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살다] 화끈하고, 섹시하고, 깊고, 통쾌한 평화의 맛 2편 – 여성평화활동가 4인의 대화

인터뷰이: 지원, 소라, 토란, 뭉치

인터뷰어: 용석 / 정리: 열쭝

뭉치 ‘일상에서 제동을 걸지 못했던 군사주의가 이런 국면에 발동되는구나’

용석: 지금은 계엄 이후 탄핵까지 가는 상황이잖아요. 긍정적 에너지와 혐오의 기운이 함께 분출되는 시기죠. 상황을 보면서 때로는 활동에 참여하면서 여성평화활동가로서 어떻게 느끼는지도 궁금해요.

토란: 제가 사실 국회 정치에 관심이 없어요. 계엄 당일에도 실감이 안 났어요. 최근에 동네 신부님이 미군 버스를 막았다고 연행이 됐거든요. 그때는 화가 나고 와닿는데 국회는 저에게 너무 멀게 느껴졌달까요. 그래서 ‘내가 너무 정치에 관심이 없나’ 반성도 했지만, 동시에 ‘강정에서 해군기지를 막기 위해 인간띠잇기 하는 것도 정치인데, 이런 활동은 너무 낮게 보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해요.

소라: 탄핵을 바라긴 하지만,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성소수자가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도 아니고, 조금은 구경하는 마음으로 집회에 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중히 듣는 것에 저는 더 집중하고 있어요.

지원: ‘탄핵’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지만, 제가 그 자리에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고 국방예산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면 욕먹을 거 같은 거예요. 그리고 저는 (속한 단체 업무의 일환으로) 집회 질서를 유지하는 현장 스태프로도 나가거든요. 광장에 오는 중년 남성들이 제 말을 잘 안 들어요. “여기 앉아계시면 안 된다”고 아무리 말해도 가만있어요. 그러다 중년 남성이라든지 좀 더 강하게 말하는 사람이 말하면 움직이고요. 그렇게 광장의 이면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뭉치: 저는 감정이 좀 복합적인데요. 계엄에 대한 임팩트는 컸어요. 뉴스를 보자마자 국회 앞으로 나갔고요. 엄마가 학생시절 겪은 군부독재를 나도 겪을 수 있다니까 눈 앞이 깜깜했거든요. 그런데 그 이후의 국면들을 보면서는, 정치인들이 너무 영웅화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찌 보면 의원들은 자기 역할을 한 것뿐인데, 성소수자혐오나 여성혐오 발언을 했던 사람도 영웅으로 호명되는 게 화가 나더라고요.
한편으로는 12.3 계엄 상황이 데자뷰 같기도 했어요. 헬기가 머리 위로 날아다니고 시내 한복판에 탱크가 들어오고. 무기박람회나 국군의날 퍼레이드에서 봤던 것 같은 상황이죠. ‘일상에서 제동을 걸지 못했던 군사주의가 이런 국면에 발동되는구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전쟁을 만들고 인권을 침해하는 군사주의의 뿌리와 계엄군의 뿌리가 같은데, 계엄 이후에 유력 대권주자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스라엘 대사 만나서 이스라엘이랑 방위산업 협력하고 싶다고 말하잖아요. 어떤 죽음은 괜찮고, 어떤 죽음은 안 괜찮고. 내란이 괜찮지 않으면, 그 죽음도 괜찮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토란 “우리는 모두 활동가. 그래서 똑바로 살자고 생각해요”

용석: 지금 연재하는 게 ‘여성평화활동가 에세이’잖아요. ‘여성평화활동가’라는 호명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자랑스러울 수도 있고 부담일 수도 있을 텐데요.

토란: 어떤 사람은 제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말하거든요. 부담스러운데 한편으로는 ‘내가 어떻게든 영향을 끼치고 있구나’ 싶기도 해요. 저는 강정마을에서 비건 실천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 중 하나였는데, 처음엔 갈등도 있었어요. 소리 지르고 울고 그랬죠. 그런데 (얼마 전에 제주에서 서울로 이사 오면서) 송별회 할 때 “너가 많은 걸 바꿨다”는 말을 들었어요. 마을 식당에 비건 메뉴가 생기고 동네에 비건하는 친구도 생겼다고요. 그래서 저는 모두가 활동가일 수 있다고 봐요. 활동가라는 것을 받아들였고요. 그래서 ‘(나는 활동가니까) 똑바로 살자’고 생각해요.

뭉치: 저는 (속한 평화단체 안에서는) 젊은 여성활동가라서 오히려 발언할 기회를 많이 얻었어요. 그런데 조금만 밖으로 나가면 살짝 궁금해지기도 하는 거죠.. (발언하는 자리에) 내 생각이 궁금해서 부르는 건지, 내가 젊은, 청년, 여성이라서 부르는 건지. 물론 기회가 적으니까 불러주면 감사히 가긴 하죠. 어쨌든, 저에게는 여성이라는 정체성도 소중하고 평화활동가라는 정체성도 소중해요. 선배 세대 여성평화활동가들이 한 말들이 너무 소중하니까, 저도 그 계보를 이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3.8여성의 날에 열린 2025년 전쟁없는세상 총회 때 찍은 여성의날 기념 인증샷.  군사주의와 해로운 남성성이 양극단에서 만난 사례가 바로 계엄과 쿠데타다.

지원 “여성활동가네트워크를 만들고 싶고 돌봄캠페인을 하고 싶어요”

용석: 혹시 동료 여성평화활동가들과 함께 하고 싶은 활동이 있을까요?

토란: 저는 두 가지가 있어요. 강정에서 여성병역거부에 대해서 알게 됐거든요. 여성도 전쟁에 동원되니까 여성도 병역거부를 할 수 있는 게 당연한 건데, 평화운동에서도 이게 마이너한 담론 같아요. 그래서 이 주제를 더 꺼내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섹슈얼리티에 관심이 많아요. 평화 이슈를 섹슈얼리티와 연결해 보고 싶습니다. 나의 평화주의 가치관이 성적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얘기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원: 여성활동가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어요. 어떤 필자나 발언자가 필요하다고 할 때 (네트워크를 통해서) 여성활동가들을 불러낼 수 있게 말이에요. 여성들에게는 기회가 잘 안 오잖아요. 또 하나는 돌봄캠페인을 하고 싶어요. ‘힘들면 집회 나가지 마. 쉬어도 돼’, 혹은 ‘밥 꼭 먹고 잘 자야 해’, ‘아프면 병원 가자’, ‘버티기 힘들면 쉬어도 돼’ 그런 슬로건을 갖고.

용석: 오, 여성활동가 리스트를 만들어도 좋겠다. 강연이든 원고든 뭔가 요청이 생기면 리스트 보고 연락하라고 하는 거죠.

뭉치: 저는 국제적 연대를 만들고 싶어요. 군사주의 영향 아래 있는 지역, 전쟁이나 분쟁을 겪는 국가의 여성활동가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의제도 나누는 거예요. 사실 우리도 겪고 있는 거죠. 휴전 국가니까. 그리고 ‘여성,평화, 안보’라는 이름으로 국방 분야나 무기기업에 여성을 많이 배치하는 흐름이 있어요. 그런 담론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우리 쪽에서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가 원하는 평화는 여자도 총을 드는 게 아니잖아요. 평등으로 나아가는 데 군사주의는 장벽이 되니까요.

소라 “활동가들이 서로에게 잘 지내는지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용석: 길었던 이번 좌담의 진짜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늘 이야기에서도 나오고 여러분의 글에서 자기돌봄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요. 어떨 때 지치고 힘든지, 어떻게 스스로를 돌보고 혹은 돌보고 싶은지 얘기하면서 좌담을 마치면 어떨까요?

소라: 활동가에게 제일 큰 자원은 연결망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다 가진 돈도 없고 주식투자가 뭔지도 잘 모르잖아요. 그렇게 모를 수 있는 힘은 ‘누군가가 나를 기꺼이 도울 것’이라는 믿음, ‘나 역시 누군가를 도왔다’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게 자부심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자기돌봄’도 중요하지만, 활동가들이 서로에게 잘 지내는지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토란: 활동가로서 힘든 거는… 세상이 잘 안 바뀌는 건 이제 받아들여야 할 거 같고. (웃음) 가장 힘든 건 내가 잘못했을 때 받는 비판이나 상처예요. 서로 조금만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어요. 잘 모를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고, 그럴 때 제2의 기회를 줬으면 좋겠고요. 우리는 ‘무해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가해자성을 인지하고 덜 유해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지원: 일하다가 저로 인해 어긋나는 때 지치고 힘들죠. 안 그러려고 하지만 자꾸 스스로 탓하게 되고 ‘내가 활동가로 계속 성장할 수 있나. 계속 활동할 수 있나’ 그런 의심이 들거든요. 그럴 때 나를 돌보는 방법은 아직 못 찾았는데요. 같이 활동하는 분은 30년을 일했는데 알고 보니 취미 부자더라고요. 저도 그런 숨구멍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힘들 때 쏙 들어가 있게 말이에요. 그러다 보면 힘들어하는 동료들의 숨 쉴 구멍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뭉치: 생각해보면, 전업활동을 하고 나서 저는 한 번도 뿌듯한 마음으로 잔 적이 없어요. ‘오늘은 뭐 못했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 헌신이 다른 사람보다 부족한 것 같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가 행복하려고 이런 활동을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그런 (스스로 책망하는) 생각을 안 하려 해요. 그래서 밤에 자기 전에 블로그 비밀일기장에 오늘 해낸 일이 뭔지 적어요. 진짜 별 거 아닌거, 누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메일을 보냈다 이런 거요. (다들 “귀여워”) 내가 살아야 운동도 하는 거니까, 조금 더 이기적이어도 되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