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전쟁없는세상: 비상계엄이 선포한 지 두 달 보름이 지나갑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윤석열 탄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한 계엄과 쿠데타에 대해서도 우리는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계엄에 대해서도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주로 그날의 정황 및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내용입니다. 전쟁없는세상은 계엄, 쿠데타와 관련해서 반군사주의 맥락에서 우리가 이 일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하고 저항해야하는지 고민합니다. 그런 고민을 담은 글 다섯 편을 기획했습니다. 함께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행동하기 위한 글들입니다.
- 망설임과 배신감이 구한 세계: 최성용(성공회대 냉전평화연구센터)
- 계엄을 막은 힘, 시민들의 비폭력 저항: 이용석(전쟁없는세상 활동가)
- 폭주하는 남성성과 계엄: 오매(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 12.3 계엄, 윤석열의 군비 증강과 방산 진흥의 종착역: 쥬(전쟁없는세상 활동가)
- 그날,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을 이해하고 싶다면-《명령에 따랐을 뿐》을 읽고: 안민영(인천원당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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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으로 상징되는 윤석열의 쿠데타 시도는 감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터무니없고 시대착오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여러 곳에서 우리는 극단적이고 지극히 군사적인 폭주의 전조를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윤석열 정부의 군비 증강과 방산 진흥, 군사 퍼레이드, 대북 도발과 같은 군사주의적 행보들이 이번 사태의 조짐이었을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군비 증강
2000년부터 2025년까지 한국의 군사비는 한 해도 빼지 않고 상승했다. 그리고 역대 한국 정부는 모두 군사비 증액을 통한 강한 군사력을 안보의 기본 방향으로 잡았다. 그 때문에 군사비 추세만 봐서는 각 정부가 군비 증강에 얼마나 열을 올렸는지 비교하기 어렵다. 군사비 증가율만 봐서도 마찬가지다. 재정 정책에 따라 정부의 총지출 증가율도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을 함께 보면, 긴축 내지 확장 재정 기조 속에서 정부가 총지출의 얼마만큼을 군사비에 할애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 내내 군사비 증가율은 정부예산 증가율과 비슷하거나 이를 밑돌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서 2024년부터 국방예산 증가율이 정부예산 증가율을 상회했다. 이에 따라 정부 총지출 대비 군사비는 2007년까지(노무현 정부) 증가하다가, 2017년까지(이명박, 박근혜 정부) 10% 내외로 유지되었고, 2022년까지(문재인 정부) 9%로 감소했다. 그리고 이후(윤석열 정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윤석열은 군비 증강을 노력한 역대 정권들과 비교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군비 증강에 진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방산 진흥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한 윤석열은 2022년 11월 24일 ‘방산수출 전략회의’에서 방위산업을 첨단 전략사업으로 육성하여, 2027년까지 한국을 “세계 4대 방산 수출국”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2023년 12월 7일 ‘제2차 방산수출 전략회의’에서는 “방위산업은 국제질서를 존중하는 우방국과 그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평화산업”이라며 방산 수출 정책 활성화를 거듭 부각했다.
이러한 수사가 예산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보면, 방위사업청의 ‘방위산업 수출지원’ 예산은 2024년 818억 원이었는데, 이것은 2022년의 638억 원에서 28% 증가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말기,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의 53억 원과 비교하면 무려 15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1년 예산이 519억 원으로 이미 대폭 상승했으니 공정하게 말하면,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쌓아 올린 방산 진흥 정책을 잘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윤석열 정부는 역대급으로 상승한 방위산업 수출지원 예산을 줄일 의지는 없었으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전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입장이라고 평가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정부의 이런 지원 정책에 힘입어 실제 한국의 방산 수출액(수주 기준)은 2020년 30억 달러에서, 2021년 73억 달러, 2022년 173억 달러로 급증했다. 비록 2023년 135억 달러, 2024년 95억 달러로 주춤하기는 했지만, 방위사업청은 2025년 1월 16일 올해 방산 수출 규모를 역대 최대인 240억 달러로 예상하며 “정부 지원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군사 퍼레이드
2023년 건군 제75주년 국군의 날, 숭례문과 광화문 일대에서 10년 만의 시가행진(군사 퍼레이드)이 진행됐다. 5년 전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남북화해 국면에 따라 시가행진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2024년에도, 군사독재정권 이후 42년 만에 2년 연속 시가행진이 진행됐다. 원래 시가행진을 포함한 국군의 날 행사는 국방부 부대관리훈령 제313조, 제314조에 근거해 대통령 취임 첫해에만 대규모로 실시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훈령을 개정해 ‘필요시 언제든 대규모로 실시할 수 있다’는 조항을 만들었다.
2023년, 2024년 국군의 날 행사에는 각각 101억 원, 79억 원의 예산이 들었다. 시가행진을 진행하지 않았던 문재인 정부 당시 2020년, 2021년에 각각 12억 원, 13억 원이 든 것과 대조적이다. 이 많은 예산과 돈으로도 측정되지 않은 병사들의 노동이 전시성 행사에 낭비됐다.

2013년 국군의 날 행사 (사진: Erin A. Kirk-Cuomo)
계엄
얼마 지나지 않아 12.3 계엄 사태가 터졌다. 윤석열은 기습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국회와 선관위 등으로 군대를 보내 친위 쿠데타를 꾀했다. 쿠데타가 실패한 결정적인 원인은 계엄 선포 직후 거리로 뛰쳐나와 맨몸으로 장갑차를 가로막은 시민들의 저항과 일부 군인들의 양심에 따른 태업과 항명, 불복종이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독재국가에 살고 있었을지 모른다.
윤석열의 계엄과 군비 증강, 방산 진흥, 그리고 군사 퍼레이드. 이 모든 것의 공통분모에는 군사적인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폭력의 이데올로기, 군사주의가 있다. 군비 증강과 방산 진흥은 각각 정치·외교적 문제를 군사적 수단으로 해결하고, 경제를 국방과 연동시키는 정책이다. 사회의 군사화와 높은 군사비 지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세계 방산 시장 역시 미국, 러시아, 중국 같은 군사주의 국가들이 과점하고 있다. 국내 정치의 수단으로 군대를 동원한다는 발상은 이러한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군사 퍼레이드가 ‘힘에 의한 평화’라는 생각에서 나온 행사이고,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는 이들의 끝이 바로 계엄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12.3 비상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은 2023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임무를 맡았다. 국군의 날 시가행진이 계엄군 동원의 예행연습이 아니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계엄 사태는 전차와 장갑차, 총을 든 군인들이 도심 한복판을 누비는 장면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진 결과가 아니었을까? 이러한 ‘익숙함’이 폭력적 수단의 동원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을 가능성을 돌아봐야 한다.
한국도 징병제하의 분단국가로서 내로라하는 군사주의 사회이지만, 군사적 규율조차 헌법과 민주주의, 인권 같은 상위 가치에 부합해야 한다는 관념이 시민들과 일부 군인에게 있었기에 이번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다. 만약 우리 사회가 정치, 경제, 문화 등 전 영역이 군사적 가치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고, 상관의 명령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군대 정신이 모두에게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면 쿠데타는 쉽게 성공하지 않았을까?
아이러니한 것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와 쿠데타 시도로 방산주 주가가 떨어지고, 국가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이미 협상한 방산 수출 계약이 연기되는 등 방위산업이 위축되는 결과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군사주의에 내재한 모순이 드러난 것이 아닐까? 군사적인 수단으로 가져온 평화와 번영이 유지되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결론
군사주의가 공고할수록 쿠데타가 성공할 확률은 높아지고, 그에 따라 군부나 국가 지도자가 쿠데타 시도를 결심할 확률도 높아진다. 따라서 이번 계엄과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 전반에 뿌리 내린 군사주의를 약화시켜야 한다. 폭력이 아닌 협력과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근육을 갖춰야 한다.
우리가 군비 경쟁의 악순환과 군수산업 의존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대안을 모색할 때, 다시 말해 국내적으로 혹은 국제적으로 협력과 대화 등 외교적이고 정치적인 수단으로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 평화의 필수조건임을 인식할 때, 계엄과 쿠데타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