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래(대체복무 중인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표류기〉는 현재 대체복무 중인 병역거부자들의 생생한 경험을 담은 연재 기획입니다. 11월 초까지 매주 2편씩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인터뷰, 제도, 생활, 업무, 신념, 관계를 키워드로 하는 일곱 편의 글을 통해 대체복무의 현실을 들여다봅니다.
대체복무요원들이 모이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이럴 줄은 몰랐다.” 딱히 기대가 높았던 것도 아니다. 국회든 국방부든 군대와의 형평성 운운하며 징벌적인 기간과 무리하게 합숙생활 만을 고집했을 때 대충 예상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 아무리 밑바닥을 상상했어도 아예 바닥이 없을 줄이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다는 뜻은 아니다. 군대와 일일이 비교하겠다는 것도 수용자 대하듯 고강도의 통제와 규율을 부과했다는 뜻도 아니다. 말 그대로 무無,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혹은 적어도 내가 복무하고 있는 이곳은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가변적인, 참으로 현-대-적-인 세계다. 군대도 민간도 그렇다고 감옥도 아닌 동시에 그 모든 요소가 공존하고 경합하는 곳.
한쪽에는 대체복무요원이, 다른 한쪽에는 복무관리관과 결정권자(과장과 소장)가 놓인 채, 그 속에서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서로를 간보며, 어르고 달래며, 때로는 위협하며 생활관의 분위기를 만들어나간다. 이로 인해 대원들의 자율성이 상당 정도 보장되는 곳부터 과도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곳까지 천차만별의 복불복 대체복무가 펼쳐진다. 대원들은 끊임없이 다른 기관의 상황을 알아보고 서로 비교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복무관리관들도 부단히 알아보고 비교하고 문제를 무마하는 가운데, 균형을 맞춰달라는 대원들의 민원에 교정본부는 기관마다 형편이 다르니 기관장의 재량에 맡긴다는 대답을 반복한다.
아침 점검을 정식으로 하는지 마는지, 생활관 안에서 하는지 밖에서 하는지, 복무관리관이 하는지 대표 대원이 하는지 기관마다 다를 이유가 있을까? 대원에게 사정이 생겼을 때 외출을 일찍 보내줄 수 있는지, 외출을 한꺼번에 나가야 하는지 제각각 시간을 달리 나가도 되는지, 대원마다 정해진 요일에 나가야 하는지 자유롭게 선택해도 좋은지, 50%라는 외출 제한 규정을 매일 정원의 50%로 볼지 개인별 50%로 보고 주당 3.5일 부과할지는 어떠한가? 생활관 안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라면은 되는지, 배달음식은 되는지, 조리는 되는지, 외부 음식을 사 들고 와도 되는지는?
이와 같은 사례들은 끝도 없이 찾을 수 있다. 휴식 시간에 눈을 붙일 수 있는지, 이불은 덮을 수 있는지, 체력단련실을 쓸 수 있는지, 복무관리관이 생활실의 정리정돈 상태를 살필 때 일과 시간과 휴식 시간, 평일과 휴일을 똑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 그 기준은 어느 수준에서 정할 것인지, 예를 들어 관물대 위에 개인 짐을 올려놓아도 되는지, 된다면 어디까지 되는지, 매달 한 번씩 진행되는 환경심사를 할 때는 누가 언제 며칠 동안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사물함은 열어볼 것인지, 아침 기상, 밤 취침, 소등 및 이동 제한 시간은 어찌할 것인지 등등. 더 소소하디 소소하게 늘어놓을 수도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는 것, 다리를 꼬는 것, 지퍼를 끝까지 올리지 않는 것, 행정실에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는 것은 어떨까? 될까 안 될까?
자치와 정치 사이에서
당연하게도 이 모든 것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명확히 규정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이는 대원들의 자치 영역이어야 하므로.
현재 이 회색 지대에 대한 우선적인 권한은 복무관리관에게 주어져 있다. 명확한 규정도 없는데 한쪽이 큰 권한을 갖다 보니 생활상의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별다른 절차 없이 지침이 하달된다. 대원들이 잘하는 것처럼 보이면 외출 제약을 풀어주었다가, 못하는 것처럼 보이면 다시 조이는 식이다. 하지만 대원들이 잘한다는 게 뭘까? 결근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고 업무에 성실한 것? 당연히 아니다. 복무관리관들이 지시한 세세한 지침들을 얼마나 집단으로 잘 지키는가, 얼마나 서로를 잘 단속하는가이다.
대체복무의 핵심은 공익성을 띤 노동을 제공하는 것인데, 결국 생활상의 규정들을 늘렸다가 줄였다가 강화했다가 완화했다가 줄다리기 엎치락뒤치락 진 빼고 감정 소모하다 시간 다 간다. 매월 조사하는 인권진단과 3개월마다 실시하는 복무만족도 조사에서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보복성 조치를 당하거나 대원들의 요구 사항이 묵살되고, 좋은 평가가 나오면 요구 사항을 하나 들어준다든가 하는 식이다. 각 소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교정본부는 이 상황을 3년째 방치하고.
합숙 생활을 하는 이상, 그것도 교정시설이라는 특수한 보안 시설에서 근무하는 이상 관리와 통제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교정본부의 대전제를 이룬다. 맞다. 하지만 그렇게 얼버무리지 말고 특수 보안 시설에서의 합숙 생활 때문에 부득이하게 제약돼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범위를 명확하게 긋고 근거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생활상의 많은 측면은 대원들이 자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하며, 법적 규정은 이를 뒷받침하고 복무관리관은 이를 지원하는 데 그쳐야 한다.
대원들의 자치회라 할 수 있는 대표 대원과 각 생활실의 실장들은 규정상 기관장이 임명하게 되어 있으며, 권한을 위임받은 복무관리관이 대원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고 지명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대체역 제도에서 대표 대원과 생활실장에 관한 사항은 ‘자치’가 아니라 ‘복무관리’ 아래 분류되어 있다. 자치와 관련한 내용은 교육센터에서 대원들이 자치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전부이다. 각 기관에 배치된 이후로는 자치를 아예 인정하지 않고(그렇다고 교육 센터에서 자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복무관리관이 자신들의 뜻을 전달하고 대원들을 대신 상대하는 중간 관리자를 뽑겠다는 뜻일까? 하지만 그렇다 한들 누군가는 자기 목소리를 내며 대원들의 의사를 전달할 수밖에 없고 복무관리관과 갈등하거나 교섭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생활상의 모든 면에서 사사건건 부딪는 푸닥거리의 무한 반복이다.

가로가 긴 직사각형 캔버스에 검은색과 하얀색이 뒤섞인 회색의 추상 이미지가 펼쳐져 있다. 위에서부터 4분의 3에 해당하는 영역에는 세로를 향하는 검은색이, 나머지 4분의 1에 해당하는 영역에는 가로를 향하는 흰색이 지배적인 이미지다.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하는 지평선으로도,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힌 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검은색과 흰색이 불타오르는 현장처럼 보이기도 하고, 모든 색이 사라진 세계에서 검은색과 흰색만이 남은 잔해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 rawpixel.com/Freepik)
회색, 그리고 다시 회색
현재 대체복무 현장은 군대 내무반, 직원 기숙사, 교도소 수용동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인 상태에 있다. 일선의 복무관리관과 대원들에게 갈등과 그 해결을 떠넘긴 교정본부의 무책임한 태도는 대체복무가 어떤 제도여야 하는지, 생활관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하는지 충분한 고민도 숙의도 없었음을 짐작게 한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대체복무제도를 누더기로 만든 정치인들과 대원들을 협의하고 행동하며 스스로 결정하는 정치 주체로 상상하지 못하는 인식의 한계 탓이 클 것이다.
공식 용어상 ‘개인 신념’으로 분류되는 대원들은 본디 ‘정치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라고 할 수 있다. 순전히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순전히 종교적인 이유로 병역거부를 선택한 이들도 있고, 양심과 신념의 모양 역시 평화주의, 페미니즘, 비거니즘, 반군사주의 등 다양하지만, 비여호와의증인 대체복무요원은 지극히 정치적인 신념에 따라 군인이 되기를 거부했다.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요원이 된다고 해서 정치성이 탈각되는 것도 아니고 탈각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습게도 대체역법은 정치 행위를 버젓이 경고 사유로 적어 놓았지만[1], 대체복무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는 종교 신념과 정치 신념 모두 최대한도로 보장하는 것이 마땅하다.
합숙 형태를 당장 바꿀 수 없고, 집단생활을 하는 이상 규칙과 조율이 필요하다면, 대원들이 직접 ‘정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맞다. 업무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수면 관리를 하는 것이 대원의 의무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 대원이 10시에 자야 하며 이후로는 돌아다녀서도 안 되고 돌아다닐 경우 녹화된 화면을 돌려서 벌점을 부과할 수 있다는 일방적 관리와 통제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대표와 생활실장 선출부터 시작하여 민주적 의사결정 절차를 보장하는 일, 복무관리관의 업무를 말 그대로 복무관리와 행정 업무를 중심으로 재설정하는 일, 과도한 조처에 대한 대원들의 거부 권한과 문제 제기 통로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일이 뒷받침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대체복무요원들이 단순한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판단하고 주장하며 행동하는 정치적 주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 근본적인 문제가 비단 자치 영역뿐만 아니라 복무관리관과의 관계, 다른 직원과의 관계, 업무지의 성격, 관리규칙의 몇몇 제약들, 정치 신념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 인권진단과 복무만족도 조사의 형해화 등 산적한 문제들과도 직결된다. 코로나 환자가 나왔다고 외박을 자르느니 외출을 줄이느니,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김없이 들썩이는 생활관을 보면 매번 새삼스럽다. 이럴 일인가?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설마 교정본부도 이럴 줄 몰랐나? 우리 모두 이럴 줄은 몰랐던 것인가? 폐쇄성이야말로 대체복무의 교정시설 일원화가 가져온 가장 큰 폐해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회색 지대에서 서로의 발목을 붙잡고 표류하는 일이 그만 멈추기를 바란다. 3년이라는 한 바퀴가 돈 이 시점에서 충분히 언어화되고 충분히 공유되기를, 충분히 검토되고 충분히 논의되기를 바란다. 적어도 그 바퀴만큼은 나아가기를, 우리가 다른 곳에 서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언제까지고 이럴 줄은 몰랐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일이니.
각주
[1] 대체역법 제24조 2항 2호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에 가입하는 등 정치적 목적을 지닌 행위를 한 경우”는 최근 다음과 같이 개정되었다. “2. 정치단체(「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33조 제1항에 따른 정치단체를 말한다)에 가입한 경우 / 2의2. 근무시간 중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33조 제2항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경우”. 근무시간 중으로 한정된 것은 긍정적인 변화이나 정치단체 가입이 금지된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