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래된 정원’은 내게 오래 기억이 남는다. 사실 난 책이 아닌 임상수가 감독한 영화 ‘오래된 정원’을 먼저 보았다. 영화는 꽤 마음에 들었던 까닭에 책을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늘 있었다. 그럼에도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여기와서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아마도 기억에 많이 남는 이유는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된 때에  감옥에서 힘들어 하고 있는 이를 보았기 때문일 거다. 그가 사는 감옥과 내가 사는 감옥을 비교하고 그곳에서 그의 감정과 내 감정을 비교하고.

그 가운데 특히 인상깊은 건 ‘유폐’라는 단어, 현수가 거울을 보는 장면, 그리고 그가 밖에 나와서도 달력에 다음날을 지우는 장면이었다.

2. 어젠 이 곳에 조금은 적응한 걸까?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는데 요새는 하루에 별 일이 없이 지나가는 날들이 늘어간다. 가끔은 일상이 지루할 만큼 변화없이 무난히 시간이 지나간다. 다행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달력을 볼 때 내 머리 속이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이미 주말은 지워져 있고 마치 월요일이 된 것만 같다. 더 가관인 건 월요일엔 이미 한 주가 지났다는 식이라는 거다. 그래도 현우는 하루를 지웠는데 난 참 염치도 없다. 여기서 사는 게 이제는 현실이고 현재라고 생각하다가도 늘 이런 식이다. 들어와서는 그냥 꿈 같고 시간이 조금 지나선 과거만 계속 떠올리더니 요새는 나가서 뭐할지만 떠올린다. 이 곳에 있는 게 그리도 싫은 지 늘 과거, 꿈, 미래에서 그렇게 둥둥 떠다닌다. 지금도 15일을 본다. 가관이다.

3. 김근태가 죽었다. 여기선 그를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안다고 해도 이름뿐인 사람도 많았다. 사실 따지면 나도 그를 잘 알지는 않는다.

내가 못 본 신문에선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한겨레밖에 1면에 실리지 않은 기사를 보고 참 오랜만에 조금 울었다.

내가 그를 안 건 2002년 민주당 경선 때다. 고3이었던 당시에 공부하기 싫어서 곧잘 신문을 정독했었다. 노무현 돌풍 속에 뜬금없이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처참한 지지율을 손에 든 그가 신기했고 눈에 띄었다. 그 후에 그가 고문의 피해자인 걸 알게 되고 늘 유력주자로 꼽히면서 비주류로 남는 그가 안쓰러웠던 거 같다.

아마 이번에 그렇게 눈물이 난 건 그 안쓰러움과 고문으로 인한 죽음이라는 분노였으리라. 게다가 이 곳에 있는 내 상황이 더 감정이입을 쉽게 하도록 했을 거다.

생각해보면 그래도 그는 나은 거라는 게 더 문제다. 수많은 고문 피해자가 주목받지 못하거나 사라졌을 테니까. 그리고 그 피해자들은 여전히 그늘에서 피해자로 남아 있고 그 고문을 하라고 지시한 전두환이나 노태우 같은 사람은 여전히 잘 산다는 거다. 분노가 인다. 그리고 아직 이 모양인 세상에 무엇을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속상하다. 70~80년대 사람들이 가졌을 분노와 그과 함께 생겼을 조바심이 조금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물론, 그들과 난 다른 길을 꿈꾸고 갈 거지만 말이다.

4. 홍이에게서 편지가 왔다. 주소나 이런저런 문제로 나보다 그가 먼저 편지를 주어서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어쨌든. 그의 서신에서 그가 나와 비슷한 거 같다는 말에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가 생각났다.

적대적인 병역거부의 질문들, 군사주의로 가득한 분위기, 매매춘을 취향운운하는 대화, 창살없이는 볼 수 없는 하늘 등. 지금은 그래도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 때는 솔직히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공간과 시간에 그가 있을 것을 생각하니 짜증이 인다. 그리고 그런 시공간에 더 많은 사람들이 가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민다. 이런 짓은 당장 멈춰져야 한다. 도대체 사람을 해하지 않겠다는 것이 왜 범죄인가?

물론 알고 있다. 당장은 안될 거라는 걸. 하지만 사람들이 다치고 있는 것이 느껴질 때마다 그렇게 조바심이 난다. 이렇게 난 늘 조바심으로 산다.

나무 심는 사람이 되는 건 오래 걸릴 모양이다.

1.8.
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