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병역거부자)

2020년 10월 26일, 양심과 신념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한 이들 60여 명이 역사상 처음으로 대체복무요원으로 소집됐습니다. 그 이후로 4년이 지난 현재까지 1500명이 넘는 인원이 3년 동안 교정시설에서 합숙복무를 하고 있습니다. 병역거부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과거와 달리 대체복무제도 시행 이후에는 오히려 많은 이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체복무제도를 직접 경험한 이들이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경험을 전하는 기획 〈대체복무 표류기〉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모색하는 활동가 모임’에서 준비했습니다. 심사와 복무 전반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보는 글을 연재합니다. 첫 글은 병역거부자 시우님의 글입니다. 시우님은 대체복무 3년을 마치고 지난 10월달에 소집해제 되었습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한국 병역거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꼽는다면 2018년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양심과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을 위해서 대체복무제도를 만들 것을 국회에 주문했다. “소수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반영함으로써 관용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2019년 12월 31일에 마침내 대체역법이 제정됐다.

이에 질세라 2018년 11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병역거부자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했다. 다시 말해서 병역거부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확고히 세워진 것이다. 그전까지 대법원은 병역거부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14년 동안 고수해왔고, 이로 인해 2만 명의 병역거부자가 감옥에 갇혀야 했다. 대법원의 판례가 변경된 역사적 장면을 마주하면서 병역거부자가 더 이상 수감생활을 하지 않는 변화를 반기며 설레는 미래를 그려보는 이들도 있었다.

 

2018년 11월 1일

2018년 11월 1일 대법원은 최초로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선고를 내렸다. 그날 대법원 앞 기자회견 사진.

 

그렇다면 병역거부 역사를 살펴볼 때 2024년에 주목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2024년 1월 대법원은 대체역 심사위원회에서 시행한 심사를 통과한 이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관련 기사:  ‘대체복무 공백기’ 양심적 병역거부는 유죄? 병무청-법원 엇갈린 판단) 이른바 진정한 양심에서 비롯한 병역거부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대체역 심사위원회로부터 인용 결정을 받고 대체복무요원으로 복무할 기회를 얻었음에도 수감생활을 해야 하는 부조리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더 부조리한 것은 그가 수감생활을 겪어냄으로써 재판부가 문제 삼은 양심의 진정성이 역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모든 병역거부자가 형사처벌을 받았던 2018년 이전의 상황과 정확히 포개어진다.

2월에는 양심과 신념을 이유로 대체역을 거부한 이에게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다.(관련기사: “나 때는”…양심적 병역거부 몰이해 드러낸 어떤 판결) 판사는 “내가 20년 전에 육군 법무관으로 복무해서 아는데” 대체복무는 군 복무에 비해서 그다지 고역이 아니라며 짐짓 훈계를 늘어놓았다. 군대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를 견디면서 복무를 하는 이들이 있는 만큼 대체복무 현장에서 경험하는 어려움도 감내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논리적인 것을 넘어 모욕적이기까지 했다. 현역, 보충역, 대체역이 각기 다른 병역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오인한 것은 물론이고 군인과 병역거부자 사이에 무의미한 고통 경쟁을 부추기는 낡고 오래된 수사를 반복하는 셈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5월에는 대체복무를 규정한 현행 대체역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2022헌마1146, 2023헌마32). 세계에서 가장 긴 3년 간의 복무기간도, 교도소와 구치소를 비롯한 교정시설에 국한된 복무영역도, 어떠한 경우도 예외가 허용되지 않는 합숙복무도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군인이 “생명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면서 국가를 위해 희생을 각오하고 전장에 나서는” 반면, 대체복무요원은 “무기나 흉기를 사용, 관리, 단속하는 행위 등에서 배제되는 특별한 배려”를 받고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설명은 대체복무제도가 병역거부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보다 군 복무와의 형평성을 맞추는 일에 치중하고 있음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얼마 전인 10월에도 대체역 심사위원회로부터 기각 결정을 받은 병역거부자가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기각 판결을 내리는 사건이 있었다. 소송 당사자는 사회주의자로서 병역을 거부하고 대체역을 신청했지만,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그의 양심이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이유로 신청을 기각했다. 대체역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진행한 그가 받아든 것은 사회주의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가 “우리 헌법이 수호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기에 “병역거부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황당한 판결문이었다.(관련 논평: 지킬 가치가 없는 양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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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단은 심사위 기각 결정 뒤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2심, 대법원 모두 나단의 행정소송을 기각했다. 사진은 심사위원회 기각 이후 입영날 병무청 앞에서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이후 나단은 병무청으로부터 고발을 당해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형사재판 1심이 진행 중이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 지난 3년 동안 대체역을 신청하는 이들은 86%나 급감했다.(관련 기사: 양심의 자유 보호하는 대체복무제···신청자 3년 새 86% 급감 왜) 헌재 결정과 대법원 판례 변경 전후로 재판 과정에 있던 이들이 시간이 지나며 점차 줄어든 것을 고려하더라도 놀라운 수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한편으로 일반 대중이 특정 종교 신자만 대체복무를 할 수 있다고 오해할 만큼 정책 홍보가 부재해서 발생한 현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양심과 신념에 따라 전쟁에 반대하고 폭력에 저항하는 이들에게조차 대체복무제도가 별다른 대안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언뜻 보면 2018년 이후로 병역거부와 관련된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더 복잡하고 괴로운 문제가 매일 넘실대고 있다. 2024년 한국에서는 사회적 소수자를 포용한다고 자부하는 제도가 표류하고, 개인이 지닌 양심과 신념의 내용을 따져 묻는 심사가 표류하고, 대체복무를 하는 이들이 자신의 선택에 회의를 품게 되는 복무가 표류하고 있다. 인권과 평화의 가치가 마침내 새로운 세계를 열어낸 것처럼 보이던 6년 전의 시공간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사회 운동은 법이 정해둔 테두리 안에서 개선의 지점을 찾아내는 작업을 넘어 법으로 대표되는 지배 규범과 질서 자체를 바꾸어내는 활동이다. 병역거부 운동은 병역거부에 대한 도덕적 낙인과 법적 처벌에 맞서 바로 그러한 일을 해냈다. 그렇다면 2024년에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안내서를 발간하고 이전 시기의 병역거부자와 만나는 시도와 같이 지금 여기에서 병역거부와 대체복무를 경험하는 이들이 실제로 어떠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기록하고 알리는 일이 아닐까. 이를 통해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규범과 질서를 다르게 써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2024년에도 이른바 진정한 양심이 아니라고, 군 복무보다 힘들지 않다고, 제도를 만들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줄 알라고 병역거부자를 비난하고 꾸짖는 말이 여전히 크게 들리고는 한다. 그러나 양심과 신념을 들먹일 자격조차 없다며 깎아내리는 말에 주눅들지 않고 병역거부와 대체복무를 다시 문제로 만들어가는 움직임 역시 나타나고 있다. 매일 작은 변화의 조각을 모아서 이내 또 다른 역사적 순간을 실현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이들이 서로 고민을 나누는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고(관련기사: 양심적 병역거부자 감옥살이 여전…대체복무, 교도소 합숙에 묶여) 작년에 이어 다시 한 번 글을 쓰기 시작했다. (관련 글: 대체복무 표류기)

지금으로서는 믿음을 가지기 쉽지 않지만, 언젠가는 2024년이 2018년만큼 결정적인 시기였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대체복무제도를 직접 살아내는 이들의 절절한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다른 미래를 그려볼 따름이다. 그렇게 전쟁과 학살의 시대를 건너는 모든 이들과 함께 법정에서, 대체역 심사위원회에서, 교정시설에서 또 한번 저항의 걸음을 내디뎌본다.

 

짧은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진실과 거짓이 한데 뒤섞인 소설 혹은 우화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언제나 그러하듯 그 어떤 소설보다 현실이 그 자체로 더 소설 같다는 것을 기억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을까? 

 

「옛날 옛적에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이들이 10명 있었어요. 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전쟁에 반대하고 군인이 되지 않기로 마음먹었답니다. 다행히 이들이 사는 곳에는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되어 있었어요.」

「10명의 병역거부자는 먼저 대체복무가 어떤 제도인지 살펴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 1명은 특정 종교 신자만 대체복무를 할 수 있다고 오해하고 말았어요. 대체복무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던 데다가 그나마 찾을 수 있던 정보는 특정 종교에 대한 것이 전부였거든요. 그래서 그는 대체복무가 아니라 다른 병역거부 방법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남은 사람은 9명이 되었어요.」

「9명의 병역거부자는 대체복무를 신청할 것인지 고민했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 1명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심하다가 그만 입영•소집 예정일을 코앞에 두고 말았어요. 대체복무 신청은 예정일 5일 전까지만 가능했기 때문에 그는 결국 지원할 수 없었답니다. 제도를 만든 사람들은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시간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요. 그렇게 남은 사람은 8명이 되었어요.」

「8명의 병역거부자는 대체역 편입을 원한다고 대체역 심사위원회에 알렸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 1명은 자신의 병역거부 신념을 확인해줄 사람 3명을 구하지 못했어요. 그의 고민은 충분히 깊었지만, 병역거부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진솔하게 나눌 수 없었거든요. 끝내 주변인 진술서를 제출할 수 없던 그는 심사위원회로부터 각하 결정을 받았어요. 그렇게 남은 사람은 7명이 되었어요.」

「7명의 병역거부자는 대체역 심사위원회 회의에 참석해서 자신의 신념을 밝혔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 1명은 정당하지 않은 전쟁과 폭력에 반대한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러자 심사위원회에서는 모든 전쟁에 반대해야만 진정한 양심으로 인정할 수 있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어요. 심사 태도가 무례하다느니 생각 자체가 틀렸다느니 하며 그를 공격하는 심사위원도 있었다고 해요. 그렇게 남 은 사람은 6명이 되었어요.」

「6명의 병역거부자는 심사를 통과하고 대체복무를 수행할 기회를 얻었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 1명은 자기 앞에 1,000명이 넘는 인원이 대기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병역거부를 고민하고 심사를 준비하면서 이미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실제로 복무하기까지 다시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좌절한 그는 대체복무를 포기하고 말았어요. 그렇게 남은 사람은 5명이 되었어요.」

「5명의 병역거부자는 오랜 밤을 지새우고 나서야 대체복무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 1명은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음에도 현역 판정을 받은 대체복무요원과 같은 업무를 수행 해야 했어요. 증상이 심해지고 상태가 악화됐지만,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데다 외진 곳에 있는 교정시설 근처에는 마땅히 갈 만한 병원이 없었어요. 결국 도저히 대체복무를 지속할 수 없는 상황 에 놓였답니다. 그렇게 남은 사람은 4명이 되었어요.」

「4명의 병역거 부자는 떠나간 이들을 그리워하며 대체복무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 1명은 교정시설의 폐쇄적인 분위기와 직원의 부당한 대우를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권위주의와 위계주의에 반대해서 병역거부를 했는데, 대체복무 현장에서도 지시와 명령에 따라 위에서 시키는 일을 무조건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거든요. 그렇게 남은 사람은 3명이 되었어요.」

「3명의 병역거부자는 서로에게 기대어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 1명은 다른 대원들이 일상적으로 내뱉는 혐오 발언에 지치고 말았어요. 대체복무를 선택한 이들 역시 사회적 소수자임에도 성소수자를 조롱하고 장애인을 비하하고 수용자를 멸시하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어요. 문제를 제기하고 대응을 요구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그렇게 남은 사람은 2 명이 되었어요.」

「2명의 병역거부자는 보안과에 배치되어 야간근무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 1명은 수용자의 일상을 CCTV로 들여다보는 일을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비추어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직접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과 간접적으로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고뇌하던 그는 교정시설에서 복무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임을 깨닫고 대체복무를 중단했어요. 그렇 게 남은 사람은 1명이 되었어요.」

「1명의 병역거부자는 곁에 있던 동료들이 모두 사라지고 혼자 덩그러니 남은 자신이 쓸쓸하게 느껴졌어요. 그는 지금까지 지나온 긴 여정을 가만히 되돌아봤어요. 이따금 즐거웠던 시간도, 그러나 대부분 괴로워했던 시간도 생각났어요. 그는 대체복무를 선택한 이유를 하나씩 헤아리며 앞으로 대체복무를 계속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어요.」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을 글로 적기 시작했어요. 우선 무엇이 문제인지 알리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 편, 두 편 모인 글은 어느새 여섯 편에 이르게 됐어요. 그렇게 그가 쓴 글은 대체복무제도의 표류가 끝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