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열쭝, 인터뷰이: 뭉치
무기박람회 행사장 탱크 위에서 발레를 추는 게 꿈인 뭉치는 늘 더 많은 동료가 평화운동에 모이기를 바랍니다. 이 인터뷰를 읽고 전없세가 궁금하다면, 뭉치가 궁금하다면, 평화운동이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연락주세요. 전없세에든 뭉치에게든!
[평화를 만나다] 악희의 전없세 첫인상은? “너무 운동권이다”
[평화를 만나다] “사람이 싫은데 좋아서” 평화운동을 하는 가람
[평화를 만나다] 대단할 게 없는 ‘관종 평화주의자’ 용석
전쟁없는세상을 만난 이야기부터 시작하죠. 첫인상은 좀 어땠나요?
그게 2018년이었는데, 제가 다니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에 집중하던 때라 자연스럽게 전없세를 알게 됐어요. 처음 만난 건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였고요. 엄청 시끌벅적했는데 익숙한 분위기라서 반가웠어요. 엄마가 활동가라서 어릴 때부터 저도 집회에 자주 나갔거든요.
당시 제가 1년차 활동가이다보니 전없세에 많이 기댔어요.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친절하더라고요. 제대로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모르는 건 없는지 먼저 물어봐주고. 덕분에 ‘나도 이 운동을 함께하는 동료구나’ 느낄 수 있었어요.
대체복무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병역거부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경우가 많죠. 뭉치도 처음엔 ‘양심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병역거부를 생각했을 것 같아요.
전없세가 병역거부 세미나에 초대해주어서 몇주간 같이 공부했는데, 그때 ‘평화적 실천으로서 병역거부’를 알게 되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또 국제인권단체에서 있다 보니 전세계 인권 상황들이 매일 저에게 전달됐는데요. 그중 많은 건이 전쟁과 관련된 일이었어요. 게다가 당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대체복무제 도입뿐 아니라 동성 군인간 성관계 처벌 조항인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문제에 대해서도 집중했거든요. 죄다 군대 얘기였던 거예요. 왜 전쟁이 없어져야 하는지, 군사주의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어떻게 해치는지 실시간으로 보는 거죠. 그래서 거부감 없이 평화주의 신념을 받아들인 것 같아요.

2018년 5월 12일,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 때 사진. 이 날이 뭉치가 전없세를 처음 만난 날이다. 사진 속 뭉치의 표정은 전없세를 처음 만난 사람처럼은 안 보이지만.
그러다가 전없세의 무기감시 코디네이터 일을 제안받았는데, 어떤 마음이었어요?
제안을 받고 일단 설레고 감사했어요. (전없세 고연차 활동가인) 오리나 용석은 운동을 20년, 30년 동안 했잖아요. 그 동력이 뭔지, 제 미래가 저렇게 될 수 있을지 궁금했죠.
고민은 아무래도 임금 문제였어요. 그런데 당시 제가 활동 2년차니까 호봉이 높진 않았거든요. 원래 가진 게 없어야 용감하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임금격차가 커질 테니 지금 아니면 (임금이 줄어드는 게 아까워서) 전없세를 선택 못 할 것 같았어요. 또 전없세 사무국은 자리가 잘 안 나니까, 이번에 거절하면 평생 기회가 없겠다 싶었고요.
무거거래 감시 사업은 담당 활동가들이 모두 어려움을 토로하던 영역이에요. 뭉치 역시 고민이 많았죠.
활동 제안을 받았을 때는 무기거래 분야라서 좋았어요. 저의 (고유한) 분야가 생길 것 같았죠. 무엇보다 제안을 받기 얼마 전에 예멘 난민을 모시고 아덱스 저항행동 토크쇼가 열렸는데요. 한국산 무기가 예멘에서 사용된다는 게 너무 충격이었어요. 제가 사는 사회에서 만들어 돈을 버는 무기가 실제 전쟁터에서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그전까진 못해봤거든요. 사무국 활동 제안이 아니었어도 무기거래 이슈에는 계속 관심을 가졌을 것 같아요.
일을 시작해보니 제가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사안이 생기면 빠르게 판단하고 대응하는 것도 힘들었고요. 무기박람회 철이면 잠도 못 잤어요. 무기 자체도 어마무시하지만, 혹시나 제가 실수할까봐, 직접행동에 참여한 누군가가 다칠까봐 무서웠어요. 환영만찬장에서 직접행동을 해야 하는데, 만찬 장소를 못 알아낼까봐 그것도 걱정이 됐고요.
진짜요? 완전 의외네요. 큰 국제단체에 있다가 조그만 단체에 와서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있었죠. 전없세는 A부터 Z까지 제가 다 해야 하잖아요. 인터넷에서 ‘카드뉴스 만드는 법’, ‘동영상 편집하는 법’ 이렇게 검색해서 어찌어찌 따라했는데, 2021년에 아덱스를 앞두고 만든 영상을 보면 ‘이걸 어떻게 발행했지?’ 싶을 정도로 결과물이 처참해요. (웃음) 그런데 동료들이 그걸 참아줬어요. 제 생각엔 그게 전없세인 것 같아요. 열심히 하되 크게 절망하지 않는 거요.
반대로 전없세 상근 활동을 하면서 좋았던 경험도 좀 들려주세요.
많아요. 팀원들과 회의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국제 연대체가 생긴 것도 좋았어요. 우리가 한국에서 아덱스 저항행동을 할 때, 호주에서 현지의 한화 건물 앞에서 시위하고 콜롬비아에선 한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했어요. 조그만 단체에서 일하다 보니 ‘우린 한줌밖에 안 되는구나’ 싶어서 마음이 쪼그라들 때가 있거든요. 그래도 연결된 한줌이라고 생각하니까 덜 외로웠어요.
자랑할 만한 일을 꼽자면… 한국 국제치안산업박람회에서 물대포 차량이 전시되었는데요. 마침 태국 민주화시위에서 한국 물대포가 사용되던 시기였어요. 열심히 대응했더니, 다음부터는 박람회에서 물대포 차량이 사라졌답니다! 그런데 그때도 잠은 못 잤어요. (웃음) 저 되게 쫄보거든요. 기자회견 발언문 쓰다가 걱정이 커지면 울기도 해요. 울다가 다시 모니터 앞에 앉죠.

2023년 5월, 태국과 러시아의 병역거부자들에 연대하는 집회 행진 사진. 뭉치는 다양한 저항의 장소에서 직접 액션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17살 때부터 데모꾼을 꿈꿨는데 지금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중이다.
그렇게 2년 반을 즐겁게 활동하다가 아쉽게도 사무국을 떠났죠.
경제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더 이상 최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지속할 수 없겠더라고요. 통장에 매달 (세후 급여로) 175만원인가 찍혔거든요. 월세, 관리비, 제 식비와 고양이 2명의 식비… 매달 20만원이 마이너스인 거예요. 계산하고 나니 ‘불가능’ 이렇게 딱 (결론이) 나와서, 결정하는 게 오래 걸리진 않았어요.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죠.
그만둔다는 말은 진짜 어렵게 꺼냈어요. 엄청 울면서. 그런데 동료들이 잘 받아들여줬어요. 심지어 “다른 단체에 (더 임금 조건이 좋은) 자리가 있는지 같이 알아봐주겠다”고도 했고요. 또 “전없세 무기감시팀원이나 운영위원으로도 계속 함께 할 수 있다”고 다독거려줬죠. 제가 전없세 활동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아니까.
최연소 운영위원인데, 혹시 나이에 따른 위계나 문화적인 세대차이도 느끼나요?
전없세에선 아무도 “우리는 위계가 없다”고 말하지 않아요. 오히려 위계를 의식하고 더 조심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에게 기회를 더 주고요. 그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래서 제가 빨리 성장하기도 했어요. 어디 나가서 발언하려면 공부도 하고 실천도 해야 하니까.
문화적 차이도 별로 못 느끼는데… 전없세 사람들은 제가 트렌디하다고 그래요. 제가 또래에 비하면 진짜 ‘옛날 사람’인데 말예요. 그래서 “트렌디한 뭉치가 모금홍보위원회에 왔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속으로 큰일났다 생각했어요. 제가 전없세의 최신 감각이라니… (웃음) 그래도 전없세 인스타는 제가 우겨서 늦게라도 시작했네요.
뭉치는 다른 면에서도 감각이 좋다고 생각해요. 기후위기‧동물권 등의 여러 의제를 평화운동과 연결해 글도 쓰잖아요. 평화운동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노력한 건가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얻어진 걸까요?
여러 의제를 연결하고 싶지만, 제가 그걸 잘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서. (웃음) 다만 제가 느끼는 불편에 대해서 민감한 편이에요. 예를 들어 ‘친환경 탄약’, ‘비건 군대’ 같은 말을 들으면 불편하거든요. 처음엔 그게 왜 불편한지 잘 모르는데, 두고두고 불편하니까 오래 생각을 하는 거죠. ‘친환경 탄약’에 대해서도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기까지는 1년이 걸렸어요.
저는 저잖아요. 오랫동안 비건이었고, 여성이고, 청년이고, 생태주의와 기후위기에 관심이 많고. 제가 선 자리에서 고민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각자 삶에서 평화를 만나고 느끼고 해석하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같이 이야기하고 성찰할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평화의 외연을 넓히는 길 아닐까요.

2023년 12월, 무기박람회 행사장 액션에 대한 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뒤 열린 무죄축하 파티에서 춤을 추는 뭉치. 뭉치는 열심히 일하는 만큼 신나게 놀아야 에너지가 충전되는 사람이다. 일하고, 놀고, 일하고, 놀고, 언제 쉬는지는 뭉치만 안다.
뭉치는 어릴 때부터 활동가를 꿈꿨는데, 실제 활동가의 삶은 어때요?
어릴 때 엄마랑 같이 집회에 가면, 엄마나 엄마 친구들이 참 많이 울었어요. 가슴 아픈 일 때문에 간 거니까. 그런데 그렇게 울어도 외롭지는 않아 보였어요. 사람들과 함께 울고, 그렇게 울고 나서 배고프면 같이 밥 차려먹고. 저도 그런 관계망 속에서 잘 살아보고 싶었죠.
실제로 활동가로 살면서는, 초반에는 뽕에 찼고 지금은 그보다는 부담이 커요. (활동가로 일한) 지난 8년 동안 뿌듯하게 잠든 기억이 없어요. 아, (DX코리아 직접행동 재판 1심에서) 무죄가 나온 날은 좀 뿌듯했네요. (웃음)
지칠 때나 힘들 때 뭉치는 누구로부터 힘을 받나요?
고양이들이요. 지친 하루 끝에 침대에 누웠을 때 고양이들이 올라오면 안심이 돼요. 그리고 가족, 오래된 공부방 친구들. 이제 전없세 사람들도 의지할 수 있는 동료이자 친구가 된 것 같아요. 사회생활하고 나선 제일 많이 만나니까.
마지막 질문입니다. ‘전없세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 부탁드려요.
이 넓은 세상에서 비슷한 꿈을 가지고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는 참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함께 오래 가면 좋겠습니다. 전없세가 지금은 한줌이지만 10년, 20년 뒤에는 조금은 더 큰 한줌이 되도록 회원들과 함께 재미있는 사회운동을 만들고 싶어요. 우리 더 자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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