졌다 변화하는 것이라면, 나의 사과는 상대방의 권력에 눌린 것이 아니라 내 잘못으로 상대방이 힘든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절차일 터이다. (혹은 단지 표현하는 것일 터이다) 그렇지 않고 감옥처럼 권력관계가 변화하지 않는 곳에서 약자의 말과 행동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때로는 비굴함으로, 때로는 거짓말로, 따로는 대듬으로 나타난다. 형태는 달라도 모두 자신을 보존하려는 행동이다. 이런 권력 관계 속에서는 상대방을 어떤 권력 관계 속에 위치짓는가가 그 가 누구인가보다 먼저다. 이 방식에 익숙해지다가는 출소 후 ‘보통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지금은 우스운 경험이 있다. 스물 다섯의 남학생과의 중학 생활을 마친 나는 고등학교 1학년 3월에 잔뜩 움츠려 있었다. 경계하며 서른 세 명의 반 동급생들을 분류하고 있었다. 누가 동기를 괴롭히는 강자인지, 누가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는 약자인지를 말이다. 세상에는 그렇게 두 종류의 사람만 있었고 강자는 나쁜 놈일 뿐이었다. 아, 나같은 방관자도 있었지.(아직도 이 얘기는 우울하네 -_-;;) 한 달이 지나서야 친구의 말로, 내가 찍은 아이가 단지 장난이 굳세었음을 알게 되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작동 방식이 여러모로 달랐다. 장난이 심했던 갈비탕집 아들은 성공회대에서 학생운동을 했는데, 지금은 뭐하고 있을지.
이런 경험도 있고 하니, 출소 후의 관계에 대한 날맹의 고민이 기우로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질책해줄 이, 감싸줄 이가 나에게도 날맹에게도 있을테니까.
날맹이 독거실에서 ‘브로콜리 너마저’의 <잔인한 4월>을 듣고있을 때, 나도 인천에서 들으며 위안을 받았다. 이제는 <유자차>를 듣고 싶다. 지난 시간은 켜켜이 묻고, 어서 봄날으로 가자.
2013. 2. 11. 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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