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열쭝, 인터뷰이: 쥬(여지우)
[평화를 만나다] 예술과 활동의 교차점에 서 있는 ‘딴따라 활동가’ 쭈야 쥬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평화운동의 챗쥬피티’라는 별명에 고개를 크게 끄덕일 겁니다. 여러 면에서요. 한국 사회운동에 이과형 인간은 드물긴 하지만 그래도 종종 있는데, 쥬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말과 글과 행동 모두 군더더기 없고, 정확하게 논리적이며, 무척 빠른 효율을 자랑하는 쥬의 취미이자 특기는 놀랍게도 보드게임입니다. 사회운동을 테마로 이미 여러 보드게임을 출시한 쥬가 가장 만들고 싶은 게임은 평화주의 전쟁게임!
[평화를 만나다] 군대 안 가서 (가까스로) 사람 된 우공
[평화를 만나다] 오리의 미래는 ‘노년연금 받는 전문데모꾼’. 안 되면 말고
쥬는 어떻게 전없세와 인연을 맺었나요?
결정적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원래는 2009년에 우연히 지하철 역내 캠페인 부스에서 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으로 가입했고요. 그 뒤로 앰네스티 대학생모임 활동도 하고 여러 가지 캠페인에도 참여했어요. 마침 제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던 때라서 시간이 많이 비니까 심심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당시 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활동을 했거든요. 자연스럽게 전없세도 알게 되었죠.
그러다가 2012년에 예비 병역거부자 친구의 소개로 전없세 비전 워크숍 자리에 갔어요. 그런데 전없세가 앞으로 비폭력 트레이닝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저도 함께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전없세 활동을 시작했고, 계속하다 보니까 운영위원도 되고 2022년에는 무기거래감시 코디네이터 일을 제안받아서 사무국 활동가로 일하고 있어요.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는데, 사회운동이 낯설진 않았어요?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은 고등학생 때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다닌 대학교에 학생운동의 전통이 워낙 약해서… 다른 환경에 있었다면 더 일찍 운동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무국 활동가를 제안받았을 때는 마음이 어땠어요?
사실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는데 그래도 해보고 싶은 도전이었어요. 잘 안되면 어쩔 수 없고. 그러면 전없세엔 안 좋은 일이긴 하지만. (웃음). 그 외에 다른 고민은 없었어요. 그전까지 프리랜서로 살았는데 최저임금보다 적게 벌어도 먹고 살았으니까, 수입에 대한 걱정도 없었고. 또 ‘이게 내가 장기적으로 할 일인가’ 하는 고민도… 제가 먼 미래에 대한 고민을 안 하는 편이라서.
오리도 먼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고 하던데, 전없세 활동가들의 특징인가 봐요. (웃음) 이제 햇수로 3년 차 활동가인데 어떤가요? 일은 좀 익숙해졌나요?
다른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한데, 스스로는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기자회견이나 외부 회의에 나가서 발언하는 건 여전히 힘들거든요. 무기 수출입 데이터를 수집해서 정리하는 종류의 일은 능숙하게 하는 것 같고요.

좀처럼 웃는 사진이 없는 쥬의 최대치의 웃음을 강조한 컨셉 사진. 2022년 무기거래감시팀 회의가 끝나고 찍었다.
가장 최근에 합류한 사무국 활동가잖아요. 쥬가 보기에는 전없세의 조직문화가 어떤가요?
의사 결정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책임지는 구조인 게 좋아요. 다른 단체에서는 사업과 운영의 결정권을 가지는 운영위나 이사회가 정작 단체 실정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안 좋은 점은 뭐가 있을까? 음… 조직에 체계가 좀 부족할 수는 있겠네요. 활동가가 바뀌어도 단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체계가 필요한데, (고연차인) 오리나 용석이 그만둔다면 전없세가 많이 흔들릴 것 같거든요. 그리고 저만 해도 다른 활동 경험이 있으니까 괜찮았던 것이고, 사회생활이 정말 처음인 활동가는 어떻게 일해야 할지 잘 모를 거예요. 체계적인 직무 교육 같은 것이 없으니까요.
그렇겠네요. 신입이라고 화분에 물주기나 사무실 청소하기 같은 일을 떠맡지는 않죠? (웃음)
점심을 사무국에서 직접 해 먹는데 돌아가면서 밥을 하고, 청소도 돌아가면서 해요. 화분에 물주는 건 담당이 따로 없는데, 오리가 하고 있어요. 신입에게 텃세 부리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텃세를 부려도 제가 둔해서 눈치를 못 챘겠지만요. (웃음)
다른 사업도 그렇지만, 무기거래감시 활동은 정말 어렵고 복잡한 것 같아요. 쥬는 어떤 점이 가장 어렵나요?
정보가 너무 불투명하다는 점이요. 한국이 무기를 얼마나 수출하는지는 총액만 공개돼요. 나라나 권역별 현황, 무기 종류별 현황은 모르는 거죠. 이스라엘 같은 분쟁지역에 무기를 얼마나 파는지도 알 수 없고, 확산탄을 얼마나 파는지도 알 수 없어요. 그나마 기업이나 기관에서 가끔 관련 보도자료를 내긴 해요. ’K방산’ 실적을 자랑하려고요. 또 한국이 유엔에 제출하는 무역 통계 자료에 무기 품목도 포함되긴 하는데, 그 자료가 제출되고 공개되는 데까지 시간이 길게는 3년 정도 걸리거든요.
운동의 방향을 잡을 때에도 이 문제가 영향을 미쳐요. 예를 들어 군사무기 문제에 집중할지 아니면 경찰무기 문제에 집중할지, 이런 것도 어느 정도 정보가 있어야 판단할 수 있잖아요. 정보를 찾기 쉬운 분야에 맞춰 활동한다면 그것도 반드시 바람직한 건 아니고요.
비공개의 흔한 이유가 ‘국익’이잖아요. 국익이 중요한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텐데, 다른 나라는 상황이 어떤가요?
영국이나 유럽연합 나라들은 정부가 이런 정보를 어느 정도 공개해요. 네덜란드에서는 활동가들이 소송을 벌여서 올해 “이스라엘에 무기 부품을 수출하지 말라”는 법원 명령도 끌어냈는데, 정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어려운 와중에도 쥬는 국내외 기관이나 단체에서 무기거래 관련 자료를 발굴하고 분석하는 데 많은 성과를 보였잖아요. 이번 기회에 자랑 좀 해주세요.
성과라고 하기엔 좀 민망한데… 하나만 말하자면,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의 거짓말을 잡아내서 추궁했어요. 정보공개청구로 확산탄 생산 현황을 물어보니까 몇 년간 안 만들었다고 했거든요. 예산 자료에는 확산탄 획득 예산이 잡혀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최근에는 행정소송도 하고 있어요. 관세청이 그나마 내놓던 무기 수출입 통계를 비공개로 전환했거든요. 이스라엘에 무기를 수출하지 말라고 전없세와 여러 평화단체들이 요구한 전후로 말이에요. 이에 대해서 정보공개청구도 해봤는데 비공개 결정이 나왔고, 결국 지난 5월에 행정소송을 시작했어요. 이 소송에서 이기면 무기거래 정보를 요구할 법적 근거가 생기는 셈이라서, 앞으로 활동이 비교적 수월해질 것 같아요.

‘챗쥬피티’라는 별명 답게 쥬는 무기산업의 복잡한 데이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평화주의의 시선으로 문제점을 도출하는데 대단한 역량을 보인다. 기자회견이나 집회 때 쥬의 발언은 정말 불필요한 단어 하나 없이 논리 정연 그 자체다. 다만 챗쥬피티 답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웃는 사진 또한 드물다. 그나마 밝은 표정 사진 찾느라 힘들었다. 물론 일상에서는 웃는 모습도 종종 보여준다.
쥬는 전없세나 평화운동 판에서 참 보기 드문 이과형 인간이죠. 자료 분석도 그래서 잘하는 것 같아요. ‘챗쥬피티’라는 별명도 붙었는데, 마음에 드나요?
음… 챗지피티의 쓸모 있는 면을 닮았다고 붙여준 별명 같아서,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전없세의 다른 활동가들과는 다르다고 느끼는데, 그런 점이 전없세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게 낫잖아요.
전없세의 무기거래감시 운동에서는 무기박람회 저항 활동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최근에는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여러 단체를 만나 연대단체를 늘리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어떤 이유와 고민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걸까요?
무기박람회 대응이 무기거래를 당장 규제하는 등의 결정적 변화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무척 상징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운동을 확장하기 위해 더 많은 단체를 만나는 거죠. 또 한편으로는 한국의 방위산업이 커지고 무기박람회 역시 수도권 이외 지역으로 확산하는 상황이라서, 그에 대응하는 측면도 있어요. 그렇다 보니 지역경제나 산업 문제도 얽혀있고, 만나본 단체들이 좀 조심스러워하는 경우도 있어요. 특히 노동 분야에서요. 일자리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지금이 운동의 변곡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 싶어요.
2022년 DX 코리아 무기박람회에서는 활동가들이 탱크 위에 올라가 저항 활동을 하다가 고발을 당했죠. 재판 상황은 어떤가요?
8명이 업무방해죄로 기소됐어요. 저는 탱크 위에 올라가진 않았는데 보안요원의 제지를 차단했다는 이유로요. 작년 가을에 1심에서 무죄를 받았고, 항소심이 막 끝났는데 이번에는 유죄가 선고됐어요. 1심 때는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무죄가 나와서, 그 자리에서 A4 종이에 매직펜으로 ‘무죄’라고 써서 기념사진을 찍었거든요. 이번에는 검사가 아무것도 안 해서 역시 무죄일 거라 생각했는데, 만들어간 ‘무죄’ 피켓도 못 썼어요. 판결문을 보니 ‘업무방해의 결과를 초래할 추상적 위험성이 있었다’는 거예요. 방해가 됐다면 통쾌하기라도 할 텐데 위험성이 있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아직 최종심이 남아 있으니 끝난 건 아니에요.

쥬가 전쟁없는세상에서 만든 보드게임 <세상을 바꾸다: 광장에서 국회까지>. 이밖에도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테마로 한 <인티파다>, 정신장애 이슈를 담은 <내 머릿속의 무지개> 등 다양한 게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보드게이머 쥬는, 평화활동가라는 직업이 무색하게 전쟁 게임을 ‘매우’ 잘한다.
쥬는 보드게임 작가이기도 하죠. 그동안 어떤 게임을 만들었는지 소개해 주세요.
제가 가장 처음 판매용으로 제작한 것은 ‘인티파다’라는 게임이고, 팔레스타인 이슈를 갖고 만들었어요. 그 뒤로 사회운동 전략을 주제로 한 ‘세상을 바꾸다’, 정신장애 이슈를 담은 ‘내 머릿속의 무지개’라는 게임도 만들었고요. 언젠가 무기거래를 주제로 보드게임을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잘 만든 전쟁영화는 반전영화’라는 말이 있듯이 잘 만든 전쟁게임은 반전게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전없세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없세에 합류한 이후로 느낀 건, 활동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고 회원 여러분이 함께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앞으로도 다양한 목소리와 아이디어가 모여 우리가 지향하는 평화를 만들어 나가길 기대합니다. 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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