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현규
참여 병역거부자 n명
전쟁없는세상에서 진행한 예비 병역거부자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모임에서 준비한 프로그램 가운데 ‘병역거부 ABCD’라는 순서가 있었다. 병무청 고발, 경찰 조사, 검찰 기소, 형사 재판에 이르는 법적 절차에 대응하는 방법, 주변 사람들과 소통할 때 중요한 점, 교정시설에서 하게 될 경험, 출소 이후의 삶을 아우르는 강의였다. 강의를 맡은 사람은 병역거부로 수감생활을 했던 활동가였다. 그는 사람마다 병역거부의 여정이 다를 수밖에 없고 본인도 본인의 사례 외에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나타냈다. 강의 제목을 ‘병역거부 ABCD’로 정한 것도 “병역거부의 A부터 Z까지 다 안다고 할 수는 없고, 병역거부의 A부터 D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연재 기획의 첫 번째 글은 ‘대체복무 ABCD’다. 훈련소 후기, 군인 후기, 사회복무요원 후기가 인터넷에 넘쳐 나고 책으로 출간되는 것과는 달리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몇몇 기사를 제외하고는 알려지지 않았다. 처음 교육센터에 가서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예상했던 것과 실제 복무가 얼마나 같거나 달랐는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지,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물품은 무엇인지, 대체복무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등 대체복무요원으로 생활하면서 경험한 내용을 글에 담았다. 같은 대체복무요원이라고 하더라도 각자의 고민에 따라, 복무하는 현장에 따라, 소집된 시기에 따라 서로 다른 풍경을 마주한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동안 대체복무를 해온 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사람들 여러 명이 서로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storyset/Freepik)
대체복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대체복무와헤어질결심 : 어쩌다 보니 다시 감옥행. 감옥에 온 건 아닌데 감옥에 안 온 것도 아니라서 애매하다.
우리교도소정상영업합니다 : 이상적으로 말하면 공공성을 실현하고 사회 안전망을 넓히는 일이겠지만 현실은 물음표다.
언제까지3년복무하게할거야 : 2등 시민 체험장. 대체복무요원은 교도관에게 늘 인사하고 먼저 양보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대체복무요원이 교정시설의 일원으로 온전히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교도관이 모인 인터넷 사이트에 가보면 대원들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말이 끝없이 이어진다.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대원들에게 ‘인권과 신념 운운하며 까탈스럽게 구는 너희보다 차라리 수용자 데리고 일하는 게 편하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열려라소집해제의문 :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군인도 교도관도 수용자도 아니지만 대체복무요원이 정확히 뭔지는 아무도 모른다. 복무관리관*은 물론이고 대체복무요원 자신들도 헷갈릴 때가 있다. 현장에서는 그냥 ‘대체복무요원=여호와의증인’이라고 넘기는 경우도 많다. 경력이 오래된 직원들은 경비교도대** 이야기를 하더라.
* 대체복무요원의 복무를 관리하는 총무과 소속 교도관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일반적으로 4명이다.
** 1981년부터 2012년까지 시행된 전환복무의 일종으로 교정시설 보안과에 소속된 부대다. 경비교도대원은 군사훈련을 받았다는 점, 감시, 보초, 접견, 출정과 같은 업무를 지원했다는 점에서 대체복무요원과 거리가 있지만, 몇몇 기관에서는 경비교도대가 사용하던 생활관을 리모델링 해서 대체복무 생활관으로 쓰고 있다.
숨참고출근다이브 : 어쩔 수 없이 먹기는 하는데 다른 사람한테 먹어보라고 할 수는 없는 음식. 병역거부를 고민하면서 수감생활을 각오했던 만큼 대체복무제도가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도 지금 제도는 문제가 너무 많다. 충분히 더 잘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너무 맛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먹을까 봐 일부러 맛없게 만들었다’라는 변명을 들을 때면 요리사들을 고소하고 싶다.
처음 교육센터에 가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그것이대체복무니까 : 교도관이 불친절하고 여호와의증인이 많아요.
대체복무와헤어질결심 : 인권운동의 오랜 투쟁 끝에 만들어진 제도인 데다가 주변에 수감생활을 했던 병역거부자 지인도 있었던 터라 ‘이런 날이 오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3년 동안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공간이 교정시설이라는 것이 우려스러웠다.
우리교도소정상영업합니다 : 잘 지내보자. 잘 해보자.
언제까지3년복무하게할거야 : 교도관들이 교육센터 입구 밖에서 안내할 때는 존댓말을 썼는데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반말을 쓰더라. 그때 뭔가를 확실히 깨달았다. 교도관들은 우리가 군 복무를 대신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군인과 비슷한 신분임을 망각해선 안 된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이를 군기를 잡겠다는 말로 이해했다. 여호와의증인들은 서로 뭔가 잘 알고 있고 많은 것이 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하나하나 조심스럽고 답답했던 기억이 난다.
열려라소집해제의문 : 교도관으로부터는 명령조의 반말을 듣고, 여호와의증인으로부터는 “형제님,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들은 게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지금도 비슷하지 않을까.
예상했던 것과 같았던 점과 달랐던 점은 무엇이 있나요?
숨참고출근다이브 : 예상했던 것과 같았던 점은 교정시설의 분위기다. 보안과 질서 유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어서 그런지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다. 어떤 복장과 몸가짐을 하는지, 어떤 태도와 언행을 보이는지에 민감한 편이다. 군대 문화도 존재한다. 위에서 명령하면 아래서 따르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 직원들이 대체복무요원을 대할 때도 비슷하다. 당연하다는 듯이 반말로 이야기하는 직원들이 많은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체복무요원이 나이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물론 대원들을 동료 직원처럼 대하는 직원들도 있다. 특히 업무를 함께하는 직원들은 대원들을 잘 챙겨준다. 오히려 같이 일해본 적 없는 직원들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느꼈다.
그것이대체복무니까 : 대체복무를 시작하기 전부터 합숙 복무에 대해 많이 걱정했는데 실제로 합숙 복무가 가장 힘들게 느껴진다. 개인 공간이 전혀 없는 곳에서 지낸다는 게 커다란 스트레스를 준다. 업무나 관계나 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지는 반면, 개인 공간이 없다는 스트레스는 해소할 방법이 없다. 틈틈이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전부다.
대체복무와헤어질결심 : 기대가 크지 않았던 모양인지 생각보다 생활관 시설이 괜찮고 지급 물품도 나쁘지 않았다. 운동 기구가 설치된 체력단련실도 있고,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내가 복무하는 곳에서는 지급된 수건, 속옷, 신발 같은 것을 다들 잘 쓰고 있다. 업무시간 이후에는 사복을 고집하는 대원들도 있다. 시설 보수나 물품 신청도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예산 배정 우선순위나 기준은 자세히 모르지만 꼭 필요하다 싶은 부분은 대체로 해결되고 있다. 수납공간이 예상보다 작아서 단출하게 생활해야 한다는 건 아쉽다.
우리교도소정상영업합니다 : 대체복무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시민사회의 의견이 법에 충실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심사를 받을 때는 인권운동이나 평화운동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작 대체복무를 하는 교정시설에서는 병역거부자가 왜 대체복무를 하게 됐는지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신경하다. 주어진 규칙을 잘 지키고 성실하게 복무하면 그걸로 된다는 분위기가 있다. 특별한 관심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심사 과정과 복무 현장의 온도가 이렇게 다를 줄은 몰랐다.
대체복무요원의 하루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언제까지3년복무하게할거야 : 「대체역 복무관리규칙」을 보면 일과표가 나온다. 정해진 기상 시간은 아침 6시다. 6시 30분에는 인원을 확인하고 특이사항을 보고하는 아침 점검이 진행된다. 점검을 마치면 7시까지 자리를 정돈하고 샤워를 한다. 7시부터 8시까지 직원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데 직원식당이 먼 경우에는 음식을 생활관으로 가져오기도 한다. 오전 업무는 8시부터 12시까지 이루어진다. 12시부터 13시까지 점심시간이 있고, 13시부터 17시까지 오후 업무를 하면 하루 일정이 끝난다.
열려라소집해제의문 : 17시부터는 전자통신기기를 사용할 수 있고 외출을 할 수 있다. 대체복무요원은 휴대폰 한 대와 노트북 또는 태블릿PC 한 대를 보유할 수 있다. 처음에는 하루 3시간만 쓸 수 있었는데 점차 늘어나서 일과 중에만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다. 외출은 일반 외출과 종교 외출로 나뉜다. 일반 외출은 정원의 50%까지 허용되고 21시 30분까지 복귀해야 한다. 외출 시간도 초반에는 3시간이었다가 늘어났다. 종교 외출은 사실상 여호와의증인이 종교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교정시설 주변에 있는 왕국회관에 가는 용도로 쓰인다. 종교 외출은 인원 제한이 없고 주중에 한 번, 주말에 한 번 주어진다.
숨참고출근다이브 : 외출을 하지 않는 대체복무요원도 21시 30분까지는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 21시 30분부터 생활관 청소를 하고, 21시 45분에는 아침과 마찬가지로 저녁 점검을 진행한다. 복무관리관 중 한 명이 매일 18시부터 22시까지 돌아가면서 잔업을 하는데, 생활관에서 자고 가는 날도 있고 22시 이후에 불시 점검을 하는 날도 있다. 22시부터는 취침 시간인데 기관마다 소등시간은 조금씩 다른 것 같다.
그것이대체복무니까 : 대체복무에서도 야간상황근무라는 것을 한다. 한 명은 22시부터 다음날 2시까지, 다른 한 명은 다음 날 2시부터 6시까지 4시간씩 상황근무를 한다. 매시간 인원을 확인하고 보안과 당직 근무자에게 보고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대체복무와헤어질결심 : 큰 틀에서는 모든 기관이 똑같은 일과를 보낸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부서에 따라서 일찍 출근하거나 늦게 출근하는 곳도 있다. 직원식당은 아침부터 일하는 팀과 저녁까지 일하는 팀이 별도로 있다. 주말에 일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신 평일에 비번이 주어진다. 여름에는 낮에 작업하기 상당히 곤란하기 때문에 업무 시간이 조정되기도 한다.
대체복무에서는 무슨 일을 하나요?
우리교도소정상영업합니다 : 어느 기관이든 시설관리, 직원식당, 구매, 보안 물품(세탁), 의료, 보관(영치), 행정 업무는 공통으로 한다고 알고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시설관리는 환경미화와 쓰레기 정리, 직원식당은 조리보조, 구매는 수용자가 직접 사거나 면회 온 사람이 보낸 물품의 분류와 전달, 보안 물품은 수용자에게 지급하는 생필품과 의류의 빨래와 분배, 의료는 진료 보조와 약제실 업무 보조, 보관은 수용자 물품 관리와 정리, 행정은 대체복무생활 전반을 담당한다.
언제까지3년복무하게할거야 : 최근에는 업무 부서가 확대되어서 복지과, 보안과, 사회복귀과 등 직원들이 일하는 부서로 출근하는 대체복무요원도 생겼다. 주로 자격증이 있거나 관련 경력이 있는 대원이 배치됐다. 지난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업무 영역을 확대하라는 권고를 낸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알고 있다.*
* 2023년 5월 1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현재 대체복무요원이 수행하는 업무가 공익적 가치를 담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대체복무요원의 적성과 자격 등을 고려해서 업무가 부여될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하라는 권고를 냈다.
열려라소집해제의문 :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여호와의증인은 사회복귀과 업무를 선호하지 않는다. 사회복귀과는 수용자의 교정교화에 특화된 부서로 불교, 천주교, 개신교 등 종교 활동을 담당하고, 도서, 잡지, 신문, 편지를 관리하는 부서다. 그런데 현행법상 유해 간행물은 반입이 안 되지만 성인 잡지는 청소년 수용자를 제외하고는 열람할 수 있다. 보수적인 성 규범을 강조하는 여호와의증인 분위기상 사회복귀과 업무를 맡지 않거나 도서와 잡지는 다루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숨참고출근다이브 : 체감 난이도는 부서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다. 대체로 시설관리, 구매, 직원식당, 간병 업무 등이 힘든 일로 여겨진다. 봄부터 가을까지 진행되는 예초 작업과 겨울에 하는 제설 작업도 어려운 일에 속한다. 바깥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반복 동작이 많은 일,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 건물 외부에서 해야 하는 일이 고된 편이다. 업무를 마치면 녹초가 될 때도 많다. 지금까지 직접 경험한 바로는 중에서 중상 정도.
그것이대체복무니까 : 난이도가 다르다 보니 어느 부서가 편한지, 어느 기관이 힘든지 소문도 자주 돈다. 부서가 6개월에서 9개월마다 바뀌는데 그럴 때 업무 조정을 하는 편이다. 다만 몸이든 마음이든 최적의 상태가 아닌 대체복무요원을 위한 제도나 지침이 따로 없어서 기관에서 알아서 조율해야 한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다.* 신체등급 4급 판정을 받은 대체복무요원도 현역 복무 판정을 받은 대원과 똑같이 일해야 한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보인다.
* 군인과 사회복무요원은 질병이나 상해 등으로 복무를 지속하기 어려운 경우 소집을 해제하는 복무 부적합 제도가 있지만, 대체복무요원은 관련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체복무와헤어질결심 : 교도관들 사이에서는 수용자 수가 많을수록, 경비등급*이 높을수록 업무 강도가 높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체복무요원의 경우에는 교도소 규모 대비 대체복무요원이 몇 명인지에 따라 차이가 있다. 교도소 규모는 큰데 대원이 적은 곳이 있고, 규모는 작은데 대원은 많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 복무관리관, 과장, 소장이 어떤 스타일인지도 중요하다. 대원의 고충을 헤아리고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도 있지만, 모든 기관이 그런 것은 아니다.
* 교정시설은 경비등급에 따라 중경비시설, 일반경비시설, 완화경비시설, 개방시설 등으로 분류된다. 중경비시설에 가까울수록 수용자에 대한 관리와 감시가 엄격해지고, 개방시설에 가까울수록 수용자의 자율성이 일부 보장된다.
우리교도소정상영업합니다 : 교정시설에서 일하는 만큼 지켜야 하는 규칙이 많고 신중한 자세로 업무에 임해야 하는 측면이 있지만 익숙해지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오히려 업무보다 동료 대체복무요원이나 직원들과 맺는 관계가 더 힘들 때가 있다.
자유시간에는 주로 무슨 일을 하나요?
언제까지3년복무하게할거야 : 쉴 때는 주로 누워 있고 가끔 문화생활을 즐긴다. 친한 사람이 많지 않아 보통 혼자 보낸다.
열려라소집해제의문 : 책을 읽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 외출인 날에는 산책을 다니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 미리 약속을 잡고 지인들과 만나기도 한다. 초반에는 피곤해도 외출이면 꼭 나갔는데, 요즘에는 생활관에 남아서 잠을 보충할 때도 있다.
숨참고출근다이브 : 외출을 할 때면 근처 헬스장에 다닌다. 친구들과 만나서 저녁을 먹기도 하고, 종종 데이트도 한다. 빨래하고 청소하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그것이대체복무니까 : 친구들과 전화를 자주 한다. 다만 편하게 전화할 만한 공간이 부족해서 전화할 때마다 생활관 곳곳을 헤매야 한다. 여호와의증인 대체복무요원 중에서도 가까워진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리울 때가 많다.
대체복무와헤어질결심 : 체력단련실에서 운동을 자주 한다. 기구가 많지는 않아도 기본적인 것은 갖춰져 있다. 운동하는 대원들이 있어서 서로 자세를 봐주기도 하고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외국어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다. 3년이면 외국어 하나 정도는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의욕만큼 잘되지는 않는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우리교도소정상영업합니다 : 교육센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입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받았다. 근무복, 생활복, 양말, 수건, 속옷, 신발 같은 것이었는데 같은 생활실에 있던 한 대체복무요원이 크기에 안 맞는 옷을 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마침 복무관리관과 행정 대원이 생활실마다 돌아다니면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던 참이었다. 생활실에 찾아온 복무관리관에게 크기가 다른 옷을 받았다고 이야기하자 복무관리관이 갑자기 옆에 있던 행정 대원에게 일 처리를 어떻게 한 거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행정 대원은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고, 옷을 잘못 받은 대원은 자기가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당황스럽고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언제까지3년복무하게할거야 : 관료제 특성일 수도 있고, 교정시설 특성일 수도 있는데 위에서 아래로 지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대체복무요원은 교정본부, 교도소장, 과장, 복무관리관으로 이어지는 하향식 의사결정과정의 끄트머리에 있다. 그러다 보니 불합리한 일을 겪어도 참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번은 전체 대원이 모여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회의도 하고 안건도 조율해서 복무관리관과 협상했던 적이 있다. 그간 매달 진행되는 간담회가 주로 복무관리관의 교육 시간이었다면, 반대로 대원들이 복무관리관에게 요구 사항을 전달한 것이다. 바라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소하게나마 변화가 생겨서 다들 뿌듯해했다.
열려라소집해제의문 : 일을 하다 보면 담당 직원과 마찰이 생기거나 대원들끼리 갈등이 벌어질 때가 있다. 일하는 방식이 달라서든, 업무 분배가 고르지 않아서든, 서로 오해가 생겨서든 팀워크가 안 만들어지기도 한다. 내가 일하던 부서에서도 직원들은 대원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대원들은 직원들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생각해서 충돌이 있었다. 그때 복무관리관이 직접 나서서 직원들도 설득하고 대원들도 상담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덕분에 상황이 많이 개선됐다. 그 일 이후로 직원들에 대한 신뢰도 생기고 대원들도 서로 가까워졌다. 복무관리관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끼는 계기였다.
숨참고출근다이브 : 복무관리관이 갑자기 불러서 개인적인 의견을 물어볼 때가 있다. 직접 관련되지 않은 문제도 전후 맥락에 대한 설명 없이 ‘비여호와의증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며 질문해서 난감한 경우가 종종 있다. 한번은 전체 대원이 모여서 생활 규칙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다. 복무관리관이 나를 지목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길래 나름대로 답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복무관리관이 ‘그런데 여호와의증인은 이렇게 하기로 했으니까 이번에는 그냥 그렇게 하자’라고 말을 끊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여호와의증인 대원들과는 어느 정도 사전 논의가 끝난 사안이었다. 나한테도 미리 공유를 해주든지, 아니면 애초에 물어보지 말든지. 어차피 반영할 생각이 없는데도 구색 맞추기 식으로 의견을 물어볼 때면 들러리를 서는 기분이 든다.
그것이대체복무니까 : 여호와의증인 대체복무요원 중에는 같이 복무하는 비여호와의증인 대체복무요원이 소집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유독 궁금해하는 이들이 있다. 때로는 신문 기사를 검색하거나 언론 인터뷰를 찾아보기도 한다. 평소에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던 어떤 대원이 뜬금없이 “기사 잘 봤다”라며 말을 걸어서 당황했던 일이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서 살펴봤다고 하는데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어색하게 자리를 피했다. 처음에는 그 대원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이후에 비슷한 일을 몇 번 더 겪었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표현인지도 모르지만, 소수자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부담이 된다.
대체복무와헤어질결심 : 여기서 생활하면서 놀랐던 게 한 가지 있는데, 몇몇 여호와의증인 대체복무요원이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에서 유행하는 말을 자주 쓴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이니까 유행어겠지만 그게 ‘이기야노체’나 ‘앙 기모띠’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신에게 축복을 비는 행동에서 유래했다는 이유로 건배를 하지 않는 이들이 해당 표현의 유래와 출처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게 모순이라고 느꼈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동료가 그런 표현을 자주 써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하루는 그런 표현이 왜 잘못됐는지 설명했는데 그다음부터는 그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문제의식이 얼마만큼 공유됐는지는 모르지만 반가운 변화였다.
([인터뷰] 대체복무 ABCD 2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