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8일 수요일 오전 11시 15분, 서울서부지방법원 304호에서 열린 재판에서 병역거부자 김동현이 진술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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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곳, 법정에 서있습니다. 지나온 생의 어떤 유의미한 지점들, 그 정교하게 엉망이었던 순간들 속에서 곤두세웠던 촉각과는 차원이 다른 명징한 감각으로, 여기에 두 발을 딛고 서있습니다.

국가는 저에게 왜 병역거부를 하냐고 묻습니다. 국가가 저를 군대로 보내려면, 그곳에서 살인을 가르치고 유사시에 살인을 명령하려면, 제가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오히려 왜 살인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군대와 전쟁과 살인의 정당성에 대한 논증부담을 저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군대의 수단이자 목적은 전쟁입니다. 전쟁에서는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누군가 죽습니다. 그 추악하고 잔인한 곳으로 사람을 들이려면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한 마땅한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군대의 필요성에 대한 설명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정당성에 대한 설명을 원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살인이 정당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전쟁에서의 살인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백 걸음 양보해서 국가의 말처럼 설사 살인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손 치더라도 살인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필요성이 정당성을 우선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공의의 법정에서는 필요에 의해 생긴 범죄라 하더라도 정당하지 않다면 단죄를 내립니다. 예컨대 돈이 필요해서 도둑질한 사람을 처벌할 때 국가는 그 사람의 필요성보다는 정당성을 고려합니다. 지나가는 여성을 강간한 남성을 처벌할 때도 마찬가지로 국가는 그 사람의 필요성보다는 정당성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독 군대에 대한 문제만은 늘 정당성보다 필요성을 더 중요한 가치로 평가합니다. 군대의 본질이 아프리카 초원을 뛰어다니는 동물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하는 것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아프리카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대한민국을 말합니다. 2013년 9월 27일, 유엔인권이사회의 24번째 정기회의에서 채택한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결의안은 전 세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된 인원의 약 93%가 있는 대한민국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할 수 있는 권리는 ‘사상, 양심 및 종교 혹은 신념의 자유에 대한 권리’에서 나오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국가들은 개별 사안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의 진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독립적이며 공정한 의사결정 기구를 만들 것을 촉구하였으며, 오로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수감되거나 구금된 이들이 있는 국가들에게 그들을 석방하는 것을 고려하라고 촉구하였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지지하는 사람들 혹은 ‘양심적 병역거부 권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할 것을 각국에 촉구하였으며, 각국이 자신들의 국가 보고서에 양심적 병역 거부와 관련된 국내법적 규정들을 포함시킬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1987년,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유엔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났지만 저는 여전히 법정에 서있습니다. 제가 서있는 곳이 늘 그러했듯 제가 발 딛고 선 이 법정 또한 평화 위에 있습니다. 평화 위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국가는 저를 감옥으로 보낼 것입니다. 대한민국 법정의 출구가 군대와 감옥이라는 두 가지 길로만 이어져있다면, 저는 감옥이 평화 위에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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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병역거부 선언문 보기 https://withoutwar.org/?p=8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