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전쟁없는세상: 비상계엄이 선포한 지 두 달 보름이 지나갑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윤석열 탄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한 계엄과 쿠데타에 대해서도 우리는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계엄에 대해서도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주로 그날의 정황 및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내용입니다. 전쟁없는세상은 계엄, 쿠데타와 관련해서 반군사주의 맥락에서 우리가 이 일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하고 저항해야하는지 고민합니다. 그런 고민을 담은 글 다섯 편을 기획했습니다. 함께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행동하기 위한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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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가 여야 할 것 없이 반페미니즘을 쌓는 사이

사회변혁의 큰 파도 후에는 백래시가 왔다. 2014년 페미니즘 리부트, 2018년 미투운동 이후에도 백래시가 도래했다. 그러나 이제까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는 폭력성이 커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권이 그를 반겼다는 것이다. 신남성연대는 2021년부터 페미니스트 집회에서 카메라로 특정인을 찍고 지명하며 생중계하고 실시간으로 안티페미니스트에게 모금했다. 게임회사는 페미니스트로 좌표 찍히고 지목된 직원을 해고하고 게임 유저들에게 사과했다. 헤어지자고 한 전 배우자나 동거인, 애인을 감금하고 바리깡으로 머리를 미는 사건, 찾아가 살해하는 일은 2021년 스토킹방지법 시행 이후에도 격렬했다. 2023년 서울 공원에서는 출근길 여성을 끌고가 성폭력 하려다 저항하자 목을 조르고 살해하는 일이 일어났는데 가해자는 성관계를 하고 싶어서 그랬으며,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보고 결행했다고 했다. 사이버렉카와 유튜버, 온라인 남초커뮤니티는 성격을 달리하며 특정인이나 사건을 아이템 삼아 괴롭히고 사회적으로 매장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여성혐오, 소수자혐오와 폭력을 중단하라는 정부 대책은 등장하지 않았다.

극단적 유튜버부터 보수 기독교 교단까지 모두 ‘반공’, ‘반페미니즘’, ‘반차별금지법’을 내걸었다. 보수 정치권은 이를 고스란히 받았다.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성’이라는 단어를 다 삭제했다. 온라인 남초커뮤니티는 정치성향이 달라도 ‘반페미니즘’을 공유했다. 중도 정치권은 그들을 존중해야 마땅한 유권자로 대하면서 성평등 정책을 점차 소극적으로 대했다. 진보 정치권도 이에 영향을 받고,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는 말을 민주노총 산하 지부가 소식지에 쓰기도 했다. 페미니즘을 제물 삼는 정동과 가짜뉴스가 퍼졌다. 이준석은 2021년 20대 남성을 결집시키며 보수세력을 확장했다. 장애인, 여성,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를 특혜를 받는 집단처럼 지목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것이 공정인 것처럼 말하는 전 세계 우익포퓰리즘의 문법을 따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미투운동부터 이어진 자당 정치인의 성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 하기보다, 2차 가해를 일으키는 자들을 침묵 속에서 키웠다. 안희정, 오거돈에 이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이후에도 피해자에게 좌표를 찍고 신상정보를 유포하고 공격하기 여념이 없었다. 정의로운 젠더정치에 대한 기반과 전망은 사라진 채, 김건희 씨를 선정적인 콘텐츠로 만들고 이에 집중하는 양태가 민주당지지 계열에서 이어졌다.

윤석열 정권의 ‘여가부 폐지’, ‘성폭력 무고죄 강화’ 등 안티페미니즘 결집 시도는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확산했나. 윤석열 세력은 무엇을 도모하는 정치적 결집을 했나. 페미니즘과 차별금지법, 종북을 하나로 묶으며 나섰던 세력은 어디로 향하고 있었나. 윤석열 세력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나. 이를 규명하지 않은 채 안티페미니즘을 계속 되풀이한다면 유사한 귀결을 쌓는 것 아닌가.

 

출처: 한국성폭력 상담소

출처: 한국성폭력 상담소

 

비상계엄과 전쟁체제, 그리고 성차별주의

12월 3일 밤 10시 30분 비상계엄령을 윤석열이 선포했다. 군대와 경찰이 동원됐다. 카톡과 텔레그램에서는 서울 거리에 장갑차가 도열했다는 사진이 돌고, 귀갓길 통금이 시작된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술집에 있던 주변 테이블 사람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고 황망히 흩어졌다. 시계가 째깍째깍 일분 일초 흐르는 사이 나는 머리와 몸이 터질 듯 했다. 뭔가가 몸 속에서 필름처럼 빠르게 감겼다.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퇴진, 문재인 후보의 페미니스트 선언과 미투운동, 연이은 정치권 성폭력 사건, 이대남의 결집, 젠더 갈라치기, 더불어민주당의 ‘나중에’ 정치, 윤석열과 김건희 세력의 막무가내 정권, 거부권 남발, ‘악녀 대 무식한 오빠’ 구도로 희화화 하던 일부 세력의 윤석열 반대 활동, 그에 무력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나. 분노가 터져버렸다. 제대로 오롯하게 윤석열 세력을 퇴진시켜야 한다. 국회로 달려갔다. 그날 밤 페미니스트들은 국회로, 다음 날 광화문으로, 토요일 여의도로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안티페미니스트 정치의 말로>, <폭주하는 남성성의 시대는 끝났다>. 12월 4일 결성된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 네트워크’의 피켓과 현수막이다. 이준석, 장예찬 같은 우파 남성 정치인을 끼고 당선된 안티페미니즘 대통령, 국회 의결 법안에 거부권을 남발한 국정 운영사상 최악의 독재자,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극우 정동의 선동가, 여성혐오 대표주자 신남성연대와 차별금지법 가로막는 전광훈 세력을 동원하는 우파의 대표자가 군대와 경찰을 동원했다. 비상계엄령은 국회에서 당일 해제의결 되었지만, 윤석열 세력은 더 세를 키우고 가시화하고 있다. 윤석열 체포영장을 발부한 서부지방법원을 침탈한 1월 19일 극우 행동주의는 대규모 오프라인 집회로 이어지고 있다. 안티페미니즘 정치의 말로다. 안티페미니즘을 경유한 정치가 조직하고 준비해온 그것이다. 폭주하는 남성성의 정당화를 거친 정치적 세력화, 피해자 정서를 강조한 우파 포퓰리즘, 극우세계관을 확장하면서 제패하는 파시즘, 더 힘있게 제압하는 다른 목소리 따위 듣지 않는 독재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윤석열 방어권 권고를 의결한 날, 젊은 남성은 캡틴아메리카 복장으로 인권위 건물에서 민간인들의 신분증을 ‘검사’했다.

 

출처: 한국 성폭력상담소

출처: 한국성폭력상담소

 

윤석열을 위시로 하는 파시즘 세력은 ‘내란’을 주도하고 있다. ‘전쟁 체제’다. 전쟁 체제는 군사주의와 성차별주의에 기반하고, 이를 극대화한다. 윤석열 세력은 북한의 침투공격이라는 시나리오를 쓰고 실무진행하면서 국내 세력을 체포, 구금하려고 했다. 극우파와 정부는 계속 북한을 도발하면서 군사적 분쟁을 도모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이후 한․미․일 연합훈련이 재개되고 강화됐다. 이는 북한과의 군사적 상황을 빌미로 하고 있지만 북중러 대 한미일의 신냉전체제의 구축으로 향한다는 시각이 성성하다.

현재의 우익화를 상징하는 현상인 미국의 트럼프는 2025년 1월 재집권했다. 집권 시작일 무더기 행정명령을 내렸다. 미군 내 ‘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DEI)’ 정책 폐지와 미사일 방어막 구축, 트랜스젠더 여성 여성스포츠 부문 출전 금지, 자신의 지지자들이 했던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유죄 판결자 사면이 동시에 등장했다. 국제 평화 및 인권, 환경 협약과 조약에서도 탈퇴하겠다고 한다.

『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를 쓴 베티 리어든은 전쟁을 읽으려면, 대항하려면, 막으려면 성차별주의에 대해 알고 대항하고 막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의 기원과 성격, 전개가 성차별주의와 연동되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비상계엄령 선포는 그의 안티페미니즘적 정치 경로와는 성격이 다른 일이라고, 폭주하는 남성성은 비상계엄을 설명하기에는 미시적인 용어라고, 차별금지법은 ‘민생’이 아니라고 팔짱을 끼는 이들을 본다. 그러나 질문은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그렇다면 파시즘을 막아낼 수 있는 이해와 관점, 힘은 어디에서 올 것인가? 베티 리어든의 말에 다시 밑줄 친다. “나는 전쟁 체제라는 용어를 경쟁적인 사회질서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인간의 불평등을 전제로 하고, 권위주의적 원칙을 기반으로 하며, 강제적 힘에 의해 그 지위를 유지한다.”

 

파시즘이 허물지 못하게 사회구조를 이루자, 인권과 연대의 광장으로부터

국회의사당 “요원”을 끌어내라고 했는지, “의원”을 끌어내라고 했는지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의 말들이 오가는 사이로 물소리가 들렸다. 정수기 버튼을 눌렀다가 꺼짐을 채 누르기 전에 나는 졸고 있고, 잔은 금세 넘쳤다. 12월 3일 ‘비상계엄령’ 이후 두 달, ‘내란성 불면증’이라는 신조어가 너무 웃기지만 나와 주변 사람들이 독감, 몸살, 면역저하, 피로에 시달리는 건 웃기지 않다. 전쟁은 잠을 못 자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만날 때마다 확인해 온 불면의 밤이라는 전쟁의 정황을 새삼 느낀다. 일상의 밤마다 일종의 미시적인 고문이 누적되는, 바야흐로 전쟁체제가 스며드는 시기, 그를 막아내고 있는 때다.

광장에는 ‘빛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평화와 인권의 연대가 가득하고, 피로가 누적되면서 함께 줄어들기도 하고, 지역마다 여건도 다르다. 그러나 예전처럼 살 수 없는, 자기 삶을 바꾼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나는 지하철에서, 길에서 마주치는 여성, 청소년, 노동자에게서도 기운을 얻고 있다. 군대, 법원, 노조, 학교는 균열을 맞이한다. 극우적 파시즘이 정치 상황을 더 보수로 끌고 갈 걸 생각하며 낙담과 분노가 들이치다가도, 그 끝을 이미 경험했다는 분명한 진실 앞에서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 파시즘이 허물지 못하는, 권력자의 선동에 쉽게 침탈되지 못하는 사회 구조는 무엇일까. 일상이 침탈되는 경험 사이로, ‘어떻게 살 것인가?’ 질문이 주어진다. 폭력에 노출되고, 폭력을 자행하고, 폭력을 하게 하는 삶이 더 이상 지속 되지 못할 때 그에게 평화와 인권과 성평등의 언어가 제대로 다가가도록, 이미 변화를 시작한 사람들이 더 급진적인 변화를, 더 든든하고 단단한 사회구조를 요구하고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