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열쭝, 인터뷰이: 가람

 

전쟁없는세상은 운영위원회를 두고 단체의 운영과 사업, 활동에 대한 중요한 사항을 의논하고 결정합니다.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은 모두 8명으로 제각각 멋진 매력을 뽐내는 평화활동가들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빛나는 전쟁없는세상의 평화활동가들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역시나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을 역임했던 열쭝이 인터뷰어로 나서 8명의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을 인터뷰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두 차례에 나눠서 발행합니다. 두 번째는 악희, 뭉치, 가람, 용석의 인터뷰입니다.

[평화를 만나다] 뭉치가 무기박람회 앞두고 잠 못든 이유
[평화를 만나다] 악희의 전없세 첫인상은? “너무 운동권이다”
[평화를 만나다] 대단할 게 없는 ‘관종 평화주의자’ 용석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인 본부장,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 연구소 FIPS 연구위원까지. 평화와 인권과 페미니즘을 종횡무진하는 일복 많은 가람이 마음껏 쉴수 있는 페미로운 평화세상은 언제쯤 올까요? 쉽지 않은 이야기, 재미없고 어렵지만 꼭 누군가는 해야하는 이야기를 가람과 전없세가 이어갈 수 있도록 여러분이 함께해주시길 가람이 간곡히 요청합니다.

 

가람은 고등학생 때까지 모범생이었다면서요.

그런 편이었죠. 꼭 모범생이어서 그랬던 건 아니지만, 집회‧시위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민주화나 인권 같은 건 이미 이뤄졌다고 생각했고요. 그땐 주변 사람들, 특히 어른들에게 “가람이는 참 애가 성실하지”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게 되게 중요했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저를 혼자 키우셨는데, 그 뒤로 ‘어디 가서도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총학생회 활동을 시작했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만났죠.

사실 총학이 뭐 하는 곳인지 몰랐어요. ‘새내기 OT’를 갔는데, 안내 책자를 총학이 만드니까 마지막 페이지에 “총학생회에 놀러 오세요”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그래서 놀러 갔어요. (웃음) 그런데 너무 멋있는 언니들이 많더라고요. 외동이라서 언니에 대한 로망이 있었거든요. 같이 공부도 하고 집회도 나가고… 저희 총학이 속한 운동그룹이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하다 보니 저도 활동을 함께 했죠. 사실 그때는 ‘나는 군대에 안 가고 주변에 군대 가는 사람도 없는데, 이걸 왜 해야 하나’ 생각했어요. 그래도 하라니까 정말 열심히 했죠. 성실하니까. (웃음)

 

2005년

2005년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한 빨간신호등 액션에서 피스복을 입고 있는, 모범생 시절을 막 탈피한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긴머리 가람. 가람이 전없세와 함께 해온 세월은 모두 전없세의 역사가 되었다.

 

그때 사이버테러 사건이 벌어진 거죠?

예. 학교에 유명 정치인이 왔는데 어떤 학생이 병역거부에 대한 질문을 했던 게 발단이었을 거예요. 그 일이 기사화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좌표가 찍혔어요. 총학 홈페이지가 다운되고, 집행부의 사진이 인터넷에 돌고. 학생 한 명이 공격받아서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고요.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부터 온갖 성희롱이 난무했죠. 한동안 해 떨어진 이후엔 학교 밖에 못 나갔어요.

엄청난 충격이었는데, 동시에 궁금해졌어요. 여자가 병역거부를 입에 올렸다는 이유로 이 사달이 벌어지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이게 뭐라고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하나? 이 사회에서 군대가 가지는 의미는 도대체 뭐고, 왜 여자는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군사주의를 체감했고, 그 문제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죠.

 

힘든 사건이었을텐데 운동을 떠나지 않았네요.

지금의 저라면 잠시 떠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웃음) 저도 주변 사람들도 번아웃을 무수히 겪어봐서 ‘내가 사는 게 우선이고 그래야 활동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그땐 그냥 사람들과 함께 버텼어요. 못 떠난 게 아니고, 떠나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만일 그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아마 여성운동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제 삶을 관통하는 두 가지가 반군사주의와 여성주의거든요. 그런데 저는 지금도 제가 여성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슈의 영역이 조금 다를 뿐이죠. 페미니스트적 관점은 저의 운동과 삶의 밑받침이자 기준점이에요.

 

그 뒤에 전없세에는 가람이 스스로 찾아갔죠?

제가 속한 학생운동 그룹이 해산했는데, 계속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무엇보다도 사람 때문이었어요. 친구들이 병역거부를 하고 감옥에 가니까,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던 거죠.

그때 저는 맨날 회의하고 거리 캠페인하고 퍼포먼스하고 그랬어요. 통역이나 번역도 많이 했고요. 국제단체나 국제기구와 소통해야 하는데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때는 별로 없었거든요. 저도 잘 못해서 속으로 울면서 통역했어요. (웃음) 계속 사무국 활동가였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꾸준히 전없세 활동을 했네요.

 

2018년 평화수감자의 날

2018년 평화수감자의 날 행사 토크 프로그램 사회를 보는 가람. 다재다능한 가람은 전없세 행사에서, 아니 평화단체들 행사에서  기능적으로는 사회자, 통번역, 연구하고 글 쓰기, 만화 그리기(과거 전없세 종이 소식지 시절), 내용적으로는 평화, 교육, 페미니즘, AI 무기까지 안 하는 일이 없다.

 

그러다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평화인권교육을 공부하러 유학을 갔죠.

전없세 친구들이 박스 한가득 한국 과자를 보내줬어요. “가람! 배는 안 곯고 있지?” 그런 손편지도 써서. 저 진짜로 배곯고 있었거든요. 어찌나 반갑던지.

사실 학교의 커리큘럼이 기대와는 좀 달랐어요. 제 관심은 문화로서의 군사주의를 분석하고 그에 대항하는 평화 담론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배우고 싶었던 걸 거의 못 배웠죠. 대신 교차성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 있었어요. 저는 나이 어린 아시아 여성이었고, 매일 거리에서 캣콜링을 당했어요. 가게에서 무시나 차별도 많이 당했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가 다닌 학교가 그 분야에서 꽤 알려졌거든요, 그 학교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존재하는 순간에는 위치성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때까지 한국에 교차성 개념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저도 교차성이라는 말을 몰랐지만, 제 삶이 교차점에 있었어요. 그런 위치를 예민하게 감각할 수 있는 역량이 활동가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유학 시절 외에는 꾸준히 전없세 활동을 한 거죠? 운영위원도 자연스럽게 합류했고요. 정말 오랫동안 활동했는데, 전없세는 가람에게 어떤 기쁨을 주나요?

저에게 전없세는 ‘한국에서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평화를 말하고 실천하는 곳’이에요. 또 제가 방향을 잃고 흔들릴 때 저를 잡아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고요. 서로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비난하지 않고 합의점을 찾아내도록, 전없세 사람들은 그런 훈련이 잘된 것 같아요. 함께 공부하면서 성장하고, 서로를 조건없이 믿고 지지하면서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모여 있죠.

아, 신기하다. 결국 저는 사람 때문에 평화운동을 계속하고 사람 때문에 전없세에 있는 것 같네요. 사람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MBTI도) 진짜 대문자 I인데. (웃음) 사람에 대한, 존재 자체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 같긴 해요. 생각하지 못한 저를 발견해서 지금 좀 놀라고 있어요.

 

인터뷰가 잘 되고 있나 봐요. (웃음) 가람은 ‘늘 바쁜 사람’인데요. 전없세 활동이 버겁진 않아요?

제가 일복이 있어요. 좀 많이 있어요. (웃음) 그런데 이게 가장 큰 반성 지점 중 하나예요. 혼자 바쁜 척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바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거든요. 그런데 뭔가 제안이 들어오면 그 순간에는 정말 중요하게 느껴져요. 누군가 해야 할 일 같으니까 덥석 물죠. 나중에 후회해요. 제 깜냥이 안 되니까. 지금도 후회가 한 바가지예요.

그래도 너무 힘들다 싶으면 일을 쳐내는데, 전없세 활동을 쳐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전없세는 저를 활동가로 만든 단체거든요. 저에게 그냥 숨 쉬듯 자연스러운 활동인데, 말하다 보니 이게 저나 전없세에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생각해봐야겠다 싶네요. (웃음).

 

2024년 전없세 총회

2024년 전없세 총회에서 (잔뜩 카메라를 의식하며?) 전없세 활동보고서를 읽고 있는 가람. 2025년에는 가람의 일이 좀 줄어들기를. 윤석열이 처벌 받기를 우리 모두가 바란다.

 

이렇게 바쁜 가람은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해왔고 또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대학 인권센터에서 일했어요.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면서 인권을 옹호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한 4년 정도 했나? 그런데 번아웃이 정말 세게 왔어요. 저의 주요 업무는 ‘학내 인권침해 사건 조사’였고, 사건은 대부분 젠더 기반 폭력이었는데요. 피해자와 가해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사안을 최대한 정의롭게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정말 보람되기도 했지만, 저에겐 적합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감정을 너무 많이 쏟아붓더라고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많이 힘들었나 봐요. 제가 느끼기에도 스스로가 복어 같았어요. 위험을 느끼고 가시를 최대한 빵빵하게 부풀린 복어요. 짜증도 많이 냈고요. 인간이, 특히 남자가 다 싫었어요. (웃음) 어느 순간 더 이상 못 버티겠더라고요. 그렇게 그만두고 치료를 받고 나아지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네요.

지금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일한 지 4개월째인데 일이 재미있어요. 전없세 활동과도 많이 겹쳐요. 저는 전없세가 ‘평화’와 ‘인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단체라고 생각하거든요. 전쟁이나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인 ‘평화권(right to peace)’은 중요한 인권이잖아요. 또 병역거부나 무기거래 등의 문제 역시 인권 이슈이고요. 장기적으로 두 가지 활동이 시너지를 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요즘 가람이 꽂힌 건 어떤 거예요?

‘일 줄이기’요. 내년 목표도 일 제안을 다 거절하는 거예요. 원래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푸는데, 운동할 시간도 없어요. 왜 이렇게 일이 끝나지 않는지…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의 평화를 찾고 싶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전없세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전없세가 하는 얘기가 쉽게 다가오는 주제가 아니라는 건 저도 잘 알아요. 그런데도 회원 분들은 신기할 정도로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세요. 관심 가져 주시고, 회비도 내주시고, (SNS 게시물에) ‘좋아요’ 눌러주시고, 공유해주시고, 이런 게 모두 감사하죠. 저희도 열심히 할 테니 앞으로도 그 마음 변치 않았으면 좋겠고요. 전없세를 더 널리 알려주셔서 상근 활동가들이 최저시급 이상을 받게 되면 너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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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7|카테고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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