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영(인천원당고 교사)

 

전쟁없는세상: 비상계엄이 선포한 지 두 달 보름이 지나갑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윤석열 탄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한 계엄과 쿠데타에 대해서도 우리는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계엄에 대해서도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주로 그날의 정황 및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내용입니다. 전쟁없는세상은 계엄, 쿠데타와 관련해서 반군사주의 맥락에서 우리가 이 일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하고 저항해야하는지 고민합니다. 그런 고민을 담은 글 다섯 편을 기획했습니다. 함께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행동하기 위한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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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국가 세력 척결’과 ‘수거’라는 표현에 대해

“크메르루주는 반대 세력을 내부에 잠복한 숨은 적, 병적 요소, 사회와 생산성을 위협하는 봉건자본가/지주 계급으로 표현함으로써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이념에 근거해 사람들 사이에 차이를 만들고 ‘청소’, ‘분쇄’, ‘죽이기’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한 사람들은 정권의 새 이념을 위협하는 근원이었음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222쪽)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세력은 반대 세력을 사회의 위협하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청소’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문장, 어딘가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12.3 내란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령 시행의 이유에 대해 “북한 공산 세력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함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전 정보사령관 노상원은 체포 대상에 대해 ‘수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최근 신간 도서 <명령을 따랐을 뿐>을 읽는 동안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남의 나라 일, 다른 시대의 일들이 아니라, 내 나라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심리학자 에밀리 A. 캐스파는 집단학살의 배경을 심리와 신경과학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명령 복종과 명령 거부를 실험 주제 삼아, 피해자와 가해자 양측의 인터뷰와 실험을 통해 명령받았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책임감, 죄책감, 공감 등을 탐구하였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명령에 복종하는 일을 수행할 때는 주체 의식과 죄책감과 관련한 뇌 영역의 활동이 크게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표지

<평령에 따랐을 뿐> 표지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자, 그리고 이에 복무하는 자

나는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친다. ‘부당한 명령과 이를 수행한 자들’이라는 주제는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단원에서 주로 다룬다. ‘악의 평범성’과 아이히만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다 12·3 내란 이후, 국회 청문회 자리에서 한 군인의 발언을 들으며 이제는 ‘부당한 명령과 이를 수행한 자들’이라는 주제는 이제 세계사 수업뿐 아니라 한국사 시간에도 중요한 의제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자신의 내란 부역 혐의에 대해 “군인은 위기 상황에서 맞고 틀리고를 떠나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진술했다. 한마디로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이야기였다. 한편,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은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고 싶었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이들을 알고 싶었다. 부당한 명령에 복무하는 자, 그리고 이를 거부하고 멈추는 자는 어떻게 나타나는 걸까. 그래서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누군가 독서 활동은 ‘각자의 오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자신이 어떤 상태에서 텍스트를 접하느냐에 따라 저자가 던진 말은 독자의 자기화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45년 만에 ‘계엄’이라는 단어를 역사책이 아닌 실시간 생중계에서 대면했던 시기,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은 다양한 장면들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당시 상황에 개입하거나 바로 잡았어야 했다는 말은 쉬운 상상일 뿐입니다. 정말로 내가 우리 민족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다고 생각하십니까?”(<명령에 따랐을 뿐>, 248쪽)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국회 관계자의 국회 출입을 막지 않도록 하였고, 그래서 국회의원과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국회 마당과 본관, 본회의장으로 들어갔고 계엄 해제 안건 심의도 진행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내란죄를 만들어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수많은 허위 선동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것이 폭동이란 말입니까?”(2024.12.12. 윤석열 대통령 담화문)

전자는 크메르루주 국제전범재판에서 주석 키에우가 했던 말이고, 후자는 12·3 내란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방송에서 했던 말이다. 명령을 내린 주체는 자신들은 그런 의도로 명령했던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그 당시에 나는 어떤 특별한 역할도 맡지 않았습니다. 단지 여성 부대의 일원일 뿐이었고 지시받은 일은 무엇이든 해야 했습니다. 만일 내가 거부했다면 끌려 나가 살해당할 수도 있었습니다.””(<명령에 따랐을 뿐>, 93쪽)

“1950년 말경, 강화 하점면 이강리 소년 대장 유OO이 소년단에 가입하지 않으면 빨갱이라고 하여 아무 생각 없이 가입하였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보고서(2007. 전OO 씨, 진술조서 중>

전자는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조직원을 인터뷰한 내용이며, 후자는 한국전쟁 당시 연백에서 내려온 서북청년단 등의 우익단체의 명령으로 부역 혐의자를 찾아 알려주며 이들의 학살에 가담했던 소년단 출신의 증언이다. 명령을 하달받은 이들은 이를 거부했을 경우 자신이 죽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주저하고 멈췄던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갈등의 상황에서 모두가 명령을 따랐던 것은 아니다. <명령에 따랐을 뿐>에서는 역사 속의 ‘구조자’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소개한다. 베트남 미라이 사건 당시의 총격을 거부한 조종사 톰슨,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핵 어뢰 발사 명령을 막은 소련 해군 장교 아르키포프 같은 이들이 있다. 항명한 행위로 인해 자신의 직위를 잃거나 고충을 겪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모를 리 없는 이들은 왜 이런 선택을 했던 걸까. 한편, 남의 나라 역사에서 찾지 않더라도, 제주 4·3사건 당시, 예비검속자 총살 집행 의뢰 서류에 ‘부당함으로 미집행’이라고 적어 대량 학살을 거부한 문형순 경찰서장이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했다가 직위해제 당한 뒤 합수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은 안병하 치안감도 있었다.

그리고 2024년 12월, 이제 우리는 그러한 인물들을 동시대에 만나고 있다. 국군방첩사령부 윤비나 법무실장은 비상계엄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확보 지시에 대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이행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소극적 행동을 통해 부당한 명령에 간접적 저항한 사례도 있었다. 국회 장악을 명령받았으나 시민들을 끌어내지 않았던 계엄군, 정치인 체포와 선거관리위원회 장악 지시를 받았으나 인근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거나 주위를 배회한 방첩사령부 대원들, 공수처의 체포영장 발부를 법치대로 진행할 수 있도록 차벽용 버스에 차 열쇠를 두고 오거나 휴가를 내 버린 경호처 직원이 있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서 최소한의 윤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황현산 선생은 <밤이 선생이다>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런저런 사건들이 늘 ‘어느날 갑자기’의 형식으로 찾아오는 곳에서, 사람들의 생각이 변덕스럽지 않기는 어렵다. ‘어느 날 갑자기’ 앞에서 놀라지 않게 하는 일은 인문학이 늘 내세우는 일이고, 사실 내세워야 할 일이다.’

어떤 사람이 어떠한 ‘선택’을 하는지가 바로 그 사람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고들 한다. 특히나 ‘어느날 갑자기’ 발생한 사건에서의 선택은 그 사람의 지향과 신념을 대표할 것이다. 식구들과 거실에 둘러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던 순간에 마주한 ‘계엄령’이라는 단어 앞에서 우리는 각자 어떠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황현산 선생님의 말씀 가운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지 않게 하는 일이 ‘인문학’의 지향점이라는 이야기는 교사인 내게는 ‘민주시민교육’의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리기도 한다.

작년 한 해, 학생들과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문제를 함께 공부했다. 이때 해당 사건의 소송대리인 임재성 변호사의 특강을 들으며 한 학생은 이렇게 썼다.

“전쟁 당시에는 참전 군인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피해자들을 위해 법정에서 증언자로 나선 류진성 씨의 용기에 감동을 받았다. 또한 가해국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변호하는 임재성 변호사님의 행동도 인상 깊다. 누군가와 연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봤다. 교실 안에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 분위기에서 목소리를 내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행위가 멈춰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관련하여 정의를 회복하는 사례를 들으며, 이 학생은 교실 안에서의 폭력 구조에서 정의를 떠올렸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있는 공간에서도 또다른 형태로 발생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을 인식하고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할지를 성찰했다. 이처럼, 부당한 상황을 거부하거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일은 비단 군대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명령이 따랐을 뿐>은 국가 폭력이나 전쟁 상황에서뿐 아니라, 우리가 발 딛는 공간에서 ‘어느날 갑자기’ 벌어지는 일에 대해 최소한 주저하고 망설이고 더 나아가 연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성찰을 하게 한다. 날을 벼려야 하는 이 시점에서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리하여 12.3 내란 이후 벌어지고 있는 현상, 그 안에서 각각 다른 결정과 태도를 보인 사람들을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서 살펴보고, 지금을 어떻게 통찰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