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열쭝, 인터뷰이: 쭈야

 

전쟁없는세상은 운영위원회를 두고 단체의 운영과 사업, 활동에 대한 중요한 사항을 의논하고 결정합니다.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은 모두 8명으로 제각각 멋진 매력을 뽐내는 평화활동가들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빛나는 전쟁없는세상의 평화활동가들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역시나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을 역임했던 열쭝이 인터뷰어로 나서 8명의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을 인터뷰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두 차례에 나눠서 발행할 예정입니다. 첫 번째는 오리, 우공, 쭈야, 쥬의 인터뷰입니다.

 

[평화를 만나다] 군대 안 가서 (가까스로) 사람 된 우공
[평화를 만나다] 오리의 미래는 ‘노년연금 받는 전문데모꾼’. 안 되면 말고
[평화를 만나다] 전쟁게임 만드는 평화주의자 ‘평화운동의 챗쥬피티’

어디선가 탱크 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진을 봤다면, 당신은 아마도 쭈야를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 쭈야는 연극연출을 하는 연극인인 동시에 밴드를 하는 음악인이기도 합니다. 사회운동을 하는 예술인, 예술행동을 하는 활동가, 두 정체성을 교차하고 통합하는 쭈야의 다음 작품이 무엇인지 무척 기대되지 않으세요?

 

쭈야는 전없세를 어떻게 알게 되었고 어쩌다가 사무국 활동가로 일하게 되었나요?

이전에도 전없세를 알긴 했고요. 2016년에 전없세 ‘무기거래감시 코디네이터’ 채용 공지가 나서 지원했다가 떨어졌어요. 그런데 그때 채용을 준비하면서 어떤 곳인지 자세히 알아보다가 전없세에 더 관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책모임에도 나가고 DX KOREA 무기박람회 반대 시위도 참여했는데요. 그러다가 그 때 뽑힌 분이 금방 그만두셔서 제가 무기거래감시 코디네이터를 하게 된 거예요. 사무국에서 연락이 와서 바로 “제가 할게요” 했어요. (일반 시민으로 참여하던) 전없세 책모임을 나중에는 제가 진행했네요. (웃음)

 

평화운동을 하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뭘까요?

제일 큰 건 (해군기지 문제로 뜨거웠던) 강정이었어요. 제가 제주에서 대안학교 활동을 하면서 2015년부터 강정마을에 왔다갔다 했거든요. 그러면서 전쟁에 대해서, 또 평화와 군사주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활동가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전없세에서 활동가로 일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도 되게 컸어요.

 

실제로 전없세에 들어가 보니 어땠어요?

들어와서 보니 무기거래감시 캠페인이 전없세의 ‘미래 먹거리 사업’이더라고요. 저는 이제 막 활동을 시작했는데…. (웃음) ‘이건 내가 할 게 아니라 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이 가져갈 캠페인 아닌가’ 하는 고민이 컸어요. 많이 막막하고 어려웠죠. 활동하면서 자부심은 많이 생겼어요. 알면 알수록 무기거래가 전쟁의 근원이고, 내 삶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더라고요. 제가 되게 중요한 문제를 맡은 활동가인 거예요. 더 좋은 활동가이자 더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느낌이 있었죠. 이 군사주의 사회가 바라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이게 지나고 보니 그래요. 지나고 보니. 사실 활동 초반에는 그런 면이 잘 안 보였어요. 배우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 더 많아서, 마냥 즐거웠다고 말하기는 어렵네요.

 

전없세 사무국 활동가 시절의 쭈야. 2017년 무기박람회 아덱스 퍼블릭 데이에서 시민들에게

전없세 사무국 활동가 시절의 쭈야. 2017년 무기박람회 아덱스 퍼블릭 데이에서 시민들에게 무기박람회의 문제점을 알리는 유인물을 나눠주는 사진.

 

사무국 활동을 왜 그만두었는지, 왜 전없세를 완전히 떠나지 않고 운영위원이 되었는지도 이야기해 주세요.

저는 주3일 출근하는 반상근 활동가였어요. 그게 저에겐 되게 중요했어요. 연극 활동도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3년을 일했는데, 제가 맡은 활동이 주5일 상근으로 전환되었어요. 무기거래감시 캠페인에 더 집중하기로 했거든요. 저도 동의했고요. 하지만 연극을 해야 하니까 제가 일할 수는 없었죠. 그래도 운동에 대한 의지는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운영위원은 계속하게 됐고요.

사실 활동가로 일할 때는 연극 일과 전없세 일정이 겹치는 게 좀 힘들었는데, 지금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활동하기 때문에 더 좋아요. 또 사무국 활동가는 뒤에서 지원해야 하니까 데모할 때 앞에 못 나갔는데, 지금은 저에게 직접행동을 시키니까 재미는 더 있어요. (웃음)

 

쭈야는 예술 활동을 통해서 쭈야의 방식으로 운동을 하는 것 같아요. 어떤 활동을 하는지 간략하게 소개해 줄 수 있을까요?

우선 연극을 창작하고 연출하는 활동이 있어요. 제가 대학에서 국문학과를 다녔거든요. 희곡 창작하는 학회를 통해 연극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바디퍼커션은 ‘내 몸은 악기다. 모든 몸은 고유하고 소중하다’는 취지로, 몸을 두드려서 나는 리듬과 소리로 음악을 만드는 공연예술이에요. 또 강정 생명평화대행진에서 만난 분이랑 ‘몹쓸밴드(몹시 쓸모있고 싶은 밴드)’를 만들어서 투쟁 현장에 공연으로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요. 요즘에는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를 예술적으로 여행하는 다크투어 프로그램도 만들고 있어요.

 

아이구, 참 많다. 그중에서도 연극의 비중이 가장 큰데, 주로 어떤 주제로 어떤 작품을 만드나요?

집중하는 주제는 페미니즘이에요. 교제폭력‧가정폭력‧임신중지 같은 이슈들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8년에 쓴 ‘두 줄’이라는 작품이고요. 그때 제가 정말 삶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힘들었는데,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으로 겪는 경험을 마치 토해내듯이 썼어요. 그게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선정된 거예요. 3년간 지원도 받았고 스스로 ‘내가 연극인으로 인정받는구나’ 생각할 수 있었죠. 이 길을 가야겠다는 확신도 생기고. 그래서 (연극 활동을 위해) 전없세 사무국 활동을 그만둘 수 있는 계기도 된 것 같아요.

 

쭈야의

쭈야의 다양한 예술 활동 중 하나인 바디퍼커션그룹 녹녹. 몸을 이용해 내는 소리로 아름다운 연주를 한다. 누구나 한 번 보면 섭외 안 할 수 없는 굉장히 유니크한 밴드. 2023년 전쟁없는세상의 무죄파티 때 공연하는 사진.

 

서울문화재단이 잘못했네. (웃음) 사회적인 주제를 예술에 녹여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 같아요. 자칫 메시지가 강하면 거부감도 들 수 있고.

그 부분은 계속 고민스러워요. 관객은 연극을 보러 온 거지, 세미나에 온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하면 와닿게 할지… 제가 연극을 창작하는 목표는 관객들이 연극을 보고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거니까요. 연극이 참 좋은 게, 영화나 드라마보다 심의로 인한 문턱이 낮아요. 라이브니까 무대에서 그냥 공연을 해버리면 되거든요. (웃음) 그래서 연극인 중에서는 사회적인 주제를 작품에 담는 분들이 많아요. 연극 외길 인생을 걷는 분들이 박근혜정권 당시 블랙리스트에도 많이 올랐잖아요. 사회에 대한 목소리를 내겠다고 선택한 분들이 많은 거죠. 타협 안 하고 고집 세고.

 

쭈야도 고집이 세요?

음, 고집이… 고집이 세죠. (웃음) 제 신념과 생각을 바꾸지 않으려는 고집이 세요. 하지만 타인을 내 신념대로 바꾸려는 욕망은 갖지 않아요. 누구 때문에 내가 바뀔 수는 있지만, 내가 누구를 내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는 거니까요.

 

쭈야의 예술 활동 중에는 2년 전 무기박람회에서 전시된 탱크 위에 올라가 바이올린을 켰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그때 마음이 어땠어요?

전시회장에 들어가니까 엄청 두근두근한 거예요. 제복 입은 남성들이 여기저기 서 있는데 되게 무섭더라고요. 공연장 설 때보다 훨씬, 정말 비교도 안 되게 떨렸어요. 게다가 제가 한 번에 탱크 위로 올라가야 하잖아요. 미리 등반 연습을 할 수는 없으니까 탱크를 보면서 ‘저기를 밟고 저걸 잡아서 올라가야지’ 그런 시뮬레이션을 계속했어요. 그렇게 타이밍을 보면서 세 번인가 머뭇머뭇 했는데요. 그러다가 ‘나는 혼자 올라가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눈물, 분노를 짊어지고 올라가는 거다. 당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첫발을 내디딘 다음에는 망설임 없이 그냥 죽 올라갔어요. 막상 연주를 시작하니까 그때부터는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쭈야의 대표 사진

2022년 무기박람회 DX KOREA 행사장에 전시된 장갑차 위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쭈아(왼쪽)와 펭귄(오른쪽).

 

쭈야는 예술가이자 활동가인데, 어떤 이름이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느끼나요?

저의 모든 활동을 통칭하는 ‘예술행동가’라는 이름이요. 큰 우산처럼 다 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예술가가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건 예술이 아니다. 예술을 도구를 삼아서 활동을 하는 거다”라고 말하기도 해요. 그런데 저는 ‘예술로 행동하는 사람’이자 ‘행동하는 예술가’, 이 두 개를 다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어요.

 

예술가와 활동가는 기질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아마도 서로를 꽤 답답해하지 않을까 싶은데, 쭈야는 어떻게 보면 경계인이잖아요. 중간에 낀 듯한 마음도 있겠네요.

지금도 그런 마음이 많아요. 예를 들어 활동가들이 캠페인을 기획할 때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어렵지 않게 언어를 풀어낼까’ 하는 고민보다는 아무래도 정확한 진실과 문제의식을 전달하는데 좀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반대로 예술가들은 활동가들만큼 사회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모습이 좀 아쉽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활동가들만큼 사회 정치적 이슈에 관심을 갖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 같은 교차적인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꼭 예술과 평화운동 뿐만 아니라 여러 영역에서요. 여러 생각이 모여 더 풍성해질 수 있게 말이에요.

 

요즘 꽂힌 주제는 뭔가요?

전쟁과 비인간 동물에 대한 거예요. 지난해에 북한이 미사일 쐈다고 서울시가 새벽에 재난문자를 보냈잖아요. 그때 우리집 고양이가 펄쩍 뛰어서 숨더라고요. 재난문자에 고양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안내가 없고, 나는 아마 못 데려갈 텐데 고양이는 덜덜 떨고 있고. ‘전쟁이라는 재난 앞에서 결국 약한 존재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구나’ 싶었어요. 그런 메시지를 담아서 작품을 만들고 싶은데, 아직은 자료 조사 단계예요. 그리고 언젠가는 무기거래 문제를 기똥찬 작품으로 만들어서 올리고 싶어요. 평화를 만들기 위한 여러 활동 방식이 있을 텐데,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공연예술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니까요.

 

전없세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없세의 반군사주의 활동은 결국 우리 일상의 모든 이슈와 연결되어 있어요. 이런 의제를 다루는 전없세의 회원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시면 좋겠고, 더 많이 연결될 수 있게 주변 분들을 많이 꼬셔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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