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살다] 화끈하고, 섹시하고, 깊고, 통쾌한 평화의 맛 1편 – 여성평화활동가 4인의 대화

인터뷰이: 지원, 소라, 토란, 뭉치

인터뷰어: 용석 / 정리: 열쭝

 

2024년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글은 여성평화활동가들의 에세이 연재 ‘평화를 살다’였습니다. 여성평화활동가들의 슬픔과 아픔, 돌봄, 욕망, 투쟁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응원에 보답하고자 2025년에도 ‘평화를 살다’ 연재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뭉치(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 지원(참여연대 활동가), 소라(녹색당원), 토란(비건퀴어페미니스트), 네 분이 올해에도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작년의 연재를 마무리하며 새롭게 인사드리는 취지로 필자 네 명의 좌담을 진행하고 두 편으로 나눠서 공개합니다. 매콤한 맛 로제떡볶이, 달콤하고 섹시한 초콜릿퍼지,  슴슴하고 익숙한 쑥버무리, 통쾌한 슈팅스타. 네 가지 맛의 평화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각각의 맛과 음식이 누구의 글과 매칭되는지도 한 번 맞춰보세요! 올해 여성평화활동가 에세이 ‘평화를 읽다’는 매달 15일에 공개됩니다.

화끈하고, 섹시하고, 깊고, 통쾌한 평화의 맛 2편 읽기


용석: 2024년에 여성평화활동가 에세이를 연재하기로 한 계기가 뭐냐면, (여러 활동가가 함께) 회의 끝나고 맥주 마시는 자리에서 지원님이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럼 좋아하는 거 하게 해줘야지. (웃음) 그렇게 시작해서 판을 키우고 다른 여성활동가들도 모았어요. 한편으로는 그런 고민도 있었죠. 사회운동에 여성활동가가 많고 특히 평화운동은 더 그런데, 지면에 글을 쓰는 사람은 주로 남성이잖아요. 이렇게 훌륭한 여성평화활동가가 많다고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은 욕심도 있었어요. 그렇게 지난해 연재를 하고 반응이 좋아서 올해 다시 여러분들에게 같은 제안을 했는데요. 글쓰기를 제안받았을 때 여러분은 어땠나요?

지원: 그때 술자리에서는 “아, 예”하고 넘어갔는데,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이걸 정말 기획하시는구나. (웃음) 제안받았을 때 기쁘고 좋았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뭘 얘기할 수 있을까. 평화활동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주저하다가 주변에서 해보라고 해서 용기가 났어요

소라: ‘평화’라는 말이 주는 너~무 착한 느낌 있잖아요. 그래서 ‘(착하지 않은) 내가 할 말이 없으면 어떡하지?’ 했어요. (웃음) 그런데 전없세에서 나에게 바라는 얘기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없세의 외연을 넓히는, 변두리에서 활동한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한가 보다. 그런 이야기를 남기자’는 목표를 저 혼자 떠올렸어요.

용석: 전없세 블로그 글이 생각보다 널리 퍼지거든요.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토란: 좋았다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저는 사실 ‘피스파인더’라는 3개월 제주살이 프로그램으로 강정마을에 처음 갔어요. 인간띠잇기도 그냥 제주도에서 하는 행사인 줄 알았고요. (웃음)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전없세까지 알게 됐으니까, (피스파인더 프로그램을 기획한) 친구가 글을 읽고 뿌듯해했어요. 그리고 제가 살던 마을은 시골이라서 방치견들이 많거든요. (그 문제에 대해서 쓴 글을) 마을 친구들이 읽고 다시 생각해봤다고 하더라고요.

용석: 뭉치님은 ‘운동권 남자 조심하라는 말’로 공전의 히트를 쳤죠.

뭉치: 솔직히 저는 너무 통쾌했어요. (다들 웃음) 그게 사실 오래전에 쓴 글인데, 전없세 블로그로 쓸 만한 소재가 생각이 안 나서 조금 수정해서 올린 글이에요. 떨리긴 했죠. ‘공론장에 이런 글을 올려도 되나’ 싶고, 혹시 ‘남자는 다 나쁘고 여자가 짱’이라는 식으로 읽히나 싶어서요. 그런데 용석과 (편집자인) 쥬가 괜찮다고 하니까 북돋움을 받아서 발행했어요. 특히 페이스북에서 글이 많이 퍼졌는데요. 공감을 많이 하시는 걸 보면서 ‘이게 보편적인 경험이구나’ 싶어서 속상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불편하고 힘든 일이) 내가 잘못한 게 아니구나’ 싶어서 고립에서 벗어나는 경험이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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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착하지 않은 이야기로 평화의 외연을 넓히는 게 목표예요”

 

용석: 글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각자의 글쓰기 노하우가 궁금해요. 연재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고 그걸 어떻게 슬기롭게 넘겼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소라: 소재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어요. 몇 월에 연재하고 싶은지 처음에 물어보시길래 저는 11월에 쓰겠다고 했어요.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11월 20일)’에 대한 걸 기고하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11월을 미리 정해놓고는 그에 연재 주기를 맞춰서 글을 썼는데, 마침 쓰고 싶은 소재가 시기랑 잘 맞아떨어지더라고요. 그런데 올해부터는 소재 정하는 게 어려워서 숙제처럼 됐어요. 그래서 SNS에 “어떤 걸 쓰면 좋겠냐”고 올렸는데, 결과가 쓰잘데기 없어요. 연애 얘기해달라고 하고. (웃음)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에 대해서 쓸 때 많이 힘들긴 했어요. 몸살도 났죠. (편지 형식의 글에서 수신자인) 누군가에게 쓰는 글이잖아요. 혹시 그 사람이 읽어도 충격받지 않도록 내용을 잘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글이 잘 나와서 좋아요.

토란: 저는 사실 쓰려고 생각했던 글이 있었어요. 밀린 서평이 있으니까 그거 쓰는 겸 연재를 하려 했거든요. 그런데 전없세에서 “에세이로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저는 글 쓰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글쓰기가 ‘To do 리스트’에는 있는데, 결국 마감 이틀 전에 시작해요. 계속 고민하다가 혼자 난리를 치고 애인한테도 징징대고요. 그러다가 저녁 9시, 10시에 컴퓨터 앞에 앉아요. 이제는 ‘마감 때 되면 어쨌든 글이 쓰여 있을 거다’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미래의 내가 할 거라고.

용석: 지원님이나 뭉치님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써주셨죠. 약점과 치부를 드러내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요. 저는 그렇게 못 쓰기 때문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전없세 블로그 글 쓰는 게 어떠셨어요?.

지원: 고민이 되죠. 제 이름과 소속을 달고 쓰는 글이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지 걱정도 되고요. 그런데 쓰고 나면 후련해요. 대나무숲에 내 힘듦과 어려움에 대해 소리 지른 것처럼요. 글 쓰면서 내 감정이나 상태를 정제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힘들다고 울고불고하지 않아도 (글을 통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내 번아웃과 정신건강 상태를 알릴 수 있어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뭉치: 개인적인 글을 쓸 때는 검열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연재 에세이를 쓰는 시간을 따로 안 둬요. 개인 블로그에 쓰는데, 그땐 누구 보여주려고 쓰는 게 아니니까 편하게 쓰죠. 연재 시기가 오면 평화활동가로서 공명하고 싶은 소재가 있는지 제 블로그를 돌아보면서 찾는 거예요. 글꾼이 아니라서 연재만을 위한 글쓰기는 못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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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 “내 피부에 있는 말로 군사주의 문제를 옮기고 싶어요”

 

용석: 다른 필자의 글에서 기억 남는 것들은 어떤 게 있어요?

토란: 저는 역시 ‘운동권 남자들 조심하라는 말’이요. 정말 주옥같았어요. 강정마을에 살면서 저도 사건 사고를 많이 봤거든요. 배신감도 많이 느꼈어요. 역시 운동권 남자 만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 (웃음) (사회운동 내 가부장적 문화를 지적하는)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게 좋았어요.

뭉치: 저는 다 좋았는데 그중에서 소라님이 아프면서 썼던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블로그를 꼽고 싶어요. 그 글 보면서 엄청 울었어요. 글 속에 등장하는 (세상을 떠난) 친구가 제 친구이기도 했고요. 그 친구를 잊지 않고 말한다는 것, 우리 안에서 그 친구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좋았어요. 또 (그러나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에 이제는 관계가 멀어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글이잖아요. 소라님이 글에서 “여전히 니가 그리워. 옛날처럼 같이 2NE1 콘서트에 가고 싶어”라고 말하는 게 용기라고 생각했어요. 제 경우를 봐도, 물론 운동하면서 새로 만나는 친구도 있지만, 이제는 잃어버린 친구도 많거든요.

소라: 저 빼고 세 분이 한 번씩 자신의 정신건강에 대해서 얘기했잖아요. 저는 제 정신건강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되게 조심스럽더라고요. 나를 (있는 그대로의 소라가 아니라) 그 질병으로만 바라볼까 봐 (아픈 게) 아닌 척하고 지낸 시간이 길었어요. 그런데 다른 필자들이 쓰니까 나도 언젠가 써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성평화활동가들이 정신건강에 대해 더 얘기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요.

지원: 저는 소라님이 쓰신 ‘트월킹 할 줄 아세요?’ 글이요. 그 자유로움이 너무 좋았어요. 활동가라는 직업은 좀 자유로운 성향이 있잖아요. 저는 스스로 검열하는 게 많거든요. 그래서 ‘(활동가에)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다고도 생각했는데, 소라님의 그 글을 읽을 때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용석: 올해도 연재를 해주시잖아요. 꼭 전없세 블로그가 아니더라도 다들 계속 글을 쓰실 것 같고요. 여러분은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나요?

소라: 저는 매콤한 평화의 글을 쓰고  싶어요. (다들 “멋있다”) “이런 것도 평화예요. 이런 것도 돌봄이에요”라고 하는, 아주 매콤한 여러 예시를 펼쳐주고 싶어요.

용석: 다들 맛으로 표현해야 할 것 같아.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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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 “여성들이 군대 이슈를 자기 길로 파고들면 좋겠습니다.”

 

토란: 저도 흔치 않은 주제로 글을 쓰고 싶어요. 또래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글은 많이 읽지만, 전쟁이나 군대 이슈는 안 읽을 것 같거든요. (페미니스트인) 내가 왜 이런 활동을 하게 됐는지, 페미니즘과 군사주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글을 쓰고 싶어요. 여성들이 군대 이슈를 자기 길로 파고들면 좋겠습니다.

뭉치: 저는 (컨셉을) ‘통쾌’로 가야겠네요. 속이 뻥 뚫리는 맛. (웃음)

용석: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슈팅스타 같은?

뭉치: 오, ‘슈팅스타’! 맘에 들어요. 저는 글을 진짜 어렵게 어렵게 써요. 불편한 마음이 드는데 설명할 언어가 지금 당장 내 안에 없으니까 바로 못 쓰는 거죠. 앞으로도 저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쓰고 싶고요. 계속 잘 쓰고 싶은 주제는 당연히 ‘군사주의’죠. 우리를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무기가 영웅화되고 상품화되잖아요. ‘보호’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시스템과도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해요. 내 피부에 있는 말로 이런 문제를 옮겨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요.

지원: 저는 (글의 성격을 표현할) 맛을 계속 생각해봤는데, 뭔가 슴슴하고 익숙한 맛이면 좋겠어요. 제가 새롭거나 특별한 걸 쓴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익숙한 맛에서 새로운 걸 독자들이 봐줬으면 좋겠어요.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하면서 먹다 보면 다른 맛이 나는, 그런 느낌이요.

용석: 맛이 아니라 음식으로 가고 있군요. 지원님은 ‘쑥버무리’네.

소라: 쑥버무리! 그거 되게 맛있어요. 이 날씨에 딱이야. 저는 토란님의 맛을 제안합니다. ‘초콜릿퍼지’요. 달콤하고 섹시한, 그리고 중독성 있는 맛이죠. 그리고 저는 매콤한 맛으로 ‘로제떡볶이’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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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99.9% 지더라도, 평화가 있다고 말하는 게 중요해요.”

 

용석: 처음에 ‘여성평화활동가’ 에세이를 기획했을 때 평화활동의 범주를 어떻게 볼지 고민이 있었어요. 넓게 보면 한없이 넓어지는데, 그렇다고 협소하게 반전운동만 얘기하고 싶진 않았고요. 각자가 생각하는 평화운동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평화운동을 하게 됐는지 듣고 싶어요.

토란: 강정마을에서 평화대학 수업을 들었는데 유익하고 흥미진진했어요. 누군가 “군사주의는 누가 먼저 죽임을 당할지 정하는 원리”라고 하더라고요. 환경이 먼저 파괴되고, 동물은 죽어도 되고, 팔레스타인 사람은 죽어도 되고…. 그렇지 않은 세상을 위해서 이 활동을 하는 것 같아요.

소라: 저는 미군기지가 있는 용산에서 나고 자랐어요. 기지 담벼락을 지나 등교를 했고요. 그런데 그 너머에 뭐가 있을지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미군기지 지하에서 기름이 퍼져서 토양이나 지하수 오염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어떤 사람들은 미군만 나가면 되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저는 ‘왜 군대 자체가 아니라 미군이라는 것만 문제 삼지?’ 하는 질문이 드는 거예요. 그때부터 전쟁이나 군사주의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가부장제가 너무 싫어서 이른 나이에 탈가정을 했는데요. 저는 도망칠 수 있는 존재니까 탈출했지만, 도망칠 수 없는 존재들도 너무 많잖아요. 이런 상황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일상에 스민 군사주의를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원: 저는 사실 (평화단체가 아니라) 여성단체에 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어떤 젠더 관련 수업을 들었는데, 분단체제와 군사주의와 젠더가 연결되어있다는 거예요. 내 관심사들이 연결되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지금 평화활동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의 행동이 어쨌든 (끝내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99.9% 질 수밖에 없더라도, “폭력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으로 만드는 평화가 (대안으로) 있다”고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우리가 말하는 평화가 현실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니까요.

뭉치: 저는 인권활동을 직업으로 하다가 병역거부 캠페인 연대활동 과정에서 전없세를 만났는데요. 전없세의 활동 방식이 저랑 잘 맞더라고요. 어떤 걸 바꾸기 위해서 권위를 가지지 않아도 되잖아요. 영어를 잘해야 한다거나 말을 수려하게 해야 한다거나 이런 자격조건을 따지지 않고, 전략과 직접적인 행동으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거예요.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군사주의적 사회체제를 바꿔나갈 힘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직접행동을 꾸리고 전략도 짜는 게 재미있었어요.

 

2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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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2|카테고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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