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이(대체복무 중인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표류기〉는 현재 대체복무 중인 병역거부자들의 생생한 경험을 담은 연재 기획입니다. 11월 초까지 매주 2편씩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인터뷰, 제도, 생활, 업무, 신념, 관계를 키워드로 하는 일곱 편의 글을 통해 대체복무의 현실을 들여다봅니다.

 

동물을 먹지 않기로 정한 뒤부터 어디를 가든 먹는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직장 회식이나 친목 모임에 참석할 때는 물론이고 짧은 여행을 다녀올 때도 그곳에서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살펴야만 했다. 신발이나 옷을 구매할 때, 화장품을 구매할 때도 비건 제품을 찾았다. 일상에서도 고민이었던 만큼 합숙 복무가 기본인 대체복무를 하면서 비건으로 지내는 일이 교정시설에서 얼마나 가능할지 염려했다. 그러나 처음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도 지금 내게는 비건 식단이 보장되고 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작은 발걸음을 내딛기

대체복무 소집 안내를 받았던 날이 생각난다. 심사를 통과하고 대기 과정을 거쳐 드디어 복무가 시작된다는 사실에 기대와 걱정이 교차했다. 안내받은 날로부터 소집일까지 시간이 얼마 없어서 조급한 마음도 들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밀린 일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나머지 비건 식사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못했다. 들뜬 마음이 가시고 소집 안내 공지를 다시 읽어보니 채식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입교 전에 미리 연락을 달라는 안내와 함께 병무청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안내받은 부서에 전화를 걸었고, 며칠 뒤 대체복무 교육센터에서 연락을 받았다. 전화를 건 영양사는 비건 교육생이 처음이라며 무척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내게 ‘비건’이 무엇인지부터 질문했다.

모든 대체복무요원은 교육센터에서 3주 동안 교육생으로 생활해야 한다. 그러나 이전에 비건 교육생의 사례가 없었고, 영양사는 비건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고 하니 걱정이 됐다. 하지만 사전에 몇 번의 연락이 오간 덕분에 내가 교육센터에 도착한 날에는 이미 영양사와 조리사들이 비건 식사에 대한 많은 걸 알아보고 공부한 상태였고, 교육센터 첫날부터 별도의 비건 식사를 준비했다. 교육센터에서 몇 차례 면담한 영양사는 필요한 것이 있는지 끊임없이 살폈고, 혼자만 비건 식사를 하는 상황이니 최대한 기호를 반영하겠다고도 했다. 손수 만든 비건 국과 반찬, 다양한 두부 요리가 제공됐는데 먹기 좋고 맛도 있었다. 그렇게 50차례가 넘는 비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또 다른 걱정이 밀려왔다. 실제로 3년을 지내게 될 교정시설에서 비건 식사가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차원에서는 법무부와 교정본부가 채식 관련 규정을 마련하지 않고 있고, 개별적인 차원에서는 내가 배치될 교정시설에서 비건 식사를 따로 조리한 사례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교육센터 영양사의 적극적인 조력 덕분에 내가 배치될 교정시설의 영양사와 소통하게 됐고 그곳에 도착한 첫날부터 비건 식사를 받았다. 이로 인해 대체복무요원에게 비건 급식을 제공한 선례가 남게 됐다.

교육센터에서 마주했던 또 다른 문제는 지급 물품에 동물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벨트와 근무화에는 동물 가죽이 포함되어 있었다. 지급 벨트와 근무화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안내를 받고 해당 물품은 사양했다. 다만 대체용품은 주어지지 않았다. 벨트는 교육과정 이후 외출을 나가 시중에서 구했고, 근무화는 동물 성분이 없는 지급 운동화로 대체했다. 동물성이 든 의류를 착용할 수 없다는 내 이야기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자세한 이유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색이나 모양이 지급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무방할 것이라는 말은 들었다.

 

교육센터에서 처음 받은 비건 식사. 밥, 김자반, 양배추 샐러드, 부추 무침, 연두부, 아몬드 음료가 플라스틱 도시락에 담겨 있다. 다음날부터는 다시마무챗국을 비롯한 국이 곁들여졌고, 반찬도 다양하게 나왔다. (사진 재이 제공)

교육센터에서 처음 받은 비건 식사. 밥, 김자반, 양배추 샐러드, 부추 무침, 연두부, 아몬드 음료가 플라스틱 도시락에 담겨 있다. 다음날부터는 다시마무챗국을 비롯한 국이 곁들여졌고, 반찬도 다양하게 나왔다. (사진 재이 제공)

 

예외가 아닌 원칙을 만들기

사실 채식을 하는 대체복무요원이 내가 처음은 아니었다. 다만 그동안은 사비를 들이거나 가족의 지원을 받는 개인적인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비건이 아니었던 대체복무요원이 복무 중에 채식을 결심하고 비건 식사를 요청한 경우 거절된 사건도 있었다. 교육센터의 어떤 직원은 교육센터와 다르게 교정시설에서는 비건 식사가 불가능할 가능성이 있으니 미리 방법을 마련하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종합하면 내가 비건에게 호의적이고 적극적이었던 영양사와 조리사들과 ‘운 좋게’ 만난 덕분에 비건 식사를 보장받는 셈이다. 지금처럼 제도가 부재한 상황이 이어진다면 내 사례는 예외로 남을지도 모른다. 제도의 부재는 선택의 폭이 좁고 협상에 유리하지 않은 비건 대체복무요원에게 커다란 곤혹이 된다.

비건 식사 보장이 단지 담당자의 선의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다. 교육센터의 영양사는 비건 식사에 관한 근거를 국방부의 채식 보장 규정에서 살폈다. 이를 계기로 관련 규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보았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비건 군인이 훈련소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신념과 배고픔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수준이었기에 생활의 피폐함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2020년이 되어서야 국방부에 채식 규정이 만들어졌다. 채식주의자 군인에게 “밥, 김, 야채, 과일, 연두부 등”을 제공하며 “우유 대신 두유를 지급”하라는 구체적인 조항이 마련된 것이다. 그 결과 부대에서 혼자 비건인 군인을 위해 식사가 별도로 조리됐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했다.*  대체복무를 하며 비건 식사를 보장받고 있는 내 경험과 비슷하다.

*다만 이는 병사에게만 적용되고 있으며, 부사관 이상의 계급부터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병사가 아닌 비건 군인은 개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실정이다. 다음 기사를 참조. 「전투식량에는 밥 자체에 동물성 재료가」, 한겨레21 제1424호, 2022. 8. 7.

그러나 교정시설은 달랐다. 교정시설 역시 수용자의 채식 보장에 관해 꾸준히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적과 권고를 받아 왔다. 2012년에는 병역거부로 수감된 채식주의자가 인권위에 진정을 내기도 했다. 해당 교정시설에서는 채식은 단순한 취향이기 때문에 일일이 신경 쓸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인권위는 채식주의 신념이 확고한 수용자에게 채식 식단을 제공해야 한다는 권고를 냈다.** 2022년에는 교정시설의 불충분한 비건 식사 탓에 건강이 상한 수용자가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권고를 통해 비건 수용자의 신념이 존중받지 않으면 “삶이 피폐해지고 건강을 잃어” 끝내 “소신을 포기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이어서 헌법과 국제 인권 규범에 따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법무부가 채식 식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 교도소 내 채식권 보장 권고 결정, 전쟁없는세상, 2012. 12. 9.

***「인권위 “교정시설도 ‘채식 식단’ 제공해 수용자 존엄성 보장해야”」, 한겨레, 2022. 5. 10.

교정시설에서 생활하는 대체복무요원 역시 이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건강권 보장은 기본적인 권리인 만큼 비건 식사는 당연한 요구임에도 법무부는 아직도 채식 보장 규정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똑같은 합숙 복무라고 하더라도 군인은 관련 규정이 있지만, 대체복무요원은 자체적인 규정이 없어 국방부 규정을 준용해서 비건 식사를 요구해야 하며, 수용자는 인권위 권고 외에 근거 규정이 없다. 만약 비건 병역거부자가 대체역을 거부하고 수감 생활을 하게 된다면 인권위의 권고에도 규정을 마련하지 않은 법무부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의 자유”가 침해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교정시설에서 대체복무를 하는 비건 병역거부자가 법무부 규정을 통해서 비건 식사를 보장받는 변화는 수용자의 비건 식사 보장과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개인적 해법을 넘어서

대체복무를 지원하는 인원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비건 대체복무요원도 많아질 것이다. 법무부는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비건 식사를 보장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조리 체계를 정비해서 비건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를 지원해야 한다. 법적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비건 대체복무요원이 하나씩 협상하고 요구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 펼쳐지거나 아니면 개인이 비용을 부담하면서 식사를 해결하는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미 비건 수용자에 관한 인권위 권고가 나왔고, 채식 군인에 관한 국방부 규정이 생긴 만큼 법무부에서도 동물권과 비거니즘을 신념으로 대체복무를 선택한 이들을 위해 정당한 보장 체계를 갖춰야 한다. 더 나아가 집단 급식에서 동물성 재료 비율을 줄이고 모두를 위한 비건 식단을 확대하는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비건 식사로 고민하는 대체복무요원이 내가 마지막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