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주: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가 없는 병역법이 양심의 자유를 보호하는 헌법에 불합치 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2019년 12월 27일 국회는 대체복무 관련 법을 만들었고 2020년부터 대체복무제가 시행되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2023년 5월말 기준) 2910명이 대체역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대다수가 여호와의증인이었고 정치적 병역거부자는 소수입니다. 이들 가운데 1258명이 대체복무를 하고 있고 올해 10월 말이면 3년의 복무를 꽉 채운 첫 대체복무 요원이 소집해재 됩니다. 대체복무를 하고 있는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합니다. 본 연재는 대체복무 중인 정치적 병역거부자들이 기획한 것으로 앞으로 매주 2편씩 11월 초까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를 통해 연재됩니다.

 

민찬(대체복무 중인 병역거부자)

 

 

“대체복무를 36개월이나 한다는데 진짜인가요?”
“말씀하신 건 종교 등의 이유로 군대 안 가시는 분들이 하는 거고 저희는 21개월이에요.”
“깜짝 놀랐어요ㅠ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연예인이 사회복무요원으로 소집됐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무엇보다 대체복무제도가 만들어진 지 4년이 된 지금도 대체복무가 잘 알려지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대체복무는 여전히 사회복무와 같은 것으로 이해되거나 어차피 ‘그 종교’에서 하는 것 정도로 여겨진다. 2018년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판결 이후, 양심과 신념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제시되는 듯했으나 정부는 징벌적인 성격의 대체복무제도를 만드는 것으로 이에 화답했다.

현재 한국에서 시행되는 대체복무는 3년 동안 교정시설에서 이루어지는 합숙 복무를 핵심으로 한다. 복무 기간, 영역, 형태 모두 국제 인권 기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지만, ‘5년 동안 비무장지대에서 지뢰 제거 작업을 시켜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던 이들 덕분인지 전 세계에서 가장 길고 폐쇄적인 대체복무제도가 탄생했다. 그나마도 제도 도입 이후에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이들이 줄어들었고, ‘일단 3년 동안 지켜보고 그다음에 이야기하자’는 정치권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제도는 사실상 방치됐다.

그럼에도 전국의 교정시설에는 대체복무요원으로 일하는 정치적 병역거부자들이 있다. 가혹한 제도는 달라진 것이 없지만, 여호와의증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곳에서 외딴섬처럼 존재하지만, 전쟁에 저항하는 병역거부자들은 오늘도 대체복무를 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 운동의 성과로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됐다는 것에 안도하기도 하고, 엄격한 규율과 비합리적인 관행에 분노하기도 한다.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고, 문득 ‘내가 이러려고 대체복무를 하러 왔나’ 싶을 때면 환멸감을 맛보기도 한다. 수용자, 교도관, 여호와의증인과 맺는 관계는 대체복무 현장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다.

제도의 도입은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하며, 대체복무제도는 정확히 이에 해당한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에 대체복무제도 입법을 주문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제도를 통해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키우고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지금으로서는 요원해 보일 뿐이다. 2023년 10월, 3년의 복무 기간을 모두 마친 첫 기수가 나오는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대체복무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이번 연재는 대체복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이들, 알고는 있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던 이들, 파악은 했지만 개입의 지점을 찾기 어려웠던 이들을 위해서 준비됐다. 대체복무 현장을 이해하는 데 우리의 이야기가 작게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에 유리병이 반쯤 파묻혀 있다. 유리병은 코르크 마개로 닫혀 있고 안에는 무언가가 적힌 종이가 들어 있다. 먼 곳에서 표류한 이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낸 듯하다. (사진 awesomecontent/Freepik)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에 유리병이 반쯤 파묻혀 있다. 유리병은 코르크 마개로 닫혀 있고 안에는 무언가가 적힌 종이가 들어 있다. 먼 곳에서 표류한 이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낸 듯하다. (사진 awesomecontent/Freepik)

 

연재 기획의 제목은 〈대체복무 표류기〉로 정했다. 이는 인권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표류 중인 대체복무제도를 뜻하기도 하고, 간절히 원하던 제도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자리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기도 한다. 기획 제목을 제안한 다래의 표현대로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가변적인”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마주한 세계를 바꾸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지, 누구와 함께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막막한 일상을 기록하는 우리의 표류기는 언제쯤 변화의 실마리를 찾은 여행기가 될 수 있을까.

이번 연재에 실린 글은 모두 필명으로 쓰였다. 연재를 준비하면서 표기에 대한 고민을 나눴고 필명 연재로 가닥을 잡았다. 한편으로는 연재 직전에 개정된 정치 활동 금지 조항을 염두에 뒀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여호와의증인 대체복무요원이 극소수인 상황에서 글쓴이가 특정될 가능성과 이로 인한 불리한 처우의 문제를 고려했다. 대체복무를 하는 정치적 병역거부자들이 지금보다 늘어나고 대체복무제도에 관한 자유롭고 안전한 토론의 자리가 많아져서 두려움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연재는 매주 2회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은 없지만 많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