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열쭝, 인터뷰이: 용석

 

전쟁없는세상은 운영위원회를 두고 단체의 운영과 사업, 활동에 대한 중요한 사항을 의논하고 결정합니다.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은 모두 8명으로 제각각 멋진 매력을 뽐내는 평화활동가들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빛나는 전쟁없는세상의 평화활동가들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역시나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을 역임했던 열쭝이 인터뷰어로 나서 8명의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을 인터뷰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두 차례에 나눠서 발행합니다. 두 번째는 악희, 뭉치, 가람, 용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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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웃고 시끄럽고 능글능글 농담도 잘 하고 짓궂은 장난도 잘 치지만, 전없세의 활동에 대해서 고민할 때 용석은 한없이 진지한 사람입니다. ‘관종 평화주의자’ 용석이 목말라 하는 관심을 지금 바로 보내주세요.  정말 좋아할 거예요.

 
용석은 어떻게 병역거부를 하게 되었나요?

2000년대 초반에 이라크 전쟁 등으로 세계적으로 반전운동이 크게 일어났는데, 당시 제가 있던 학생운동 조직이 주목한 게 병역거부였어요. 그렇다고 처음부터 제가 병역거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시나브로 생각이 스며든 것 같아요.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그냥”이에요. 한국 남성 대부분이 어느 정도 병역을 거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죠. 저 역시 특별한 양심이 있다기보다는 왜 병역거부를 하는지 설명해야 하니까 공부하다 보니 평화주의자가 된 거예요. 대단할 게 없어요.

 

결심을 실제로 옮기면서 어려웠던 점은요?

제일 망설여지는 건 아무래도 부모님 문제죠. 그래도 부모님이 제 활동을 존중해 주셨고, 병역거부에 대해서도 이해해 주신 편이었어요. 제 기억에 “병역거부 할래요” 하고 따로 말씀드린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하는 병역거부 운동을 보시고 대강 짐작하셨겠죠. 그러다가 제가 병역거부를 하고 법적인 절차가 진행되면서 확실히 알게 되셨어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전없세 사람들과 혜화역 앞에서 거리 캠페인 마치고 뒤풀이를 하는 중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어요. 재판 출석요구서가 나왔었나 아니면 경찰이 조사받으라고 연락했나 그랬다는 내용인데, 엄마가 거의 지구 종말을 목도한 듯한 목소리인 거예요. 전화 끊고 그 자리에서 제가 펑펑 울었어요.

 

2004년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행사 때 마로니에에서

2004년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행사 ‘군인을 집으로”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 하는 용석.

 

얼마 전 페이스북에 병역거부자들이 “제 잘난 맛에 사는 이들”이라고 썼던데요.

저도 그런 사람이니까 그렇게 쓴 거죠. 좋은 의미의 관종이에요. 자기가 최고이고. 이게 때로는 위험해요. 오만해지기도 쉽고, 일을 그르치거나 실수한 적도 되게 많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운이 좋았어요. 애정어린 스매싱을 날려줄, 좋은 사람들이 전없세에 많이 모였거든요. 일부러 ‘쟤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찍어서 친구가 되고 전없세에 불러온 게 아닌데 말이에요.

 

전없세 창립 때부터 함께 했죠?

전없세가 2003년에 창립총회를 했는데 그땐 사무실도 상근자도 없었어요. 2004년 1월 2일에 사무실이 생기고 저를 포함해 4명이 출근을 했죠.

제가 그해 2월에 대학을 졸업했는데요. 졸업도 하기 전에 전없세 일을 시작했어요. 앞으로 뭐 할지 고민하던 차에 어느 병역거부자가 “전없세를 월급 100만원 줄 수 있는 구조로 만들겠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월급을 주지 않고 정말 소액의 활동비만 주는 방식으로 단체를 시작했지만요. 그때 저는 전없세가 직장이라는 인식은 별로 없었고, 젊어서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했어요. 돈을 벌어본 적이 없으니 현실감각도 없었죠. ‘활동가도 노동자’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요.

 

병역거부 당사자이면서 병역거부 캠페인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게 어떤 장점과 단점을 주는지 궁금해요.

옛날엔 장점이 있었죠. 감옥 갔던 경험이 상담할 때 도움이 되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병역거부 한다고 꼭 감옥 가는 것도 아니고, 또 감옥도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생수를 사 먹는다는 거예요. 예전엔 배급 나오는 물을 마셨는데, 요즘 출소한 사람들은 “아니, 그걸 어떻게 위생적이라고 믿고 먹어요?” 그래요.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아요. (웃음)

단점은… 개인적 특성도 있는데, 저는 상담할 때 감정이입을 별로 안 해요. 제가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때로는 매너리즘으로 연결될 수도 있어요. 상담 활동을 오래 하면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전 당사자니까 더욱 ‘나도 다 해본 일이야’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는 거죠. 상담받는 사람에겐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말예요. 다행히 다른 멤버들이 저의 부족한 점을 채워줘요. 전없세는 모든 게 팀플이에요.

 

용석이 병역거부를 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병역거부의 맥락이나 방식도 다양해졌어요. 이런 변화를 마주할 때는 어떤 마음인가요?

티는 안 내지만 ‘나랑 사고가 다르구나’ 느낄 때도 종종 있어요. 그런데 저는 사회 변화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하기보다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남을까 고민하는 쪽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이 사람들과 함께 평화운동을 할까’ 생각하죠. 그리고 어차피 저는 이미 구닥다리니까. (웃음)

이 과정에 병역거부 경험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병역거부운동의 초창기 구호가 “이 사람의 생각에는 동의하지 못해도 감옥에 가두지 말자”는 거잖아요.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 사람의 양심을 존중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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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던 날, 헌재앞에서 한 기자회견장에서. 이날 병역법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확신하고 기자회견을 위해 아침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했다고 한다.

 

그동안 대체복무제도 도입되었죠. 지난해 창립 20주년을 맞으면서 새로운 비전을 만들었는데, 코디네이터로서 고민이 크겠어요.

그전까지는 병역거부자들이 시민불복종으로 감옥에 갔기 때문에 발언에 힘이 있었죠. 이제 다음 20년을 끌고 갈 캠페인을 만들어야 하는데… 단체와 동료들에 대한 신뢰가 높은 편이라서 큰 걱정은 없고 길을 찾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새로운 비전과 캠페인을 찾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죠.

 

지난 20년 사이 전없세의 활동가 처우도 많이 달라졌어요. 이제 좀 살 만한가요?

안 살 만해요. (웃음) 제가 지금 주4일 근무하잖아요. 월급이 줄어드니까 계속 적자라서, 모아둔 돈을 까먹고 있어요. 모은 게 많지도 않은데.

많은 변화가 있긴 했죠. 처음엔 아예 월급이 없었어요. 전없세가 2012년을 기점으로 월급을 지급했는데, 최저임금 기준에 맞추되 (재정적 한계가 있으니까) 활동가들이 주3일만 일했어요. 실제로는 주3일보다 더 했죠. 그러다가 조금씩 늘려서 지금은 다른 두 활동가는 주 5일, 저는 주4일 출근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계속 최저임금만 지급해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 뽑을 때 제약조건이 되기도 하고, 활동가가 전없세 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요.

 

병역거부를 실천하고 병역거부자를 지원하고… 어찌 보면 ‘병역거부 외길 인생’이잖아요. 다른 길을 가고 싶던 적은 없어요? 긴 세월 전없세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당연히 다른 일도 해보고 싶죠. 그런데 계속 활동가로 일한다면, 전없세 말고 다른 곳은 상상이 잘 안 가요. 그리고 병역거부는… 병역거부운동에서 전없세가 여전히 역할을 요구받고 있어서 계속하는 수밖에 없어요.

제가 ‘활동을 그만둘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는 거는 일단 ‘갈 데가 없어서 단체에 남아있지는 말자’, 그리고 ‘재미없어지면 일을 그만두자’는 거예요. 재미없는데도 활동을 계속할 사명감은 없어요. 그동안은 재미있었던 거죠. 물론 힘든 일은 있지만, 어디든 힘든 일은 있고, 그렇게 힘든 일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이 저는 좋아요. 그리고 이건 병역거부자의 장점인데 ‘내가 뭐, 감옥도 살았는데’ 하는 자신감이 있어요. (웃음).

저는 스스로를 노동자이자 자영업자로 생각하는 편이에요. 각각의 장점만 가져오는 거죠. 노동자 입장에서 ‘인생을 여기에만 매달리지 말자. 조직과 나를 동일시하지 말자’는 마인드를 갖고, 자영업자 입장에서 ‘조직의 성장이 나의 성장’이 되도록 하는 거예요.

 

2024년 청소년 책 를 출간하고

2024년 청소년 책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를 출간 한 뒤 김중미 선생님을 모시고 한 출간 기념 북토크에서 용석. 안타깝지만 책은 많이 안 팔리는 거 같다.

 

용석은 평화운동에 대한 책도 꾸준히 쓰고 있죠. 강연이나 북토크 행사도 많이 하고, 페이스북에서도 전없세 활동을 꾸준히 알려요. 인플루언서가 되는 부담은 없어요?

지금까지 평화운동에 대한 책을 3권 썼는데요. 앞으로는 평화운동책은 안 쓰고 싶어요. 밑천이 바닥 나서. (웃음) 지금은 프로야구에 대한 책을 쓰고 싶은데 되게 어렵네요. 제가 기아 타이거즈 팬인데, 올해처럼 기아가 야구를 잘하면 야구 보느라 책 쓸 시간이 없고, 기아가 야구를 못하면 야구책 쓰기 싫어지거든요. (웃음)

다른 운영위원들에 비해 팔로워가 많을 뿐이지 인플루언서는 아녜요. 페이스북에 글을 많이 올리는 건 자영업자 마인드로 하는 건데요. 그 때문에 사람들이 저를 활동가 정체성으로만 생각할 거라는 걱정은 없어요. 오히려 ‘활동가 이용석’을 더 알아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이소라를 가수로 보는 건 너무 당연하잖아요. 마찬가지죠. 다만, 제가 이 운동을 대표하는 사람처럼 되는 건 굉장히 부담이고 저도 경계하는 부분이에요. 그런 면에서 전없세의 강점이 있는데요. 단체 등록을 위해 서류상으로는 대표를 두고 있지만, 대표의 권한은 전혀 없어요. 함께 논의하고 책임지는 구조를 지향하고요. 그리고 상대적으로 사회적 자본이 많은 활동가들에게 정보나 관심이 쏠리는 것을 경계하면서, 주목 받는 자리에 여성 활동가들이나 경력이 짧은 활동가들을 세우려 해요.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운영위원 인터뷰 아이디어를 낸 게 저예요. 자랑하고 싶었거든요. 이상적인 상상을 현실에서 풀어내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이상주의자’이거나 ‘가장 이상적인 실천을 하는 현실주의자’라고요. 전없세는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함께 활동하는 곳입니다. 멋진 사람들은 멋진 사람들을 알아보니까, 회원들도 이렇게 멋진 분들이 모인 게 아닐까요? 멋진 사람들끼리 더 좋은 활동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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